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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 작은 불씨가 횃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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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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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할 줄 아는 당당한 민족으로”… 46주 동안 진행된 캠페인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진실추적의 결실.베트남 피해자들의 육성을 보도한 <한겨레21> 273호 특집기사와 참전군인들의 증언을 잇따라 보도한 305,306,310호 표지(위쪽부터) )

길고도 치열했던 1년이었습니다.

사계절의 순환을 경험하고 다시 가을을 맞습니다. 그 46주간 뜨거운 감동은 파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에선 격렬한 항의가 태풍이 되었습니다. 1억1천여만원의 성금이 꾸준히 걷히는 동안, “캠페인을 즉각 중단하라”는 협박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 베트남전 양민학살, 그 악몽청산을 위한 성금모금 캠페인’은 한국사회에 ‘무서운 화두’를 던졌던 것입니다. 우리 군인들이 이민족의 가슴에 남긴 피눈물과 원한.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건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였습니다.

<한겨레21>은 이번호로 베트남 성금모금 캠페인을 마감합니다. 물론 아직도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한국군 양민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분간 진상조사가 이뤄지리라는 전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의 어깨는 무겁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위할 수 있는 것은, <한겨레21> 캠페인이 ‘베트남전 양민학살’에 대한 국내외 언론보도의 물꼬를 트고 ‘진실규명과 사죄’를 향한 인권운동에 작은 불씨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지난 6월 27일 “베트남 켐페인”에 불만을 품고 한겨레신문사를 습격한 고엽제 전우회원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독자 수는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10월28일치(280호)부터 2000년9월21일치(325호)까지 성금계좌로 돈이 입금된 건수만 2천여건. 대부분의 돈이 은행창구를 통해 입금된 사실을 감안하면, 1억1천만원의 성의를 액수 그 자체만으로 단순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위대한 양심들’은 곧 베트남쪽에 전달돼 푸옌성 병원건립을 위한 귀중한 종자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상자 기사 참조)

<한겨레21>은 그동안 성금모금운동과 함께 ‘진실’을 추적하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99년9월2일치(273호) 특집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를 통해 피해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처음으로 전했던 <한겨레21>은, 그 반대편 가해자들의 증언을 확보하여 무엇이 진실인가를 끝까지 알리는 게 언론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표지로 올랐던 ‘해병 중대장의 고백’(305호), ‘베트남전 양민학살, 중앙정보부가 조사했다’(306호), ‘어느 킬러중대원의 참회’(310호) 등의 특종보도는 그 값진 결실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동안 ‘베트남 캠페인’에 할애된 지면은 모두 170쪽이나 되었습니다.


인권·시민운동의 메아리도 뜨거웠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소속 의사·치위생사 40명은 지난 3월 불볕더위 속에서 눈물의 진료로 현지인들의 감동을 샀고,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는 지난 7월 ‘베트남과 함께 하는 평화문화제- 사이공, 그날의 노래’를 성공리에 치렀습니다. 인권운동단체들의 범국민적 캠페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합니다.

(사진/지난 7월6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사이공,그날의 노래'(맨위) 행사직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참전군인들이 차량으로 기물을 부수고 있다)

페인을 반대해 온 일각에서는 “덮어놓고 화해하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진상규명은 외면한 채, 베트남 양민학살 지역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통해 화해의 아름다움을 실현하자고 주장합니다. <한겨레21>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화해’는 피해자의 말입니다. 가해자는 ‘화해’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가해자의 말은 ‘사죄’여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사죄할 줄 아는 당당한 민족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야말로 21세기 평화의 질서를 꿈꾸는 인권국가로서 모범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사진/지난 3월 쿠앙응아이성 선틴현 의료센터에서 무료진료활동을 펼치는 건치 회원들(맨위). 회원중 한명이 양민학살 생존자의 증언을 듣다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따라서 <한겨레21>은 베트남전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습니다. 캠페인은 이번호로 끝나지만 베트남전에 대한 보도기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베트남에서의 부끄러운 역사가 초·중·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날까지!

그동안 베트남 캠페인을 주목하고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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