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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권운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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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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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베트남 양민학살 캠페인 총정리… 깡패 의리적 국익논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자

참가자

강정구/ 동국대 교수·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 공동대표
정창권/ 백상치과 원장·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
차미경/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양민학살? 민간인 희생?

사회 먼저 '양민학살'이라는 용어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한겨레21>이 '양민학살'이라는 말을 쓰는게 편협하고 일방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간인학살' '비전투원학살'이라 해야 하고, '학살'이라는 규정보다 '사살',더 나아가 '피해'또는 '희생'이라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강정구 서구에서는 ‘양민’이라는 개념이 없고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빌리언(civilian) 즉 민간인 학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양민’은 이념적 대립관계 속에서 주로 ‘좌익을 제외한 민간인’이라는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양민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것은 좌익이라는 사회주의 지향세력을 죽이거나 옥살이를 시켜도 되거나 사회에서 배제해도 좋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성립되는 것이죠. 양민은 세계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고 우리 역사의 특수한 개념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어떤 이념의 차이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살해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전부 다 집단학살로 봅니다. 점점 더 인권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념의 차이 때문에 박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현재의 인권 개념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민간인과 양민을 동일어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민간인은 양민이고 양민은 민간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회 양민과 민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감이 다릅니다.

강정구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 역사의 특수한 개념이기 때문이죠.

정창권 전쟁이나 어떤 정치적 판단, 군사적 결정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규정됩니다. 넓게는 한국사회가 규정하는 것이지만 지극히 편협하고 자의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 베트남에 가서 밀라이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한국군이 어떤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미군이 저질렀고 기록에 남은 것이 저 정도라면 미군보다 더 위험한 작전을 해야 했던 한국군한테 목숨을 잃은 상황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공포였습니다.

차미경 이념 장벽이 있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 한번은 꼭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피해자나 인권의 관점에서 이 용어가 맞는 것인지를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참전군인도 포함된 인권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명분을 정당화하고 여전히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개념 논쟁이 애매하게 진행됩니다. 그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시작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됩니다.

강정구 ‘학살’ ‘희생’ ‘피해’ 이런 개념 논의가 은연중에 깔고 있는 것은 전쟁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점입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전제이죠. 사실 베트남전에서도 민간인 희생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민간인 희생의 경우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과실치사라고 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면 됩니다. 살인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작전이나 교전중에 민간인이 우연하게 희생되는 경우죠.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엄청난 인권침해라고 시비를 걸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전쟁은 아니지만 67년 동해안의 대간첩 전투에 참여해 동료 10여명이 죽은 교전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옆에서 있는 동료가 쓰러져 죽으니 상당히 흥분되고 만약 적과 비슷한 무엇이 나타나면 그대로 죽이게 되는 상황이죠. 그러나 우리가 쟁점화하는 것은 우연적이고 개인의 실수로 여겨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실수를 해서 어쩌다 생기는 민간인 피해와 체계적·조직적·집단적·의도적인 살해하고는 전혀 다르죠. 지금 우리가 진상을 밝히고 베트남에 사죄하자는 부분은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집단학살에 대한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민은 안 되고 베트콩은 되는가

사회 <한겨레21>이 초점을 맞춘 것은 양민학살이었지만, 그렇다면 양민이 아닌 베트콩을 죽인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베트남전의 본질과 성격에 관한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는 거지요.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베트남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연구 수준이나 사회의 인식을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강정구 베트남전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나 인식의 변화는 광주항쟁이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로 베트남전을 해석했고, 파병도 한국전쟁의 은혜를 갚고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에 동참한다는 박정희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다른 각도에서는 조명하지 못했죠. 광주항쟁 이후 미국의 실체를 알게 되고 현대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베트남전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6월항쟁 이후 학문사상의 자유가 확대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민족해방전쟁으로서 베트남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을 베트남 사람의 눈으로 즉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연구한 글은 지금도 역시 소수에 불과합니다. 요즘에도 학계의 주관심은 베트남의 경제발전이나 개혁, 개방에 모아져 있죠.

