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복수는 복수를 부른대요

442
등록 : 2003-01-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아버지의 출장길에 동행한 한국인 아저씨 “베트남을 도울수록 내 마음이 가벼워진단다”

한국-베트남 어린이 문예대회 베트남 산문 부문 수상작

1등상

한국 친구들에게

판 티 하 뚜옌(Phan Thi Ha Tuyen)/ 다오 주이 뜨 소학교 3학년 B반

나는 판 티 하 뚜옌이고, 뚜이호아시에 있는 소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어. 그렇지만 내 고향은 역시 뚜이호아라는 이름의 현이야. 이제 곧 완공될 한국의 평화공원이 세워지는 곳이야. 내 고장 푸옌성 모든 지역 친구들은 평화공원의 완공을 축하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베트남-한국 우정의 문예대회에 참여하고 있단다.


친구들아! 예전에 내 조국 베트남과 내 고향 푸옌은 늘 적들로부터 침탈당해왔어.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그들은 흉악하기가 호랑이 같고, 상어 같고, 마귀할멈 같았단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죽였어. 아이들도 풀어주지 않았고, 결국 그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어. 야만적인 사람들 속에는 한국군들이 많이 있었단다. 내 조국 베트남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를 사랑하고, 누구도 서로 싸우는 걸 바라지 않았지만, 또한 어느 누구도 악독한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단다. 모든 사람들이 총을 들고 적들과 싸웠어. 적들은 크게 패했고 모두 도망쳤어. 그리하여 지금까지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단다, 친구들이여!

그 당시 우리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나의 친할머니와 세 명의 작은외할아버지가 모두 열사로 희생되었어. 두 분이 한국군에 의해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내 고향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군을 증오했다고 해.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어. 왜 복수를 위해 모든 한국 사람들, 모든 악독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나요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어. 평화가 오고부터 증오의 마음이 점점 엷어졌단다. 그리고 모든 한국 사람들이 다 나쁘고 악독한 것은 아니란다. 게다가 복수는 좋은 것이 아니지. 증오는 계속 증오를 낳고, 복수하고 다시 복수하는 일은 정말 나쁘단다. 우리집 형제들도 때로는 서로 화내는 때가 있지 않니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 누가 잘못했고 잘했는지 알게 되고 다시금 서로 사랑하고 돕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내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세 살 난 여동생이 있어. 누가 하루라도 집을 비우면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단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마다 나는 정말 슬퍼. 그래서 친구들아, 텔레비전을 통해 너희 나라가 여전히 둘로 갈라져 있고, 어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훌쩍훌쩍 우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따라 울었단다. 한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이렇게 슬픈데, 한 나라가 서로 갈라진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분명 곧 서로 가까워지게 될 거야!

내 고향에는 한국 아저씨들이 회사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단다. 그 아저씨들은 정말 착하고 마음씨 좋은 분들이야. 어서 빨리 너희를 만나서 함께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며 놀고 서로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어.



한국인들은 미국에 속았을 뿐

판 티 하 뚜옌(Phan Thi Ha Tuyen) 우리 고향에서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특히 전쟁으로 고통받은 시절에 대해, 그 전쟁에 참여한 한국 사람들에 대해.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일 뿐이기에 여전히 한국 사람들을 가엾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특히 제 친구들인 한국 어린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단결하고 돕는 마음으로 베트남에 대해 그리고 제 고향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등상

베트남과 한국의 우정과 평화

쩐 주이 호안(Tran Duy Hoan)/ 락 롱 소학교 5학년 E반

지금도 나는 2001년 여름방학을 자주 떠올린다. 중부지방으로 출장을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선 그 여행길을. 아버지는 타피오카 전분제조 공장 건설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출장을 가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해 아주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하는 사업이다. 그들은 이 공장 건설사업에 100%의 자본을 투자했다. 이 사업이 실현되면 오랫동안 실업자로 있는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고, 농한기 때 일손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거칠고 메마른 중부지방에 사는 농민의 수입증가와 생활개선, 가난 탈출을 도울 것이다.

아버지 출장길에 동행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외국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저씨는 키가 크고 살결이 하얗고, 머리카락이 짧았는데 거의 백발이었다. 아저씨는 대부분 차를 몰고 왔는데 아버지와 나를 태우고 놀러가거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어떤 베트남 사람을 만나든지 아저씨는 늘 존경을 표시했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함께 다니는 동안 아저씨는 영어를 사용했지만 가끔 아버지와 아주 친하게 베트남어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집에 돌아올 때 아저씨는 내게 정말 귀한 장난감들을 많이 사주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 아저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5년 이전에 아저씨도 그의 부대원들과 함께 총을 들고 우리 남부 베트남의 동포들을 죽인 시절이 있었다. 특히 어느 곳보다 화염이 가득한 남중부 베트남에서 한국군들은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잃고 부인은 남편을 잃고, 집과 논밭은 폭격에 산산조각이 나고, 마을 사람들은 한없는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아저씨가 지금 하는 일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아저씨는 말했다. “베트남 사람들을 도우면 도울수록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 오늘 아저씨가 세우고 있는 전분제조 공장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 가운데 어쩌면 예전에 아저씨에 의해 또는 아저씨의 부대원들에 의해 살해된 부부와 여성들의 아이들이 일을 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저씨 부대가 쏜 총폭탄 더미 아래 죽어 있던 아기들과 노인들의 모습이 밤낮으로 아저씨를 괴롭히고, 아저씨로 하여금 베트남 사람들을 돕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하도록 재촉했을 것이다. 언젠가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베트남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도록 촉구할 것이다. 베트남이 아시아와 당당히 겨룰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길 빈다.”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다. 우리 조국은 여전히 가난하고, 국민은 여전히 고생스럽다. 우리는 지금 외국 투자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는 한국 아저씨 같은 자세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머지 않아 우리 베트남 경제도 부강해질 것이고,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교류하는 날이 오게 될 거야.”



