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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반가운 동물실험, 버거운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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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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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록펠러의 비교 신선, ‘로카쇼무라’ 고발엔 반핵 공감
살가운 무슬림 이야기와 친절한 자유무역협정 분석 기다린다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다른 언론이 간과한 문제를 다룬 걸 보고 ‘아, 역시 <한겨레21>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김지혜 위원이 598호 ‘하얀 쥐의 비명’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2월2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11기 독자편집위원들은 ‘동물권’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며 <한겨레21>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고철 유통시장의 모순을 알다


김민정: 동물실험의 잔혹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300만 학살의 현장’이라는 표현이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본문에서 동물들의 고통을 유대인 학살에 비유하는 부분이 있는데 비약이 아닐까. 나는 인간과 동물을 평등하게 보는 동물권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실험 문제는 윤리, 권리의 차원보다는 사회적 합의의 차원에서 적절한 법적 규제 수준을 만드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어가야 할 것이다.

한윤기: 동물이 인간과 소통할 수 없다고 해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건 모순이다. 기사를 읽으며 내내 괴로웠다. ‘희생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현실적 근거가 될 수 없다. 이주노동자가 다치고 내몰리는 상황에 적용하면 안 되듯,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염인선: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는 말도 맞고 ‘동물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맞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재미있게 봤다.

최영선: 특집 ‘고철, 당신의 주머니가 샌다’는 배추 유통 관련 특집처럼 유통시장의 모순을 쉽게 다룬 좋은 기사다. 왜곡된 고철시장의 유통구조로 인해 공공손실이 발생한다는 건 몰랐다. 소비자 손에 닿는 물건들로 풀어준 얘기 속에서 권리의식과 판단력을 배우게 된다. 각종 유통시장의 모순을 계속 다뤄주면 좋겠다.

최수근: 내가 보기엔 특집으로는 무게감이 떨어져 보였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피해보는 문제적 상황이 많은 현실에서 이 정도면 공존공생 시스템을 갖춘 거 아닌가.

염인선: 회사 연수 마지막 날 뒤늦게 삼성의 8천억원 환원 뉴스를 듣고 씁쓸했다. 몇 달간 <한겨레21>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지만 삼성에 변화가 없으니 사건의 진도가 안 나간다. 관련법의 움직임, 비호세력에 대한 추궁 등을 계속 부탁한다.

김민정: 597호 ‘이건희는 록펠러가 될 것인가’는 표지 제목의 어감이 약했다. 기사는 재미있었다. 록펠러 기업과 비교를 시도하고 무협지 스타일로 서술하니 재미있게 읽힌다. 새삼스럽게 실체가 와 닿았다.

김지혜: 597호 특집 ‘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에선 여유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 주제를 선정한 이유가 뭔지 의아했다. 전주 표지이야기를 보면 짐작은 가지만.

최수근: 사진이 훌륭했다. 78쪽 사진은 어디 사진 전시회에 내면 상을 받지 않을까. 좋은 사진 하나가 기사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만석: 596호 표지이야기 ‘일본 핵폭탄의 꿈을 경계하라’는 사안의 단서를 제공한 글이다. 그렇다 보니 현장 스케치에 집중이 돼 한국과 인접 국가의 목소리를 넓게 담지 못했다. 과학 용어는 더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할 듯하다. 앞으로 핵이용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찬반 논란, 정부의 문제 인식 수준 등을 다뤄주기 바란다.

김민정: 596호 특집 ‘사랑해요 하마스! 기대해요 하마스!’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으나 현상을 나열하는 느낌도 줬다. 중동지역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기본 정보와 역사적 배경지식 전달에 힘써주면 좋겠다.

한윤기: 중동은 혼란과 분쟁의 이미지로만 다가온다. 얼마 전에 만난 무슬림 대학생들은 살가운 사람들이었다. 유럽, 미국 뉴스처럼 흥미롭고 좋은 일도 뉴스화해주기 바란다.

염인선: 노란색 물감이 튄 듯한 디자인이 ‘사랑해요 하마스! 기대해요 하마스!’라는 제목과 잘 맞지 않았다. 디자인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디자인과 기사 제목이 부합되도록 신경써달라.

한윤기: 596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관련 기사는 두 번, 세 번 읽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직접투자, 포트폴리오 투자 등 난해한 용어가 쏟아진다는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기도 민망한 독자들을 위해 ‘금주의 용어’ 같은 코너를 만들 순 없을까.

‘아버지에 관한 고해성사’ 위안주네

최수근: 설 특대호 제595호 ‘메시아는 누구인가’에선 메시아라는 제목부터 불편했다. 둘 중 한 사람은 메시아가 된다는 건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기사에선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단어를 쓴 경우가 별로 없었다. 언론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땐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기사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성을 해친다.