차미경 베트남전은 물론 우리가 한국전쟁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인식 수준은 거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 이유가 한국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는 반공 논리입니다. 둘째는 전쟁이나 학살, 우리가 끼어들었던 다른 나라의 민족해방운동을 인권과 평화라는 언어로 담론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인권과 평화의 영역에서 담론을 구축하지 못했던 한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군사정권이 한국사회에 아주 오랫동안 미치고 있는 비도덕적인 영역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민간정부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3가지 요인들이 국내에서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했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가 세계의 인권·평화운동의 흐름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베트남전 때 가장 큰 가해자인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때문에 평화운동이 시민운동의 가장 큰 이슈가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참전을 너무도 당당하게 정당화하는 명분과 논리를 만들어냈죠.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시민들이 흡수됐고, 바로 지금 진실을 올바로 세우는 데도 여러 가지 장애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 정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것도 80년대 초반 베트남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무관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정창권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리영희 교수의 책을 읽고 냉전논리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한 학자 개인의 논리가 아니라 이미 바깥에서 세계적으로 결론이 난 규정이었다는 게 충격을 줬습니다.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들었을 때 당혹했습니다. 한국군이 참전해 얻은 경제적 부의 수혜자가 바로 우리인데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제가 또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한국사회에서 인권, 평화 등의 객관적 기준으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의 문제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서로 다른 잣대를 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도 “우리가 뒷발 한번 잘못 찬 것 아니냐” “전쟁중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가볍게 넘어 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점심 먹다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 문제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잣대를 우리한테 적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강정구 이중잣대죠. 너무 심합니다.

참전군인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다

사회 <한겨레21> 캠페인을 하면서 느낀 건데, 베트남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놀랄 만한 정도로 낮습니다. 가령 아직도 베트남 참전 한국군이 용병인가를 놓고 해묵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정창권 사실은 저도 그 문제 때문에 싸웠습니다. “왜 용병이라고 하냐. 그러면 그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돈 때문에 참전했다고 생각하느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산주의를 무찌르고 경제발전을 이룬다는 고귀한 의식을 가지고 참전했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이었죠.

사회 공산주의를 무찌르겠다는 것보다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참전군인들은 많이들 얘기합니다. 참전하지 않았다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중인 2개 사단을 베트남으로 돌렸을 것이고, 결국 북한이 다시 남침해 적화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논리지요.

차미경 책임을 참전군인한테 돌린다면 정작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있는 집단이 교묘하게 피해나갈 수 있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참전군인이 그렇게 믿는 배후에는 한국 정부가 있습니다. 또 군사 논리와 전쟁의 명분론으로 우리 사회를 50년 동안 지배한 이데올로기가 책임이 있는 것이죠. 이것을 밝히지 않으면 참전군인들이 마치 책임이 있는 양 오도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 지식인들한테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과거 청산을 하는 데 과연 지식인의 참여가 얼마나 이뤄어졌느냐를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이들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용병으로 참전했던 군인들이 자신의 논리를 홀로 정당화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강정구 용병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용병은 참전하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의 성격이 어떠하든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이 용병이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 다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참전군인은 결코 용병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주장이 또 정당하다고 볼 수 있죠. 왜냐면 정부에서 베트남 참전은 공산주의를 막고 자유 우방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고, 참전군인들은 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전쟁에 사명감을 가지고 참전한 겁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물론 일부 그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명분과 돈이 결합이 되어 있으니 이것을 순수 용병이라고 할 때 참전군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힘든 거죠. 그러나 외부에서는 한국군의 파병이 자의적이고 공산주의를 물리친다는 사명감으로 결정했다고는 결코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압력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파병 결정을 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외부의 시각은 참전 한국군이 분명히 용병이라는 시각이죠. 역사적으로 규명할 때는 용병이라고 규정하는 게 맞는데 참전군인들은 주관적으로 용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국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미군이 철군했을 것이라고 하나 당시 국제정세는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미군이 나가면 공산화된다는 논리를 군인들한테 철석같이 믿게 했죠. 국가가 허위 이데올로기를 군인들한테 전파하고 허위의식으로 사로잡아 참전군인들이 헌신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참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식인이여 침묵하지 말라

