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오적’은 통렬한 심층기획, ‘혼자 먹다 탈날라’는 건강한 정보
검찰 파동 촌철살인으로 다뤘으나 ‘무리한 구속수사’ 더 짚었더라면…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10월3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우리 부서 사람들이 다 봐요.” “주변에 저 같은 활동가가 많은데 다들 어찌나 주문이 많던지.” “제 친구들은 이거 다 보는데….” 새 얼굴을 맞이한 <한겨레21> 11기 독자편집위원회. 분명 선정된 위원은 8명이건만 회의실 안에는 수십 명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간단한 소개로 어색함을 지우며 6개월간의 모니터링 대장정에 나섰다.
맥아더와 무당은 생뚱맞지 않았나
김지혜: 579호 ‘혼자 먹다 탈날라’엔 건강한 정보가 가득했다. 자료, 수치, 실태 조사가 신뢰감을 준다.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라면과 패스트푸드를 굳이 먹어야 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충고가 좋았다.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한다면 어떤 음식점이 좋은지 소개해줬으면 더 친절한 기사가 됐을 것이다.
염인선: 메가톤급 이슈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기 좋은 이슈였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식생활 개선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가이드를 제시해줬다. 표지 제목에 최신가요 제목을 달아 재미있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론 부족했다. 아침식단표 같은 건 어땠을까. ‘눈치 안 보고 먹을 순 없나요’보다 패스트푸드·라면·햄에 대한 상자기사가 좋았다.
한윤기: 개인의 게으름 같은 각자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본 부분이 흥미있었다. 공감이 갔다.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신선했다. 직업군에 따른 ‘속도의 압박’이 궁금해진다. 우리 사회가 갖는 이런 병리성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기획도 좋을 것 같다.
최수근: 580호 ‘건설오적’은 심층기획 기사답게 통렬했다. 내 집 마련이 어려운 현실의 구조를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여줬다. 건교부 고위 공무원들이 이익업체 자리를 꿰찬다는 내용이 돋보였는데, 퇴직 뒤의 관련 기관 재취업을 금지하는 법률안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면 좋았겠다. 그런데 표지기사의 헤드라인이나 겉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기사의 심각성을 해치진 않았나. 본문에 나온 ‘포클레인’이란 단어도 ‘굴삭기’로 바꿔야 한다.
최영선: 재개발 예정지역 사진설명의 ‘강동구 성내동’은 ‘송파구 잠실동’이다. 지하철 2호선 성내역 때문에 언론들이 종종 실수한다. 재개발 사안은 민감한 문제니 지명이 틀리면 신뢰감을 해친다.
권일지: 이득을 취하는 주체를 ‘오적’으로 비유한 것도 흥미롭다. 오늘의 주택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된 시원시원한 기사였다. 택촉법에 따른 피해 사례를 서민 세입자들 안에서 더 찾고 이에 대한 개선책을 모색하지 않아 아쉽다.
이만석: 비판에 그치지 않고 택촉법의 효력과 정당성 여부를 지켜볼 수 있는 위헌소송의 움직임을 소개한 점이 좋았다. 그러나 세입자들의 가혹한 실상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다뤄지지 않아 아쉽다.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차가운 비판 태도는 훌륭하다.
연령·직업·성별이 가지각색인 11기 독자편집위원회. 10월3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사진/ 박승화 기자)
생생한 삼남매 엄마들의 이야기
김지혜: 578호 ‘맥아더를 박물관으로!’에서 배후에 가려진 맥아더 장군의 정치적 술수,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접했다.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었던 이런 혼란에 세계인들은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와 다른 나라엔 이런 종류의 사건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염인선: 철거와 보존의 양날을 중재하는 ‘박물관 이전’이란 타협점을 제시했다. 균형감각이 느껴졌다. 그러나 맥아더와 대화한다는 무속인 관련 기사는 적절치 않았다. 그의 철거 반대가 보수 세력의 의견을 대변해주지도 못하고 과학적으로도 믿을 수 없다.
한윤기: 그 기사가 생뚱맞았다. ‘무당’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집중한 건 아닌지. 그에 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전쟁 안밖의 차원에서 맥아더의 위상과 성과를 검증한 글들은 유익했다.
