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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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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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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5인방’의 뜨거운 공방이 계속된 3차회의… ‘베트남 비밀문서’가 가장 좋은 표지이야기로

제1기 독자편집위원회 명단

채규정(53) 교사 kyjoungu@edunet4u.net
장성하(40) 북디자이너ss5847@chollian.net
김복숙(39) 주부 boksooki@hanmail.net
홍윤기(37) 교수 uirohong@netsgo.com
이은주(32) 지하철공사 노동자 kimsane@nownuri.net
이혜연(29) 연구원 frufrok@hanmail.net
양성윤(29) 사진작가 ugeme1999@yahoo.co.kr
강화수(28) 시민단체 간사 hwasoo@mail.ccej.or.kr
문진화(28) 양호교사 394-6505@hanmail.net
김호귀(25) 교사 shyarara@chollian.net
이선숙(22) 대학생 sunsook_lee@hanmail.net

(사진/위쪽부터 이선숙,김복숙,문진화,이혜연,이은주)
11월17일 열린 3차 독자편집위원회 회의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첫째는 ‘여성들만의 잔치’였다는 점, 둘째는 무척 ‘뜨거웠다’는 점이다. 무슨 조화였는지,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독자편집위원 5명이 다 참석한 반면, 남성독자들은 전부 긴급한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회의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매우 성차별적인 속담을 역으로 증명한 셈이다. 시작부터 미지근하지가 않았다. 편집위원들간에 목소리를 높여가며 여러 사안에 대해 어느 때보다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뭐니뭐니해도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 비밀보고서 최초공개’를 다룬 334호의 표지사진이었다. 문진화씨는 “진실을 밝히는 데도 방법이 있다”며 “과연 표지에 그처럼 끔찍한 사진을 꼭 실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만약 그 가족들이 봤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느냐”는 질책도 했다. 그러자 다른 편집위원들은 “그 사진이야말로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협공’을 시작했다. 334호 표지사진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사무실에서의 회의를 끝내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도 계속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목청을 높이는 편집위원들의 열성에 같이 서 있는 기자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결국 문씨는 기자에게 “베트남 사진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다른 위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수긍이 가는 점도 있었다”고 귀뜸했다(물론 다른 위원들은 듣지 못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중단 문제에 대한 즉석 ‘시시비비’도 벌어졌다. 김복숙씨가 “차가 없는 서민들은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큰 짐을 들고 버스 타기가 두려울 정도인데, 셔틀버스가 있어서 편리하다”며 셔틀버스 운행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문진화씨는 “서민들은 보통 백화점에 자주 가지 않고, 셔틀버스 운행이 난무해서 대중교통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중소유통업체들과 지역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된 회의였으나 지난 네호(331∼334호)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었다. 대부분 이전보다 훨씬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가장 좋은 표지이야기로는 문진화씨를 제외한 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334호의 베트남 양민학살 미국 보고서 발굴 기사를 뽑았다. 이밖에 333호 ‘족벌언론 황제 브레이크가 없다’도 후한 평점을 받았다. 고질적인 언론문제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주식촌지 등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게 좋았다는 평이다. 특집으로는 ‘공부한다, 고로 짜릿하다’(331호), ‘미대선, 그것이 알고 싶다’(334호) 등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2차 회의에서 제안된 아이템들이 곧바로 기사로 반영된 데 대해 편집위원들은 뿌듯한 듯했다. 332호 표지이야기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 333호 경제면 ‘쏟아지는 월세에 안전판을…’ 등은 사실은 독자편집위원회가 ‘기획’한 작품들이다. 독자편집위원회의 ‘압력’이 점점 지면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3차 회의에서 제안된 아이템들도 곧 앞으로의 지면에 실리게 될 것이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였다. 회의를 끝낸 뒤 외투를 단단히 여민 채 웅크리고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5명의 편집위원들은 아직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갑자기 그들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는 아부일까? 그들의 ‘수다’를 들어보자.

