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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언장, 써보니까 잘 안 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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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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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눈에 띄는 표지이야기, 오랜만에 재미있는 정치면… 성역깨기에 전력을 다하라

“우리 주제토론 합시다.”

설 연휴를 끝내고 모인 독자편집위원들의 표정에는 조촐했던 4차 회의와는 달리 넘치는 의욕이 엿보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두 차례 결석했던 홍윤기씨는 새로운 제안을 들고 나왔다. 그는 “다소 주관적이긴 하겠지만 독자들의 시각이 잡지제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 하고 있는 기사분석 외에도 매주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담당기자와 함께 토론을 하는 시간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다. 홍씨의 의견에 이날 참석한 위원들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이은주씨는 그동안 경제기사를 읽을 때마다 할 얘기가 많았다며 첫 토론은 경제팀과 함께하자는 ‘성급함’마저 보였다. 무서운 독자들…. 앞으로 더 늘어날 회의준비와 녹음량에 막막해지는 기자에게 이들의 의욕은 정말 무섭다. 그러나 그것이 독자편집위원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5차 회의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기사는 343호 표지이야기 ‘젊은 그대여 유서를 쓰자!’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획이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은주씨는 “기사를 읽고 나도 유언장을 한번 써보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오랜만에 박수를 받은 정치면 기사도 있었다. 343호 ‘정치판 이슈를 정복한다’는 거의 모든 위원들로부터 “접근방식이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외 342호 종교권력을 다룬 표지이야기와 340호 사람과 사회 ‘원조교제가 아니었다’는 다른 잡지와 구별되는 <한겨레21>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박노자 교수의 북유럽 탐험도 북유럽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시각에 많은 위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원들은 특히 그동안 진행되어온 성역깨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한겨레21>만이 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높이 평가하며, 이번 342호의 종교권력을 다룬 표지이야기도 그 성역깨기의 연장선에 있는 좋은 기획이라는 평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학계의 성역도 깨주길 바란다는 주문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평가도 냉정한 법이다. 343호 안기부예산에 관한 성역깨기는 “변죽만 울린 것 아닌가”(이은주) “읽고 난 뒤 너무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선숙)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1기 독자편집위원회는 이제 6차 회의 한번만을 남겨두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기획인 만큼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출발한 독자편집위원회는 위원들의 열의에 힘입어 점차 성숙되고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이 성과는 3월부터 시작되는 2기 독자편집위원회로 연결될 것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위원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위원들이 한번씩은 회의에 참석했으며, 특히 이은주씨와 이혜연씨는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전출’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회의까지 참석하면 2기 독자편집위원회에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기자의 말에 “그런 말 하면 안 올지도 몰라요”라며 웃는 이은주씨는 이미 다음 회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홍윤기 341호 ‘대우차 회생, 비방은 있다’는 기사는 문제 해부로 끝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여 신선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결론유도에 있어서 명확한 논리가 없고 산만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우자동차 사태가 현재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원인 분석 등 본질적인 부분도 부족했다. 좀더 다양한 의견도 제시되어야 했다. 대안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상호 비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움직이는 세계 ‘미국이 엿본 15년 뒤’는 미국의 한정된 시각이긴 하지만 단기적인 사건에 대한 한정된 결론이 아니라 미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자료적 가치가 높은 기사였다. 339호 올해의 인물 문규현, 문정현 신부에 관한 표지이야기는 <한겨레21>을 정기구독하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라 생각할 정도로 시각이 돋보였다. 같은 호 사람과 사회 ‘듣지 못하는 세상을 찍는다’도 진솔하게 삶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기사였다.

대학교수 임용 문제부터 도시 초등학교와 시골 초등학교의 엄청난 차이 등 교육 문제는 아무리 다뤄도 부족하지 않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가정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조기교육, 영어학습 이런 거 외에도 아빠와 함께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방안을 제시해 준다면 고맙겠다. 지방자치단체의 환경파괴도 문제다. 지자체가 사실 작은 권한만을 갖고 있을 뿐인데 그 권한도 남발하는 느낌이 든다. 건전한 견제가 필요하고, 이를 기사로 다룰 필요가 있다.

이혜연 340호 ‘원조교제가 아니었다’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뒤 서점에 가서 여성잡지들을 들춰보니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논조를 좀더 부각시켜서 썼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경제기사는 주로 사진만 본다. (웃음) 경제면 ‘삼성차 부채, 생떼탕감’에서 삼성차 관련 기사 볼 때마다 나오는 사진이 또 나오는 것 같다. 사진이 너무 중복된다. ‘우린 코드가 달라’라는 특집기사는 문화의 재미는 나이가 아니라 취향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문제제기가 의미있었고 결론도 괜찮은 것 같다.

