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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이들아, 전쟁을 미워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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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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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독자대표로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을 다녀온 안정애씨가 두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사진/ 1월21일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을 마치고 한겨레신문사 관계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한국쪽 참석자들이 응웬 탄 꽝 푸옌성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진실과 우정의 둥지’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으로 추진된 ‘한-베 평화공원’(Han-Viet Peace Park)이 드디어 완공됐습니다. 99년 10월 베트남 성금운동이 처음 시작된 뒤 39개월 만의 일입니다. 베트남 중부지방 푸옌성에 세워진 이 공원은 베트남인들에게 한국인들의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공간이 될 것입니다. <한겨레21>은 지난 1월21일 푸옌성 공원현장에서 열린 준공식에 독자대표로 안정애(42·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씨를 초청했습니다. 안정애 독자의 방문기와 함께 베트남 캠페인의 대단원을 독자들에게 알립니다. -편집자-

사랑하는 두 딸 은수(11), 민수(3)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무정한 엄마가 일주일씩이나 집을 비우며 전화 한통 없이 너희를 챙겨주지 못해서(이 엄마의 교육철학이 철저한 자율과 독립심 고양이라는 것 잘 알지).


이제부터 엄마가 다녀온 베트남 얘기를 해줄게. 먼저 엄마 어릴 적 얘기부터 할까 베트남이란 나라는 옆집에 사는 소꿉동무로부터 처음 들었어. 그 친구는 자랑삼아 얘기했다. “우리 삼촌은 월남 가서 열심히 싸운다. 그리고 근사한 선물도 보내주고….” 선물은 아주 희한했어. 지금 생각하니 그 분은 아마 야전병원에서 근무한 모양이야. 링거 튜브로 만든 예쁜 펜대 장식이었는데 어찌나 신기했는지. 그리고 우린 동네골목에 나가 당시 유행하던 파월군가를 몇곡씩 열심히 불러젖혔어. “아느냐 그 이름 백마부대 용사들…”, “가시는 곳 월-나-암 땅 하늘은 멀더라도…”.

우리 군인아저씨들이 왜 갔느냐고?

사진/ 빈딘성 따이선사에서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을 만난 안정애 독자대표.
그 뒤 한동안 베트남 얘기는 엄마의 기억 속엔 없었어. 그러다가 최근에야 언론을 통해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지. 그 얘기는 이랬어. 베트남에 한국군이 가서 전쟁과 상관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심지어는 너희 또래 아이들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는 거야. 설마 우리의 용감하고 씩씩한 군인 아저씨들이 그럴 리가. 믿기 어렵지 엄마도 무척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생각했어. 기회가 닿으면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보고 오자. 그러고 나서 두 딸에게 진실을 말해줘야지.

마침 좋은 계기로 베트남 땅을 밟게 되었어. 엄마가 읽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독자들이 성금을 모아 베트남에 평화공원을 세웠다는구나. 두 나라 사람들이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평화! 무슨 뜻인지는 너희가 더 잘 알지 전쟁을 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 거.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거. 툭탁거리고 싸우다가도 이내 풀어져 서로 악수하며 사과하는 너희는 평화를 원하는데 못난 어른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전쟁놀이를 즐기는구나.

베트남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 먼저 남북으로 기다랗게 국토가 놓여 있는 게 그렇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땅덩어리가 두 동강 난 적이 있다는 게 그래. 베트남은 이웃나라 강대국인 중국에게 끊임없이 침략당했음에도 1천년 이상을 ‘놈’이라는 고유문자를 갖고 떳떳하게 살아온 민족이야. 그런데 100여년 전부터 유럽의 강대국들이 식민지 확장을 위해 아시아로 몰려왔어. 프랑스가 베트남이 속한 인도차이나 반도를 차지했지. 베트남 사람들은 완강히 저항하며 독립전쟁에 임했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립전쟁을 이끌던 ‘호(치민) 아저씨’에 의해 통일이 되는 듯했어. 그런데 프랑스가 자기네 식민지를 되찾겠다고 다시 베트남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기나긴 전쟁(1946~75)이 시작되었어.