김복숙: 333호 표지이야기와 관련해 경험담이 있다. 아파트로 이사갔을 때 <한겨레> 구독신청을 하려 했는데, 마침 <한겨레> 판촉사원이 프라이팬을 들고 나타났다. 한겨레주주인 나로서는 반가웠다. 그러나 갑자기 서울로 이사갈 일이 생겨 불가피하게 구독을 중단해야 했다. 전화를 했더니 1년 이상 구독하는 사람에게만 프라이팬을 공짜로 주는 거라고 하더라. 결국 프라이팬 값까지 5만원을 줬다. (웃음) 333호 논단 ‘김영삼과 장정일’을 인상깊게 읽었다. 소수의 목소리도 존중하자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333호 사람과 사회 ‘사회보장제도의 획기적 개악?’은 기초생활보상제도 수급자 및 탈락자의 허탈감을 얘기하고 있는데, 반대 입장도 분명히 있다. 나처럼 사회복지사로 일선에서 일해본 사람은 수급자들에게도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소년소녀 가장에게 예산이 많이 할애되는데, 그들 중 일부분, 특히 후원금이 많은 강남지역은 통장에 현금 2천∼3천만원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있지만 생활이 훨씬 어려운 애들에겐 혜택이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 전 가정에서 쓰레기 봉투를 쓰는데 그 쓰레기 봉투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그대로 담을 수 없다. 따로 봉투에 담아서 넣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환경문제를 강조하기 전에 봉투의 품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백화점 쇼핑봉투를 종이봉투로 만드어 재활용하라고 하는데, 우습다. 약해서 한번 쓰면 못 쓴다. 또, 그걸 소비자들한테 빌려주지 않고 돈 받고 파는 것은 백화점만 배불려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어차피 코너마다 비닐팩, 비닐봉투에 넣어서 팔기 때문에 비닐봉투를 안 쓰기 위해 종이봉투를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농촌문제도 대안이 없다고 하는데 지적해줘야 한다. 얼마 전 농촌을 다녀왔는데, 색깔이 너무너무 좋은 사과가 한 박스에 2만원도 안 되더라. 유통문제가 심각하고 경기가 너무 나빠서 과일을 안 먹는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자격증이 새로 많이 생겼다. 나도 전자상거래관리사라고 새로 생긴 자격시험을 본 적 있는데, 그 시험문제에 불만이 많더라. 그런 문제를 다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은주: 332호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은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쓴 것 같다. 대안이 없어서 가슴이 아프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이 쾌도난담에 초청된 것 외에는 노동문제 관련 기사를 많이 찾아볼 수가 없다. 언론이 노조에 대해 왜곡보도를 일삼는다. <한겨레21>도 대우차 매각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매각 실패만 비판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고통은 심층적으로 취재하지 않는다. 퇴출된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다뤄지지 않아 안타깝다.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딘가 호소를 하려 한다. 그런데 어디다 호소할 데가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인터넷 신문고라고 있다. 나도 거기에 한번 신청한 적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호소할 데 없어서 정말 억울해서 거기에 호소를 하는 건데도 불구하고 성의가 없다. 청와대는 이메일로 접수처리와 접수번호를 가르쳐주는 회신으로 끝이었다. 노동부로 이관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직접 연락을 해서 뛰어다녀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경우를 당했다. 억울한 사람들이 어디에 호소할 수 있는지도 좀 다뤄줬으면 한다. 하반기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남아 있고, 노동자들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부담을 갖고 있긴 한데, 그게 노동자의 책임은 아니지 않는가. 노동자들도 부담을 갖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총파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부분도 신경을 좀 써줘야 한다.

이혜연: YS이야기는 차라리 안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무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 논평을 하면 오히려 그를 살려주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과학면 ‘강건일의 과학읽기’는 매우 유익한 난이다. 그런데 과학면 지난호들을 쭉 보면 노화-빅뱅-멸종동물-전자우편 으로 이어져 한달 동안 연속성이 없다. 특히 전자우편에 대한 기사는 소재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외부필진이 굉장히 많은데 한 사람이 몇달 만이라도 꾸준히 진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333호 사람과 사회의 ‘맞아죽은 코리아 드림’을 읽고 매우 가슴아팠다. 우리 모두 가해자라는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나는 ‘우리집 아이는 아빠가 키운다’라는 특집을 읽고 짜증이 좀 났다. 특히 ‘남성주부, 그 험난한 여정’이 그렇다. 남자들은 사회 탓하지 말고 ‘험난하다’니 하는 말 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올해 집을 또 새로 얻어야 돼서 집 얻으러 다녔다. 전세랑 집값이 비슷비슷하니까 은행에서 차라리 빌려서 집을 사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전세로 있어야 되나 너무너무 고민이 된다. 그런 문제를 속시원히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아파트마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는데 도둑고양이의 천국이다. 완전히 도시의 무법자다. 요즘 고양이에게 긁힌 애들도 있고, 밤에는 무서워서 못 간다. 쓰레기도 다 흐트려뜨려 놓는다. 까치에, 비둘기에, 고양이까지…. 인터넷 피라미드 같은 것도 있다. ‘돈버는 방법이 있다’는 유의 메일을 보내서 내 계좌에 돈을 입금시키면 돈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등 어이없는 제의를 한다. 인터넷 카페 회원을 중심으로 굉장히 많이 온다. 소모임 같은 데서도 회원이 이렇게 몇백만원을 벌었으니 해보라고 한다. 그게 공개적으로 자유게시판 같은 데도 많이 떠 있다. 결국 사행심을 조장할 뿐인데, 그런 문제도 짚어줬으면 한다.

문진화: 일반 언론에서 다루는 재테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 몇천만원짜리 전세를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재테크를 보면 전부 억단위다. 그리고 보통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허탈감만 느껴진다. 인천국제공항은 문제점이 많은 것 같다. 대중교통의 통행료가 비싸 운행을 안 하겠다고 한다고 들었다. 제일 먼저 대중교통을 확보해놓고 이용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자가용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다. 통행료가 비싸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한테 넘어간다.

이선숙: 332호 이슈추적 ‘추악한 벤처의 예정된 종말’을 읽고 벤처의 허와 실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안으로 ‘집단소송제’니 ‘집중투표제’ 등의 말이 나오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궁금했다. 용어에 대한 설명을 좀 써줘도 좋지 않을까.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 기사에 대체적으로 수긍한다. 그러나 ‘대학 평준화’ 주장은 좀 단편적인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대학을 나와도 인정을 못 받고 ‘대학원 중심 대학’이라는 기치가 생기고 있는데, 대학에서의 공부는 평준화될수록 수준이 낮아지지 않을까. 평준화라는 것도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얘기하는 특성화대학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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