한윤기: ‘그 사람이 대권후보가 안 되는 이유’ ‘되는 이유’ 이런 것들은 이미 다른 매체에서 많이 봤다. 기사가 지루하고 길다는 느낌이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쪽에선 불공평하다고 느낄 만하다.

이만석: 인물 비교는 두어 꼭지만 다루면 좋겠다. 선거제도나 지자제, 토호 문제 등 정치 현안을 진지하게 파헤쳐달라. 특집 ‘여성이여, 유리창을 깨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도회적이다. 전국 곳곳의 여성들 목소리에 귀기울이면 좋겠다. 남성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한 공동체를 발굴해보면 어떨까.

김지혜: 특집2 ‘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는 특정 세대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신세대는 공감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다섯 편의 글에서 통합된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한윤기: 나만 비정상인 줄 알았는데 다른 이들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글이다. 항상 화목한 아버지만 보여주는 미디어 때문에 ‘나만 이상한가’라고 고민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만석: 솔직한 글에 깜짝 놀랐다. <한겨레21>을 보다 보면 까발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오 마이 섹스’나 아버지에 대한 글들은 자신을 노출시키는데 그런 것들이 독자에게 용기를 준다.

최수근: 595호 이슈추적 ‘서울-춘천 고속도로 묘기대행진!’을 주목해서 봤다. 건산복합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런 일들이 아직도 있는가 싶어 울적했다

최영선: ‘조계완의 노동시대’는 주변 동료들에게서 인기다. 598호 ‘졸업장 프리미엄은 옳은가’도 공감이 많이 갔다. 학력차와 생산성의 관계를 둘러싸고 사무실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597호 ‘변검, 오래된 탈을 벗는가’는 중국의 전통 예술문화를 흥미롭게 전해줬다. 각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자주 소개해주길 바란다.

한윤기: 597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박정희가 때린 사학법, 딸이 달래나’를 보고 역사 공부의 미덕을 새삼 깨달았다. 현실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근현대사 얘기가 유익하다. ‘아프리카 초원학교’와 ‘취재 뒷담화’도 재미있다.


더 넓게 더 깊이 쟁점을 발굴하라

<한겨레21> 창간 12돌에 보내는 위원들의 한마디

염인선:
우리 팀의 두세 명이 찾던 잡지가 요즘은 대여섯 명이 볼일 볼 때 들고 가는 잡지가 됐다. 많이 구겨져도 기분이 좋다. 국제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먼 나라의 일보다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환경에 집중해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주길 바란다.

이만석:
꾸준히 읽다 보니 내 사고의 패턴이 바뀌었다. 학문을 하듯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아가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력이 생긴 듯하다. <한겨레21>은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전국지인 만큼 서울과 수도권에 갇히지 말고 전국 곳곳의 현장을 돌아다니면 좋겠다.

최수근:
창간 초기의 ‘한겨레21다움’이 많이 사라진 건 아닌지. 농민, 비정규직, 장애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눈길을 돌리면 좋겠다. 특집물 이상급으로. 매일 정보가 쏟아지는 매체 환경에서 속보성에 연연하지 말고 주간지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얘기들을 발굴하길 바란다.

한윤기:
식자층인 기자들은 무시할 듯한 유희왕, 케로로 같은 소재도 다루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리카에도 역사가 있니?’라고 말한다. 다양성의 확산에 애써달라. 또한 표지이야기들이 정치적 방향성, 가치관 등에서 기사 간 차이가 있을 때가 있다. <한겨레21>의 비전이 뭔지 확 밝혀버리면 어떨까.

최영선:
아시아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우토로, 평택 캠페인 등으로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잡지다. 다른 시사지는 하지 못한 일이다. 다만 정치 분야 기사는 지금처럼 이슈 중심으로 가볍게 풀기보단 원칙론에 입각해 써주면 좋겠다. 보수 관변의 울타리 안에서 진흙탕이 된 풀뿌리 정치의 민주화에도 관심을 가져달라.

김지혜:
<한겨레21>은 독자편집위원회를 통해 독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좋은 잡지다. 하지만 조금 더 쉽게 쓰면 좋겠다. 그러면 사회적 이슈에 무관심한 채 문화, 연예 뉴스에만 열올리는 내 세대들도 더 많이 읽지 않을까. 종종 용어 풀이를 찾아보는 내가 우리 또래에서 박사 취급을 받을 지경이다.

김민정: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기사, 발로 쓴 기사를 보고 싶다. 뉴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21> 기자들이 쟁점을 발굴해 ‘<한겨레21>은 이런 기사 때문에 보지 않을 수 없지’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좋겠다. 뜨거운 이슈에 집중하고, 색깔도 분명히 하면 좋겠다. 그 색깔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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