베트남 사람들의 완강한 저항에 손을 든 프랑스가 물러나가자 이번에는 미국이 그 땅에 발을 들여놓았어. 왜냐고 그때는 미국과 소련(현재의 러시아)이란 나라가 서로 으르렁대며 작고 힘없는 나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힘을 과시하려 할 때였어. 어른들은 이를 (<야인시대>가 아닌) 냉전시대라고 한다. 햄버거·치킨 등으로 너희에게 익숙한 미국은 베트남의 국토를 두 동강 낸 뒤 자기네 말을 잘 듣는 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는데, 이를 베트남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전쟁을 벌였어. 미국은 ‘불사조작전’ ‘평정작전’ 등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작전을 펼치면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정부를 세우려는 베트남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지. 그러면서 미국은 ‘세계평화 달성을 위한 십자군의 임무’에 동참할 것을 한국에 요청해 우리 군인 아저씨들이 베트남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야. 1964년부터 73년까지 8년여에 걸쳐 약 32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한국군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베트남 전쟁에 휩쓸렸지. 그 가운데 5천여명이 죽거나 다치고, 그때 미국이 뿌린 고엽제 때문에 지금도 많은 아저씨들이 고통에 시달린다는구나.

어여쁜 조각과 시원한 분수의 평화공원

사진/ 한-베 평화공원에는 한-베 어린이 문예대회 수상자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준공식날 그림을 둘러보는 현지 주민들.
지금부터 엄마가 말할 비극은 우리 국군 아저씨들이 본 적도 없고 한번도 싸워본 적 없는 밀림의 땅, 베트남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시작되었어.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은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푸른 산과 논, 강물, 구름, 하늘…. 순박하고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 엄마는 마치 초여름날 우리네 시골 어딘가로 여행을 왔다는 착각을 했다. 야자수만 없었다면 계속 그런 기분에 빠져 있었을 것 같아. 전쟁의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도 그야말로 평화스러웠어. 아담한 공원에는 어여쁜 조각과 시원한 분수가 더없이 사랑스럽더구나. 물론 그네·시소 등 아이들이 놀 놀이터가 없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건 앞으로 채워넣어야겠지 더운 날씨라 맨발의 청춘()인 꼬마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지. 활짝 웃는 함박웃음, 가지런한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부끄러운 듯 손을 내미는 아이들은 너희와 다를 바 없는 사랑스러운 어린 악동들이었어. 그 녀석들이 그린 그림은 한결같이 두 나라의 어린이가 같이 웃고, 놀고, 공을 차는 모습이더구나. “나는 푸른 평화를 사랑해. 더 이상의 전쟁이 없기를, 영원토록 아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있기를” 원하는 아이들이지. 엄마는 그 녀석들이 평화공원을 놀이터 삼아 무럭무럭 잘자라 전쟁 없는 지구촌에서 너희와 어깨동무하며 살게 되기를 하느님께 빌었어.

그런데 방문 초기부터 엄마가 베트남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평화의식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사건을 공부하고 있는 언니가 겪은 얘기를 들으며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어. 일가족 가운데 30명까지 한국군에 희생당한 마을이 있다는 자료를 보고 사실을 확인하려고 현장에 갔어. 눈가가 짓무른 한 할머니가 머뭇거리며 자꾸 그 언니 옷소매를 잡더란다. 그러고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대. “미안해, 우리 집은 한명밖에 안 죽었어. 그런데 그 놈이 대대손손 아주 귀한 하나뿐인 아이였어.”