최수근: 이명박론을 다뤘다. 581호 표지기사 ‘누가 이 사내에게 불을 질렀는가’는 솔직히 객관성을 가장한 이명박 띄우기 냄새가 나서 불편했다.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미명 아래 치적을 나열한 건 아닌지. 비판도 곁들여졌지만 아쉬움이 많다. 서울 시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의견을 물어봐야 객관성이 담보되는 거 아닌가.
이만석: 난 좀 다른 의견이다. 인물 보도는 기본적으로 ‘편파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세밀한 분석을 보여주면서 그의 정치적 성향과 장단점이 객관화됐고, 여론조사 데이터나 찬반 인사의 글로 허와 실을 보여줬다.
권일지: 한 개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명박 띄워주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권주자로 어떤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라면 더 신중하게 객관적인 자료들을 모아야 하지 않았을까.
김민정: 개인 이명박과 대통령 후보 이명박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무협지와 위인전 느낌을 받았고, ‘인간 이명박’을 좀 이해하게 됐지만 대권후보로서의 분석을 제시받지는 못했다. 여러 입장을 나열한 건 궁극적으로 기획 의도가 뭔지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한겨레21>만의 독자적 의견이 궁금하다. 타 잡지와 구별되는 입장을 개진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만석: 기사 내용에 상관없이 미국 중심 논리로 국내 현실을 통찰하려는 신문기사들이 많아 눈이 따갑다. 579호 특집에서 다룬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은 재미있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겨레21>이 열중할 만큼 시사적이었을까. 부시 비판의 잣대로 활용할 소지가 있다고 미국 드라마를 면밀하게 다룬다는 건 과장이다. 문화면 기사 정도로 다루어야 하지 않았을까.
김민정: 580호 특집 중 ‘지구 최고의 마술, 아리랑’엔 어린 북한 학생들을 동원해서 가혹하게 연습을 시켜 만든 공연의 뒷모습이 담겨 있지 않아 아쉽다. 난 88올림픽 시절 카드섹션에 동원돼 여름내내 힘들게 연습한 경험이 있다. “한 번쯤은 꼭 볼 만한 ‘세기의 작품’”이란 평이 씁쓸하다.
김지혜: 581호 특집 ‘신운동권, 학생운동을 구출하라’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운동권’이란 개념이 큰 의미를 띠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운동권을 모색한 건 현실의 한 축만 담은 것일 뿐이다. 비운동권 학생들은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겉모습 묘사에 치중해서 그 정신을 짚는 것을 놓친 것은 아닌지.
김민정: 578호의 삼남매 양육 관련 특집 기사는 진솔했다. 저출산을 여성의 의무 포기로 몰지 않고 사회 문제로 바라본 점이 돋보인다. 엄마들 인터뷰가 생생하다. 그러나 육아 문제가 여성만이 아닌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더 강조했다면, 정부 책임론과 맞물려 기사가 더 풍부하고 현실적으로 구성됐을 것이다.
이만석: 579호 특집 ‘대한민국이여, 화상과 더불어!’는 위협적일 수 있는 화교에 대한 견제가 억압의 차원까지 이르렀음을 잘 보여줬다. 특히 한 사람의 인생을 좇아가면서 모든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점이 돋보였다.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항상 가져주기 바란다.
‘벙어리새’ 기사에 마음 훈훈
권일지: 580호 사람과 사회 ‘벙어리새, 입을 열고 날다’는 취재원의 얘기를 담담하게 전달해 시대를 반추하게 만든 기사다. 민족적 동질성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류춘도씨의 고백이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컬처타임 ‘놀러와요, 부산항에!’라는 기사 헤드라인은 너무 유흥적이지 않았나. 부산국제영화제를 더 발전적이고 규모 있는 영화포럼으로 승격시키는 시사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최영선: 581호 문화 ‘들끓는 남포동에서 영화 보다 쓰러지리’는 부산영화제 10주년 기사인가 하여 반가워서 펴봤는데, 사실 뭘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포동 르포인가? <씨네21>에 역할분담 말고 부산영화제를 자세히 소개해줬더라면.
김지혜: 새 연재 ‘이원재의 5분 경영학’은 친숙한 일상생활에 깃든 경제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580호 ‘한가위큰잔치 당첨자 발표’는 사람 이름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당첨자들의 후일담을 들려줘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당첨되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좋은 발상이다.
