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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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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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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 미 공군 테드 앵글만의 생각

화가 났다.

그는 전선에서 ‘뺑이’치고 있는데 조국의 젊은이들은 데모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을 즉각 중단하라”고. 그 역시 전쟁이 싫었다. 고향인 덴버에 돌아간 뒤에도 친구들은 그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슬슬 피하는 것만 같았다. 60년대의 일이다.

테드 앵글만(53·Ted Englemann). 그는 미 공군 소속 하사관으로 68년 3월부터 1년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는 주로 전투기들의 항공포격지점을 무전으로 알려주는 일을 했다. 베트남 남부 지역인 벤캇 부근에서 베트콩 활동 거점을 타격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물론 베트남전이 좋아서 간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만 다녀오면 4년의 복무기간이 2년으로 줄었지만, 그는 끝까지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가 보였다. 결국 “명령을 받고 가느니 자원해서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베트남전이 부도덕한 전쟁이었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통킹만 사건을 미국이 일으켰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래서 전쟁 동안 늘 죄책감을 느꼈다.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이란, 항공포격지점을 전투기 조종사에게 가끔 엉뚱하게 알려주는 것 정도의 소극적인 것이었다.

“당시 한국군과 만난 적은 없지만, 한국군의 악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한국군이 작전 나가면 마을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고 해요.” 그러나 미군은 무차별 항공포격으로 한국군보다 수십배의 베트남 양민을 죽였다. 그도 그것을 인정했다. “전쟁은 거대한 낭비입니다. 게다가 아주 미친 짓이지요. 엉뚱한 곳에다가 폭탄을 퍼부으면서 실감을 했어요.”


그는 전직 과학교사 출신의 사진가다. 베트남전 당시 3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취미삼아 찍기도 했던 그는 요즘도 베트남의 전후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더불어 한국 참전군인들의 움직임도 큰 관심사다. 일부는 베트남에 위령비를 세우기도 하고, 일부는 한겨레신문사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50대의 나이에 아직도 미혼의 몸으로 여행을 즐기며 사는 그는,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인들의 생각을 많이 알고 싶다고 한다.

고경태 기자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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