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학살 사죄노력 담은 베트남영화 <원혼의 유언> 곧 개봉… 반 레 감독 특별기고
베트남 해방영화제작소 반 레(52) 감독이 지난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다큐멘터리영화 <원혼의 유언>이 6개월 만에 완성됐다. 이 영화는 자신들의 부끄럽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담은 것으로,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원혼의 유언>은 현재 하노이 당국의 마지막 심의를 거치고 베트남 외무부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 최종 승인이 확정되는 대로 9월께 하노이와 호치민의 일부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물론 <베트남TV>를 통해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그는 또한 이 영화를 올 연말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영화촬영을 마친 반 레 감독의 기고를 싣는다.편집자
나는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이며, 내 영화의 주제는 언제나 ‘전쟁’이었다. 나는 주로 인물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해왔다. 내가 영화 속에서 늘 그려내는 인물은 ‘역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견디는 자’들이다. 대체로 남성들은 전쟁을 일삼고, 그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떠벌려왔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역사의 간혹한 무게를 묵묵히 견뎌온 이들은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이번 영화 <원혼의 유언>의 주인공 역시 한국의 한 젊은 여성이다. 무엇보다는 나는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을 사랑한다. 처음 영화기획차 그를 만나던 순간부터 제작이 끝나고 배포를 기다리는 이 순간까지 그에 대한 내 애닯은 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가 지원한 유일한 35mm영화
한국의 한 여학생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을 누비며, 그 희생자들을 위무하고, 수십년간 암장되어 있던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공포했다는 사실은, 영화감독인 나를 강렬히 유혹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진지함, 그 지난한 노정 위의 성실함,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용기와 인류보편에 대한 공정한 애정… 나는 그것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의 표상이라고 보았다. 2000년대를 살아갈 한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197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온 민주화 투쟁, 그리고 80년 광주가 낳은 ‘자식’들 아닌가! 영화는 관객을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이끈다. 묵묵히 과거의 상처를 증언하는 위령비 앞으로, 집단묘지 앞으로… 그리고 그 현장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절한 육성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영화는 쓰라린 역사의 편린들을 들추어내지만, 그것은 결코 한국 민족의 한 약점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젊은이들의 빛나는 양심, 역사를 곧추세우려는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베트남 희생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인류에 와닿는 아름다운 애정에 대해 ‘경의’를 바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침묵하는 우리 베트남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더이상 과거의 고통에 갇혀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지구촌 곳곳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학살의 고리를 끊어내는 반전평화의 투쟁에 동참할 것을! 올해 베트남 정부가 제작경비를 지원한 영화는 단 세편에 불과하다. TV 드라마 부문에서 한편, 비디오 제작 부문에 한편, 그리고 영화관 상영 규격 35mm 필름 부문에서 <원혼의 유언>이 선정되었다. 우리 정부가 나름의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 있는 소재의 영화를 선정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고마운 일임엔 틀림없지만, 재정지원면에서 본다면, 우리 손에 쥐어진 예산은 2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나는 경비를 쪼개고 또 쪼갰다. 60년대 전장을 누비던 구식 촬영장비에다 편집기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름을 자르고 이어붙어야 할 정도로 퇴물이었지만, 제작팀만은 베트남 최고의 촬영인력들로 구성하였다. 베트남에서 내노라하는 감독들이 기꺼이 내 수하에 들어와 조감독, 촬영감독 등을 맡아주었다. 그것은 <원혼의 유언>에 보내는 베트남 영화인들의 지지와 애정이었다. NG는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역을 맡아주었던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이 촬영 도중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을 때, “아이고, 저 비싼 필름이 날아가는구나” 눈앞이 아찔했을 정도니까. 나는 그렇게 짠돌이가 되어 20분 제작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30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편집을 마치고보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투리 필름조차 버려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원혼의 유언>에는 구수정 통신원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한국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살풀이춤으로 베트남의 억울한 혼과 넋을 달래준 김경란 선생, 위령제 때 취재하는 것도 잊은 채 귀한 눈물을 펑펑 쏟던 황상철 기자, 그리고 1분1초가 아까워 점심까지 거르며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본 신동근, 정창권, 노은희씨 등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 심지어 어려운 사과의 말을 건네준 참전군인들까지… 그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아니, 우리 베트남인들 모두의 친구이다. 이 영화에 쏟은 편집증적 애착 ‘원혼의 유언’이라는 최종적인 영화 제목이 결정되기까지 ‘신세기의 불꽃’ ‘기자의 자격’ ‘아름다운 참회’ ‘부고’ 등등 수많은 이름들을 두고 고민했다. 결국 나는 한국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죄와 과거 청산 노력이 베트남 원혼들의 유언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 보았다. 보통 영화제목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결정되는데, 이번처럼 수시로 그 제목이 바뀔 정도로 고심해본 적도 없지만, 극작가를 제쳐두고 내레이션을 직접 쓴 것도 처음이다. 그건 내가 이 영화에 가지는 편집증적 애착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간이시사회를 통해 <원혼의 유언>을 시청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 속의 한국인들에게 매료되었다. 일본 스자이영화배급회사의 사장인 유타카 고지마는 “감동적인 영화다. 특히 영상이 아름답다”며 찬사를 건넸다. 통역을 맡았던 유학생 아코 아키바는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다”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연신 “아름다워요”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원혼의 유언> 개봉을 앞두고 해방영화사를 찾는 몇몇 일본영화사와 배급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일본에서보다는,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원혼의 유언>은 한국과 베트남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을 위해 바치는 나의 작은 애정인 까닭이다. 반 레/ 베트남 해방영화제작소 감독