권일지: 581호 과학 ‘활성산소를 죄다 죽인다굽쇼?’에선 웰빙이 대단한 건강식품이나 약품, 식재료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식습관의 변화만으로도 가능한 것임을 말해줬다. 개인·사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한겨레21>이 건강한 잡지라는 뉘앙스를 풍겨 긍정적이다.
최수근: 581호 초점 ‘애걔 그까짓 일로 옷을 벗어’는 사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였다. 공안 꼴통들의 뒷머리를 내리칠 만한 촌철살인의 기사다. 다만 사태의 파장에 비해 기사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공안들의 무리한 구속수사가 낳은 사례들을 이참에 정리하고, 외국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지휘권 체계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염인선: 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와 김소희의 오마이섹스는 종종 정치나 도전인터뷰 지면 근처에 놓이는데 그보다는 문화면과 연결되는 게 낫지 않을까. ‘지하철, 당신을 노리는 라돈’ 같은 기사도 과학기사와 가깝게 배치하는 게 이슈 부각에 효과적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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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나타난 오아시스여!“조심하지 말아야겠다”며 설렘 털어놓는 11기 위원들
권일지: 1996년이었나. 독자 엽서를 보내고 독자 인터뷰에 덜컥 당첨됐다. 10년이 흐르고 젊은 기자였던 고경태 기자가 편집장이 됐다. 카피라이터에서 방송작가로 전업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서도 내 안테나는 항상 이쪽을 향했다. 11기 모집 공고를 보니 10년 전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친구야, 잘 지내자.
김민정: 나와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결합해 하나의 여론을 만드는 이 작업은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하다. 지금 환경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예전에 환경단체에서 1년 남짓 활동하면서 학부 시절의 공부와 현장의 접점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독편위 활동도 그런 의미 이상이 될 듯하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내게 절호의 기회가 되길.
김지혜: 세상의 감춰진 이면엔 어떤 세계가 있는지, 우리 사회에 굉장한 호기심을 가진 평범한 대학생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목말라하던 내게 나타난 오아시스! 논술을 준비하는 고교생이나 사회 문제에 막 눈을 뜬 뜨내기 대학생을 대표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염인선: 회사 내 우리 팀 사람들이 즐겨보는 잡지다. ‘이주의 정기독자’로 나오기도 하고, 독자 의견을 보내기도 했고, 공감 가는 기사들을 블로그에 모아보기도 했지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성적인 성격을 잠시 접고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 내 의견을 드러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많이 배웠으면.
이만석: <한겨레21>을 위한 독편위인데 나를 위한 독편위인 것 같아서 고맙다. 10기로 6개월간 활동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내 분석력이 몰라보게 발돋움했다. 독자와 잡지가 모두 윈윈하는 전략. <한겨레21>이라는 매력 있는 잡지에 다시 한 번 ‘올인’하기로 했다. 독편위 클럽 인터넷 게시판이 활성화돼서 자주 그곳에서 만나길 바란다.
최수근: 모니터링에 익숙지 않아 기사에 대해 논할 일이 솔직히 걱정된다. 하지만 기사 작성이 기자와 편집국의 몫이라면 기사를 비판하는 건 독자들 몫이 아니겠나. <한겨레21>의 참된 진보를 위해 칭찬과 비판을 적절히 하도록 노력하겠다. 잡지가 현장의 문제들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돕겠다. <한겨레21>을 탐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최영선: 종이 잡지에 애정을 가지게 해준 <한겨레21>. 화장실에서 물에 젖고, 가방에 구겨진 채 박혀 있어도 낙서는 없었는데 앞으로 볼펜 자국이 낭자할 예정. 모니터링이 게재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멋을 부리기보단 솔직담백하게 말하련다. 생활 필수품 <한겨레21>과 잘 지내겠다. 이 관계의 유통기한이 비록 6개월일지라도.
한윤기: 난 ‘한겨레키드’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내게 세상을 보여준 <한겨레21>.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다. 친구들도 볼 이 지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지난 호의 어느 칼럼 제목처럼 “조심하지 말아야”지 싶기도 하다. 소감이 거창한데, 어쨌거나 기대가 많이 된다. 잘해보겠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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