나의 영광, 학교의 영광

쩐 주이 호안(Tran Duy Hoan) 2등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너무나 행복했지만 계속 의심이 들었다. 이게 정말 꿈일까 생시일까 그러나 어찌 꿈일 수 있단 말인가. 12월18일 아침에는 학교에서 수상 기념사진까지 찍지 않았는가. 이것은 매우 고귀한 상이고, 내 자신의 영광일 뿐 아니라 우리 락 롱 소학교의 영광이다. 나는 어떻게든지 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빈다. 내 고향에 큰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한국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실업자들에게 많은 일자리가 주어지고, 두 나라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함께 교류하고, 그리고 내 자신도 한번쯤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 좋겠다.

2등상

한-베 평화공원

도안 쭝 히우(Doan Trung Hieu)/ 호아 딘 동2 소학교 4학년 H반

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 한번, 엄마와 아빠가 나를 데리고 우리 성에 있는 한-베 평화공원에 가주었으면.

나는 그려본다. 여러 색깔로 융단처럼 펼쳐진 공원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하늘 높이 솟은 야자수나무들과 바람에 살랑이는 큰 잎새들. 꽃밭으로 발을 디밀면 빨간 벽돌로 선을 두르고, 반짝반짝 윤을 내어 까맣게 포장한 산책도로. 아주 거대한 뿌리가 서로 엉킨 것처럼 공원 곳곳을 가로지르는 산책길. 그 길을 따라 이어지는 가지각색의 화단. 햇빛 속에 빛나는 노오란 국화꽃, 빠알간 장미꽃, 화려한 노란빛의 해바라기꽃. 만발한 꽃들 사이로 잎을 짧게 쳐서 아주 예쁜 동물모양으로 만든 분재나무들. 여기엔 어린 사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망연히 관광객을 바라보는 형상. 저기엔 작은 새가 모이를 찾는 양 여린 잔디밭에 부리를 기울인 형상. 또 저기엔 공작새가 마치 공연을 하기 전 관객들에게 인사하듯 꼬리를 활짝 펴고 있는 형상.

공원의 한가운데는 바람과 비에 도전하는 듯한 커다란 바위가 서 있고, 그 아래는 돌 사이에 숨었다 어렴풋이 나타나 꼬리를 치는 금붕어떼들. 공원 이곳저곳에는 커다란 나무지붕 아래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색색의 돌의자들. 놓은 곳에 올라서서 시선을 저 멀리 던지면 짙푸른 나무 울타리 너머로 어른거리는 붉은 지붕들. 더 멀리로는 안개에 싸여 흐릿한 냔 산과 쩝짜이 산봉우리. 오후가 되어 해가 서편으로 기울면 수면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아이들 웃음소리로 빛난다. 가장 붐비는 것은 역시 팽이그네와 전기자동차 놀이터. 이곳은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상큼한 얼굴과 기쁨으로 빛나는 눈빛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아, 어느 여름방학엔가 내가 이토록 바라는, 푸옌성 한-베 평화공원에 놀러가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선생님 은혜에 보답할래요

도안 쭝 히우(Doan Trung Hieu) 나와 우리 반, 그리고 우리 학교의 큰 영광이다. 이 기회를 빌려 문예대회 조직위원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그동안 내가 이 작품을 잘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독려해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나는 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한-베 평화공원이 빨리 완공되기를 바란다. 선생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에 우리 성을 건설하는 휼륭한 공민으로 자라날 것을 약속드린다.

3등상

추억을 떠올리며

도안 티 낌 (Doan Thi Kim Phuong)/ 쯩 브응 소학교 4학년 H반

친구야, 해가 서둘러 황혼 속으로 지고 있어. 어떤 즐거운 놀이라도 끝을 내야겠지. 우리도 이젠 헤어져야 할 거야, 친구야! 안녕, 나의 친구, 이제 막 사귄 친구야. 그러나 오늘 우리 추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이 공원은 내일의 약속장소가 될 것이고, 또한 새로운 친구들의 장소가 될 거야. 마지막 순간 우리 가장 친근하고 달콤한 말로 서로를 축복하자. 오늘 이별의 시간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아주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게 될 거야. 우리 함께 기원하자, 온누리에 평화가 고루 스며들기를. 언제나 찬란한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이 공원과 같은 수만수천의 공원이 생겨나기를. 지구촌 모든 나라의 소년소녀들이 손을 맞잡고 사랑의 노래 부를 수 있기를. 피로 가득한 전쟁은 사라지기를. 더 이상 가족의 탄식도, 신음소리도, 울음소리도 없기를. 우리 오늘보다 아름답고 즐거운 날에 다시 만나자.

