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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뽀뽀를 얼마나 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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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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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어린이 문예대회 예선심사평]

‘한-베 어린이 문예대회’ 출품작들에 대한 예선심사가 지난 11월6일 오후 5시부터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등 한겨레신문사 문화담당 기자들이 중심이 된 예심위원들은 출품된 시·산문·그림·만화 2천여편을 꼼꼼히 살펴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예선 통과작을 가려냈습니다. 이날 다섯 시간의 심사결과 시·산문 각각 60여편과 그림 70편, 만화 30여편이 본선심사에 올랐습니다.

본선심사는 11월1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며, 최종 심사결과는 <한겨레21> 436호(11월26일부터 발매)에 실립니다. 편집자

<시·산문>

‘자기만의 시선’에 높은 점수


아이들은 어른들을 잘 놀래킨다. 예측불허의 상상력과 덜 ‘길들여진’ 논리력에서 나온 아이들의 말과 문장은 경이로울 때조차 있다. 수북이 쌓인 시와 산문을 하나씩 읽어가던 예심 심사위원들은, 조금 과장스레 말하면, 피곤할 틈이 없었다. 갑자기 깔깔거리거나 빙긋이 미소짓게 되는 상황이 연이어 생겨났다. “여기 좀 읽어봐요,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하며 글을 돌려읽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왔다. 물론 터무니없이 사실을 건너뛰는 문장도 많았다. 저는 6·25 하면 유관순 누나가 생각납니다, 같은.

하지만 즐거운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베트남전을 소개한 백과사전을 그대로 옮긴 듯한 산문이나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어긋난 정의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글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이들의 시선은 어른들이 일러주고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라이 따이한의 문제까지 지목하는가 하면, “부시의 아버지도 전쟁을 일으키더니 그 아들 대통령도 또 그런다. 미국은 왜 그럴까” 하는 뒤통수를 치는 듯한 글도 있었다. 9·11 테러에 대한 공포감과 우려가 보편적이라 할 만큼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은 다소 의외였다. 아이들에게 왜 이런 비참한 사건들이 생기는지 그 배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은 무조건 악이고, 미국은 무조건 선이라는 어느 한쪽의 이분법이 판박이처럼 적용되는 상황은 어딘가 이상했다.

시와 산문쪽의 심사기준도 ‘어린이다움, 기발한 착상, 솜씨, 메시지, 성의’란 5가지에 두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린이다움과 기발한 착상이란 항목을 자유롭게 드러내기에는 평화라는 주제는 아무래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베트남이란 나라에 대한 구체적 경험이 없는 경우가 압도적어서 시와 산문을 막론하고 추상적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너무 헐벗고 있어서 한국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말이 근거를 갖추지 못한 채 되풀이됐다. 특히 시의 경우, 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하자’류의 구호성 글이 많았다. 주장과 메시지를 과도하고 거창하게 담기보다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담은 글이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표현력과 논리력은 부족할지언정 자기만의 시선이 담겨 있는 글을 우선적으로 뽑았다.

예심위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이상수 기자 김은형 기자(이상 한겨레 문화부), 이성욱 기자(한겨레21)

<그림·만화>

삐뚤삐뚤함 속에 발랄함이…

사진/ (이용호 기자)
“와, 이렇게 많다니~”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그림더미들 앞에서, 예심 심사위원들은 한숨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한-베 어린이 문예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의 작품은 그림 538편, 만화 169편.

‘누구를 떨어뜨려야 하나’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잠시 어릴적 그림대회에 나갔던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리며 난감해했다. 의논 끝에 ‘어린이다움, 기발한 착상, 솜씨, 메세지, 성의’란 5가지 기준을 정했다. 그리고 이 기준에 못미친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계속 추려내는 방식으로 그림 70여편, 만화 20편 정도를 골라 본심에 올리기로 했다.

먼저 그림 부문. 네명이 일렬로 죽 늘어서 한 작품씩 품평을 시작했다. ‘구도는 좋다’ ‘메시지 전달력이 약하다’ ‘열심히 그린 흔적이 보인다’ ‘색처리가 훌륭하지 않냐’ 분분한 의견 속에 한장, 한장, 운명이 결정돼갔다. 응모작들은 지구촌에 평화가 이뤄질 때의 조화롭고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거나,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 특히 이 주제를 구체적인 장면 묘사로 연결시켜 현실감을 살린 뛰어난 작품도 눈에 띄었다. 반면 ‘평화’라는 주제를 잘못 해석해 단순히 전쟁터를 그리거나, 친구와 즐겁게 노는 ‘평화스러운’ 모습을 묘사한 작품도 많았다. 이중엔 구성이나 색감 등 그림 솜씨가 나무랄데 없는 작품도 많아 심사위원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렇게 1차로 고른 작품을 세어봤더니 무려 145점. 본심을 위해선 반수로 줄여야 했다. ‘열심히 그린 성의를 봐서 일단 뽑아주자’며 동정론을 강하게 내세우던 장봉군 화백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주장을 굽혔다. 70점으로 좁혀진 건 5시간이 흐른 뒤였다.

만화 부문의 경우엔 ‘평화’라는 주제를 이야기그림으로 풀어내기가 어린이들에게 버겁지 않은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두세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해 남북분단, 세계평화에 대해 계몽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작품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비뚤비뚤한 그림칸 사이로 익살맞은 재치가 엿보이는 몇몇 작품들은 어린이다운 천진함과 발랄한 아이디어로 심사위원들을 행복하게 했다.

예심위원 장봉군 화백(한겨레 편집국), 노형석 기자(한겨레 문화부), 장광석 팀장(디자인 이즈 한겨레21 담당), 이주현 기자(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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