고용불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시열풍과도 비슷한 열풍이 직장에 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취미활동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다. 예를 들어 한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편입이나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편입은 다 돈이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편입의 기준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런 문제를 다뤄볼 필요가 있다.

강화수 <한겨레21>을 보니, 쓸데없는 난도 많은 것 같다. 우선 넷세상이 그렇다. 시민단체에서 정보통신 파트를 담당하다 보니 넷 관련 기사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기사들을 자세히 보면 내용의 충실도가 떨어진다. 인터넷 정보검색 사이트에서도 나올 만한 내용뿐이다. 차라리 인터넷사이트에서 써서 바로바로 링크되게 하는 게 더 효율성이 있는데, 왜 굳이 지면에 싣는지 모르겠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리해지는 것 같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동남아시아보다는 동아시아에 중심을 두는 게 좋겠다. 중국, 일본, 한국의 상황도 굉장히 첨예하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이슈들도 많다. 문화면은 읽을 때마다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서평은 수준이 조금 낮은 것이 아닌가. 서평에서 <한겨레21>의 색깔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 339호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서평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디즈니 하면 우선 동남아시아에서 아동착취나 문화권력의 문제가 떠오르는데, 단순히 책에 대한 서평에 머무르는 건 옳지 못하다. 마이너리티, 사람과 사회는 일간지나 다른 주간지와 차별되는 ‘틈새’이다. 이런 면에서 지면을 좀더 늘리는 게 좋겠다. 342호에서 ‘통일로’가 오랜만에 등장했다. 통일 문제에 <한겨레21>만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계속됐으면 좋겠다. 대학생일 때 <씨네21>에 연재되었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를 재미있게 읽고, 후배들과 세미나를 한 적도 있는데, <한겨레21> 교수님들의 논단은 식상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학계 권력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시책을 주로 학계에서 결정할 때가 많다. IMT2000 사업자 선정 문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욕은 정보통신부 관료들이 다 먹고 있다. 토목공사에서도 학계의 개입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학계가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들에겐 오류가 없는지, 의무와 책임을 물을 필요는 없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공적자금 청문회를 보면서 청문회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앞으로 공적자금에 대해 계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은주 전반적으로 문제의식을 갖는 기사는 경제면이다. 341호 대우차 문제에 대한 기사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만큼 실망도 큰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기사를 쓴다는 것의 한계는 알고 있으나 340호 ‘데이콤 사수 동상이몽’에서 노사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결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소외된 노동자 문제에 대한 좀더 따뜻한 시각이 필요하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에 기대가 많이 된다. 341호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에 대한 기사를 읽고 공감이 많이 됐다. 같은 노동자이지만 그렇다. 그게 지금 우리 노동자의 현실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한 가정의 책임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개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대안적인 시설을 만들기도 하는데, 공교육 확대 차원에서 대안이 필요하다. 유치원 교사와 보육 교사도 대우가 다르다. 보육 교사는 보건복지부 산하라고 알고 있다. 보육 교사의 보수는 보건복지부에서 알아서 결정해 버리는 것 같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문제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선숙 340호, 342호, 343호를 재미있게 읽었다. 340호 100인 위원회의 성폭력 공개를 다룬 시시비비는 제목이 너무 선정적인 것이 아니었나. 운동사회의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학생사회의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학내 성폭력 금지를 학칙으로 제정한 학교도 있는데, 그런 점들도 많이 다뤄졌으면 좋겠다. 340호 마이너리티에 나온 수배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의미있었다고 생각하고, 길에 대한 특집도 재미있었다. 342호 마이너리티 ‘복지전도사에겐 복지가 없다’를 읽고 사회복지사들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겼다. 봉사와 자선이 다르다는 얘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제1기 독자편집위원회 명단

채규정(53) 교사 kyjoungu@edunet4u.net
장성하(40) 북디자이너ss5847@chollian.net
김복숙(39) 주부 boksooki@hanmail.net
홍윤기(37) 교수 uirohong@netsgo.com
이은주(32) 지하철공사 노동자 kimsane@nownuri.net
이혜연(29) 연구원 frufrok@hanmail.net
양성윤(29) 사진작가 ugeme1999@yahoo.co.kr
강화수(28) 시민단체 간사 hwasoo@mail.ccej.or.kr
문진화(28) 양호교사 394-6505@hanmail.net
김호귀(25) 교사 shyarara@chollian.net
이선숙(22) 대학생 sunsook_lee@hanmail.net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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