사회 차 국장님이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참여를 거론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파병 때도 지식인들이 어떤 식의 발언을 했을 텐데 지금은 참전군인의 논리를 참전군인이 스스로 정당화할 뿐 많은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정창권 저도 공감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매듭인 베트남전 문제는 공개적으로 학문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의 작업이 미진해 시민들이 움직이는 데 이론적 베이스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에 직접 가서 보고 난 다음의 감정적 동인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월사령관이었던 채명신씨도 당시 주한미군 철수가능성을 이야기할 정도지만 일반인들은 실제 그런 주장이 맞는지를 검토할 정보가 없습니다. 조금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강정구 조금 문제가 아니라 큰 문제죠. (웃음)

차미경 <한겨레21>의 보도를 계기로 시민들의 성금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전에 대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오는 10월에 학자들이 워크숍을 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십년 전의 일을 이제야 끄집어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지식인이나 언론, 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이 얼마나 소수의 언어에 침묵하고 있습니까. 이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강정구 사실 지식인들이 대체로 기득권 세력이죠. 그러니까 기존 체제에 부응하는 그런 연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지식계가 과잉 서구화됐습니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이건 사대주의 지식인이죠. 베트남전도 미국 중심의 베트남전 성격규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국 정부의 허구적인 베트남전 참전 의미를 그대로 수용합니다. 제가 97년도에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냈습니다. 수준은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런데 학술진흥재단에서 D 판정을 받아 2년 동안 연구비 신청자격을 박탈당했어요.

사회 개인적인 원한이시군요. (웃음)

강정구 논평한 사람이 이것은 논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선전이라고 평했어요. 도대체 학문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논평한 겁니다. 그러니까 아예 볼 필요도 없는 거죠. 그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지식계가 얼마나 서구편향적이며 사대주의적이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아직까지 찌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군보다 미군이 훨씬 심했다

사회 일부 독자들이 “베트남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고 다니느냐”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 잔잔한 못에 돌을 던지느냐는 거죠.

차미경 저는 이 운동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국익도 과거의 개념이 아니라 21세기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 전쟁의 후유증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게 21세기 우리의 과제라고 한다면 이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운동입니다. 현 정권도 이 점을 깨닫고 있지 못할 때 한국의 시민들, 치과의사들이 먼저 깨닫고 베트남전 진실규명에 나서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잘못된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알고 싶어요”라고 애기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정창권 우리가 안 한 일을 가지고, 예를 들어 남극 대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난센스죠. 그러나 이 일은 우리가 실제로 관계를 맺은 과거 역사에 대한 얘기거든요. 국익을 거론하는 분들께는 제가 베트남에서 겪은 일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겁도 조금 났습니다. 쿠앙응아이성 당서기를 어렵게 만났는데 농담도 건넸습니다. “올 때 우리가 어떻께 할까 각오는 하고 왔느냐, 부인이 곱게 보내주느냐” 그런데 술 한잔하고 제 어깨를 잡고 그러더라고요. “당신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찾아와 준 게 정말 고맙다. 이제야 겨우 나는 한국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게 됐다.”

강정구 광주학살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만약에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당시 진상조사가 이뤄졌다면 우리 군부가 정말 광주에서 학살을 했겠는가. 국익, 국익하는데 70년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 밝혀졌으면 광주학살은 없을 것이란 엄청난 국익을 얻었다는 것이죠. 단선적인 사고의 국익 개념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국익에는 전제 조건이 있죠. 국익이 지구촌의 공동이익과 일치하면 비난할 수 없고 당연히 힘을 모아야 하죠. 그런데 제3세계나 지구촌 전체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도 우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깡패 논리죠. 깡패 소수집단은 자기들끼리의 이익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의리를 지키는데 그놈의 의리가 사회 전체에 얼마나 해악을 끼칩니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국익을 거론하는 것은 깡패 의리적인 논리입니다.