친구여 안녕.



공원에서 한국 친구들 만나자

도안 티 낌 (Doan Thi Kim Phuong) 비록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는 영광과 행복은 아직 누리지 못했지만, 나는 그 친구들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 새롭고 신기한 지식들을 교류할 수 있으면, 온 나라 구석구석을 떠돌며 함께 뛰놀 수 있으면 더 신나고 기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오직 사랑만이 있기를 바란다. 머지 않아 한국과 베트남의 어린이들이 만나 한-베 평화공원에서 함께 놀 수 있기를 바란다.

3등상

외갓집에서 보낸 여름날

응웬 티 호앙 카(Nguyen Thi Hoang Kha)/ 쯩 브응 소학교 4학년 H반

여름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갔다. 부모님은 나를 평화공원에 데려가주었다. 꽃들은 만발하고, 모든 것들이 너무나 환상적인 그리고 아주 시적인 공원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공원에 간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아침 공기는 약간 쌀쌀했다. 투명한 햇살은 화원에 심은 인동덩굴 더미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나를 둘러싼 주변은 생기로 가득했다. 나는 잎이 다 져버린 아몬드나무 위에 돋은 수많은 에메랄드빛 어린 싹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장난꾸러기같이 작은 두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푸른 잎새들이 자신의 비밀이라도 간직하듯 수많은 꽃눈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공원은 마치 축제에 가는 옷차림을 하고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온통 순결한 백색의 재스민나무들은 달콤한 냄새를 풍겼고, 금빛 찬란한 해바라기꽃들은 작고 예쁜 태양과 같았다. 거만한 장미는 마치 우아한 공주처럼 턱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새빨간 빛깔, 부드러운 꽃잎, 그리고 감미로운 향기. 꽃밭만으로도 정말 아름다운데 찬란한 금박으로 치장한 노랑나비, 흰나비들의 날개로 더욱 화려하게 수놓아졌다. 바람이 내 얼굴을 살짝 스치듯 지나갔고, 수많은 나비들은 꽃잎 위를 떠다녔다.

여름 한철을 외가에서 보내면서 아름다움을 만끽한 나는 훨씬 튼튼해졌고, 더욱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내 자신을 단련시켜 미래에 내 고향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가꾸는 데 기여하겠노라 스스로 다짐했다.



우정의 교류 나누고파

응웬 티 호앙 카(Nguyen Thi Hoang Kha)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 간 우애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다. 먼저 베트남과 한국의 어린이들은 모두 아시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풍습과 문화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푸옌성 어린이를 대표해서 우리 푸옌성 뚜이호아현에 한-베 평화공원을 세워주고, 학교를 지어주고, 푸옌성 공업구에 투자해준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푸옌성 어린이들이 한국 어린이들과 우정의 교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친구들과 국민 모두 건강하고,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 우정이 깊어지기를 축원한다.

3등상

평화 찬양, 전쟁 반대

응웬 티 뚜옛(Nguyen Thi Tuyet)/ 안 푸 소학교 5학년 A¹반

오늘, 우리는 평화롭고 독립된 나라에 살면서 책을 껴안고 와글와글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의 선조들과 앞서간 분들은 프랑스 식민주의와 미 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모른다.

비록 평화의 시기에 태어났지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조금이나마 선조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전쟁이 가져다준 상실과 공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전쟁은 수많은 참상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가족을 산산조각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야 했고, 또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을 잃어야 했는가. 지난 100년 동안 이보다 더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우리 민족은 겪어왔다. 이제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다 돼오지만 후유증은 오래도록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고엽제로 인해 기형아로 태어나고 있는가.

우리 조국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자신의 반평생을 또는 자신의 전 생애를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줄 아이 하나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전쟁 후유증은 소박한 꿈마저 앗아가버렸다. 왜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킬까, 무엇을 위해서, 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화목하게 살지 못하는 걸까, 왜 함께 손잡고 서로 도우며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교류하지 못하나.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기를, 지구의 모든 아이들과 함께 밝게 웃을 수 있기를. 지구의 모든 아이들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끼고 학교에 갈 수 있기를.



증오를 버리고 미래를 위해

응웬 티 뚜옛(Nguyen Thi Tuyet)이번 문예대회는 전 세계 인민들에게 “전쟁을 반대하고 단결하라”, “평화와 우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살라”고 외치는 것이다. 증오를 버리고 미래를 위해서 살자. 한국과 베트남도 더욱 가까워지고 단결해야 한다. 이번 문예대회는 또한 우리 한-베 두 나라 사이 우정과 평화를 위한 자신의 느낌과 소망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