한국군에 의해 양민집단학살이 있었다는 따이빈사의 고자이 마을에 가서는 드디어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어. 커다란 삿갓모자를 쓰고 아오자이라는 날렵한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빼면, 번잡스러움과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정겨움이 우리네 시골장과 다르지 않은 길을 지나갔어. 국도변도 아닌 이런 시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까 좁은 들길, 넓은 논, 고만고만한 집들, 한가로이 거니는 소떼,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달고 선 아름드리 나무들. 한참을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따라가면서도 내내 의구함이 가시질 않았어. 그런 의아함은 죽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다다르니 곧 가시더구나.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어. “미 침략 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깊이 새긴다. 1966년 2월26일 미국의 지휘 아래 남조선 꼭두각시 군대들이 380명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였다.”

엄마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사진/ 푸옌성 문화통신청 소속 가수와 무용인들이 역동적인 공연을 펼치며 한-베 평화공원 준공을 축하했다.
그리고 그들의 명단이 제단에 빼곡이 새겨져 있었어. 여섯살, 일곱살된 어린이에서 칠십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름에 알파벳 T자가 들어간 사람들이 특히 많았는데, 이들은 모두 여자야. 아, 사실이구나. 거짓은 아니었구나. 그때부터 엄마는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어. 그러고는 곧 할말을 잃었어. 꽂아둔 향 연기가 무지무지 매워서, 순전히 그 향 연기 때문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마을로 들어가 그 와중에 살아남은 분들을 뵙게 됐어. 열다섯살의 나이에 바로 옆에서 엄마와 여동생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저씨를 만났어. 어느 날 새벽, 마을에 들어온 한국군이 무작정 주민들을 모아놓고 총과 수류탄을 무차별 난사했다는구나. 그리고 살아계신 할머니 네분을 만났어. 그날의 흔적은, 한 할머니의 머리에 큼지막하게 남아 있는 총알자국을 엄마가 만져보면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어. 왼쪽 관자놀이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푹 패어 있었어. 후유증으로 하루도 편한 잠을 주무신 적이 없다는 그 분. 너희 할머니 연세야. 상상해봐.

엄마는 경악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엄마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할머니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희생자 무덤가에 가서 옆사람을 붙들고 소리 질렀어. “왜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이 사람들에게. 이 땅에 이 하늘에 대고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무슨 이런 거지 같은 역사가 있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는 불가피한 희생이 따른다고 그래서 너희 또래의 베트남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고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까 엄마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한다. 용서할 수 없어.

엄마가 본 베트남은 순하디 순한 커다란 덩치의 검은 물소가 발가벗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서 서로 장난치며 노는 평화로운 땅이야.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자기들을 죽이고 상처입힌 사람들의 사과를 눈물로 용서하는 사람들이지.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친구되기를 원하고, 손님에게는 지극한 환대를 베풀고 축복을 빌어주면서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네끼리 오순도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민족이지.

엄마의 결론은 이래. 어떤 이유로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베트남 전쟁은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라고.

엄마는 베트남에서 만난 수많은 어린이들과 너희의 눈망울에서 평화의 씨앗을 본다. 씨앗은 마르지 않고 보기 좋게 통통한 모습을 하고 있지. 평화를 염원하는 단비가 내리면 씨앗에서 잎이 나고, 예쁜 꽃이 피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거야.

모든 어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란다

사랑하는 딸 은수, 민수야.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모든 어른들이 다 전쟁광은 아니란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양심을 믿는 어른들이 더 많아. 바다에 홀딱 벗고 뛰어들 수 있는 순진무구함과 함께 평화를 해치는 악의 세력에 대해 로봇 태권브이처럼 두 눈 부릅뜨고 맞서겠다는 올곧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 말야.

적어도 엄마랑 이번에 베트남에 같이 간 어른들은 그래. 나중에 기회 닿으면 소개시켜주마. (재미있는 별명 알려줄까 반미·자주 운동의 잔다르크 언니, 미술계의 만능 탤런트 구준엽 오빠, 건축계의 베토벤 아저씨 등.)

우리 희망을 갖자.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는 반드시 올 거야.

마지막으로 우리 베트남 친구들에게 인사하자.

미안해요 베트남

사랑해요 베트남

우리 함께 손 잡고

평화랑 뽀뽀해요.

안정애/ 독자대표·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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