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에 부쳐
우리는 왜 그토록 피를 흘린 전쟁을 통해 배운 게 너무 적은가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억’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행동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무자비한 복수극을 단행한 것은 그들 스스로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이미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고려를 포기했다. 존 웨인식 합리주의가 절대적 가치가 아닐 수 있다는 데 대해 한번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최첨단 미사일은 그곳 주민들의 귀중한 생명은 물론 그들이 수천년 동안 지켜온 아름답고 혹은 슬픈 삶의 기억들도 동시에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부시와 샤론은 인디언 학살과 아우슈비츠의 기억마저 깡그리 잊어버렸다.
고엽제보다 더 치명적인 후유증
현재 베트남에서는 김혜수라든지 장동건, 이병헌 등 한국의 연예인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사람들은 저녁마다 그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고, 길거리 가판대에서는 그들의 브로마이드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베트남 최대의 도시 호치민에서 시민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백화점과 수도 하노이에서 제일 크고 좋은 호텔도 한국 것이다. 학생들에게 대학의 한국어과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처럼 화려한 이미지만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 현지에서 노동문제를 제일 많이 발생시키는 외국 기업 속에 한국 기업도 들어가는데, 한 신발공장의 한국인 여자 기술자가 신발로 여성 노동자 열다섯명의 뺨을 때린 사건이 발생해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코리안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베트남인 노동자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이 처음 와서 배우는 우리말 교재에는 “사장님,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라든지 “왜 밀린 월급을 주지 않나요?” 같은, 정말이지 생활에 필요한 ‘일상회화’가 가득하다.
‘증산, 수출, 건설’만이 최상의 가치였던 지난 시절, 마산수출지역에서 외국인 관리자의 구타와 모멸을 견디며 눈물밥을 먹던 노동자는 이제 없다. 그런데 기억이 사라진 순간, 남는 것은 무엇일까.
베트남전쟁은 수십년 전에 끝났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그렇듯 그 전쟁 역시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게 베트남전쟁에서 흘린 피의 대가라는 말, 믿는다. 낯선 밀림 속에서 죽은 이들. 그들의 가족들. 지금도 새벽같이 보훈병원에 다니며 접수 순서를 기다리는 상이용사들. 정부도 미국도 나 몰라라 하는 고엽제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냉수 한 사발을 벌컥 들이켜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후유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그 전쟁을 통해 배운 게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 전쟁의 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었다. 그 가해의 상처가 지금 이 땅에서 참전용사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 못지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했다는 전시 명령, 믿고 싶다. 그러니 그 명령이 그 당시 현지에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한다.
너도 빨갱이냐?
지지난해 연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강당을 가득 메운 군복 차림의 참전용사들은 발제자들의 입에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고함을 토해냈다.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 “너, 빨갱이 아냐?” 함께 참석한 내 동료가 고함소리에 놀라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얼룩무늬 군복의 한 노병이 대뜸 호통을 쳤다. “뭐야? 너도 빨갱이야?”
베트남에 평화공원을 세우고 그 안에 평화역사관도 건립한다. 그것이 베트남인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상처까지 쉽게 위무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상처를 덧나게 할지도 모른다. 모처럼 한류열풍이 분 베트남에서 왜 또다시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냐고 볼멘 목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기억을 남김 없이 전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만이 진정한 미래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김남일 l 소설가

사진/ 우리는 그 전쟁의 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었다.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 현장에서 <한겨레21> 구수정 통신원을 환영하는 한 생존자 할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