차미경 지금은 국익의 중심이 최대한의 경제이익을 추구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도 경제적 이해관계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일으킨 여러 노동·인권문제를 볼 때 결국은 과거 역사에서 제대로 풀지 못한 상황의 연장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기업이데올로기을 가진 사람들로 받아들입니다. 저희가 베트남 사람들한테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가장 싫어하는 기업이 한국 기업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사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말할 때면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21>의 일부 독자들은 밀라이사건만 기억하고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많은 학살을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고요.

강정구 직접 민간인을 마주보고 학살한 대면 학살도 사실 미군이 한국군보다 더 많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B52 폭격기나 고엽제 등으로 집단학살한 숫자는 정말 엄청납니다. 한국군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이라고 했을 때 직접 얼굴을 보고 총 쏘고 칼로 찌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뿐이 아니죠. 미사일 한방으로 수천명의 인명이 사라지는 엄청난 학살을 미국이 자행했고, 비밀공작을 통해 베트남뿐만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도 학살을 했습니다.

정창권 베트남의 관리들도 “우리 주적은 미국”이라고 합니다. 당신네들은 미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데 왜 그렇게 독한 일을 저질렀냐고 하더라고요.

피해자가 피해자의 처지를 안다

사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는 양민학살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주장하고 있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강정구 한국은 모순적입니다. 한편으로 역사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죠. 한국전쟁 때 미군의 민간인 학살, 일제 때의 종군위안부 등의 문제는 우리가 분명 피해자인데 이 피해자가 베트남전에서는 가해자입니다. 일본이나 미국 사람은 가해자의 입장이어서 피해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처지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우리가 나서 역사 청산하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큰일이고 따라서 지구공동체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김대중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갈지는 아직 시기적으로는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반영인데 우리는 아직 소수입니다. 베트남전 양민학살 문제가 여론주도층까지 확산되고 시민사회에서 이 문제가 활발히 제기될 때 국가도 전환적으로 풀어나갈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시민운동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차미경 광주항쟁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학살자 처벌을 제대로 못해 진상규명이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배상이 이뤄졌습니다. 그것이 광주사회와 시민사회를 분열시켰고, 광주가 전국화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와 시민단체가 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상규명을 올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먼저 배상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광주항쟁처럼 잘못된 과거 청산의 경험을 베트남에 옮겨놓을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21세기 인권·평화운동은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누군가를 응징하는 그런 문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감동이 있어야 하죠. 그래야 서로의 마음을 푸는 운동이 됩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운동이고 자신의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실천적인 운동입니다.

사회 <한겨레21> 베트남 캠페인 연재는 이번호로 끝나지만 민간 차원의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군의 양민학살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여론화하고 시민운동으로 벌여나갈 생각이신지요.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

차미경 저는 최근에 시민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을 든다면 북한동포돕기운동과 베트남전 진실규명을 위해 <한겨레21> 캠페인에 성금을 내준 시민들의 참여운동을 꼽고 싶습니다. 시민의 참여가 있기 때문에 사실은 저희도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의 가장 큰 일은 베트남과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역사기념관을 짓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한국 시민들, 정부 더 나아가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의 기업들과 참전군인들의 참여가 없으면 어려운 운동입니다. 또 우리가 가르치는 교과서를 바꾸어 이제는 “빨갱이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당연히 한국의 모든 언론사와 지식인들의 참여가 활발해야 이 운동이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정창권 각 부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건치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봉사를 활발히 하고 현지 답사를 하는 곳도 있어야 합니다.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작업도 진행되어 우리 후손들한테 남겨줘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시민단체들이 베트남의 마을들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면 합니다.

사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정리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sh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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