(사진/반 레 감독의 촬영현장. 60년대 전장을 누비던 구식 촬영장비에다 편집기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름을 자르고 이어붙어야 할 정도로 퇴물이었지만, 제작팀만은 베트남 최고의 촬영인력들로 구성하였다)
한국의 한 여학생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을 누비며, 그 희생자들을 위무하고, 수십년간 암장되어 있던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공포했다는 사실은, 영화감독인 나를 강렬히 유혹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진지함, 그 지난한 노정 위의 성실함,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용기와 인류보편에 대한 공정한 애정… 나는 그것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들의 표상이라고 보았다. 2000년대를 살아갈 한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197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온 민주화 투쟁, 그리고 80년 광주가 낳은 ‘자식’들 아닌가! 영화는 관객을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이끈다. 묵묵히 과거의 상처를 증언하는 위령비 앞으로, 집단묘지 앞으로… 그리고 그 현장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절한 육성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영화는 쓰라린 역사의 편린들을 들추어내지만, 그것은 결코 한국 민족의 한 약점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젊은이들의 빛나는 양심, 역사를 곧추세우려는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베트남 희생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인류에 와닿는 아름다운 애정에 대해 ‘경의’를 바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침묵하는 우리 베트남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더이상 과거의 고통에 갇혀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지구촌 곳곳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학살의 고리를 끊어내는 반전평화의 투쟁에 동참할 것을! 올해 베트남 정부가 제작경비를 지원한 영화는 단 세편에 불과하다. TV 드라마 부문에서 한편, 비디오 제작 부문에 한편, 그리고 영화관 상영 규격 35mm 필름 부문에서 <원혼의 유언>이 선정되었다. 우리 정부가 나름의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 있는 소재의 영화를 선정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고마운 일임엔 틀림없지만, 재정지원면에서 본다면, 우리 손에 쥐어진 예산은 2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나는 경비를 쪼개고 또 쪼갰다. 60년대 전장을 누비던 구식 촬영장비에다 편집기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름을 자르고 이어붙어야 할 정도로 퇴물이었지만, 제작팀만은 베트남 최고의 촬영인력들로 구성하였다. 베트남에서 내노라하는 감독들이 기꺼이 내 수하에 들어와 조감독, 촬영감독 등을 맡아주었다. 그것은 <원혼의 유언>에 보내는 베트남 영화인들의 지지와 애정이었다. NG는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역을 맡아주었던 <한겨레21>의 구수정 통신원이 촬영 도중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을 때, “아이고, 저 비싼 필름이 날아가는구나” 눈앞이 아찔했을 정도니까. 나는 그렇게 짠돌이가 되어 20분 제작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30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편집을 마치고보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투리 필름조차 버려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원혼의 유언>에는 구수정 통신원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한국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살풀이춤으로 베트남의 억울한 혼과 넋을 달래준 김경란 선생, 위령제 때 취재하는 것도 잊은 채 귀한 눈물을 펑펑 쏟던 황상철 기자, 그리고 1분1초가 아까워 점심까지 거르며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본 신동근, 정창권, 노은희씨 등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 심지어 어려운 사과의 말을 건네준 참전군인들까지… 그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아니, 우리 베트남인들 모두의 친구이다. 이 영화에 쏟은 편집증적 애착 ‘원혼의 유언’이라는 최종적인 영화 제목이 결정되기까지 ‘신세기의 불꽃’ ‘기자의 자격’ ‘아름다운 참회’ ‘부고’ 등등 수많은 이름들을 두고 고민했다. 결국 나는 한국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죄와 과거 청산 노력이 베트남 원혼들의 유언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 보았다. 보통 영화제목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결정되는데, 이번처럼 수시로 그 제목이 바뀔 정도로 고심해본 적도 없지만, 극작가를 제쳐두고 내레이션을 직접 쓴 것도 처음이다. 그건 내가 이 영화에 가지는 편집증적 애착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간이시사회를 통해 <원혼의 유언>을 시청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 속의 한국인들에게 매료되었다. 일본 스자이영화배급회사의 사장인 유타카 고지마는 “감동적인 영화다. 특히 영상이 아름답다”며 찬사를 건넸다. 통역을 맡았던 유학생 아코 아키바는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다”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연신 “아름다워요”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원혼의 유언> 개봉을 앞두고 해방영화사를 찾는 몇몇 일본영화사와 배급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일본에서보다는,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원혼의 유언>은 한국과 베트남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을 위해 바치는 나의 작은 애정인 까닭이다. 반 레/ 베트남 해방영화제작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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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저는 복학을 기다리고 있으며, 가을이라는 애칭을 쓰고 있는 경기대의 한 휴학생입니다. 지난해 10월28일부터(공교롭게도 이 날은 제 생일입니다) 시작되었던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라는 <한겨레21>의 캠페인에 일찍 동참하고 싶었으나 그 뜻깊은 일에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기에, 또 제가 열심히 땀을 흘려 번 돈으로 하고 싶었기에 지금까지 기다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대의 조수진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사람과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되면 함께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기다려왔으나 그 사람이 얼마 전에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어 이렇게 뒤늦게 그 사람의 이름으로만(허락도 없이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그 사람 앞에서 한치 부끄러움도 없어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더욱 중요한 마음인 앞으로는 더이상 베트남전 양민학살 같은 반인륜적이며 비도덕적인 만행들이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캠페인에 동참하려 하며,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 민중 앞에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일해 번 돈 중 5만원을 성금으로 보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