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캠페인 그뒤… 건축예정지인 푸옌성 투이호아현 중호아히엡 현장을 가다
“병원은 언제 짓는 겁니까.”
푸옌성 의료청장 응웬 딘 딕(56)은 요즘 이런 질문에 시달린다. <한겨레21>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죄캠페인’과 그에 따른 ‘병원건립 프로젝트’가 <투오이쩨>(청년), <안닌테이저>(세계안보), <푸옌성보> 등 베트남의 여러 신문에 잇따라 보도된 뒤 성 주민들의 큰 관심사항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건립예정지역으로 선정된 호아히엡사 주민들이 궁금해서 못 참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마다 응웬 딘 딕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좀 더디더라도 꼭 실현될 것이니 기다리세요.”
병원건립 유력 후보지 물색 완료
그의 말은 정확하다. <한겨레21>의 베트남 병원건립사업은 더디지만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한국쪽에서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상임대표 염석호)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회장 김인섭)가 ‘한겨레21 병원건립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검토중이다. 인의협의 경우엔 <한겨레21>과 공동으로 베트남 병원건립 예정지역의 정밀 의료수요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베트남쪽에서는 푸옌성 의료청이 병원건립 후보지를 두곳 물색해놓고 장기적인 전망 아래 저울질을 하고 있다. 푸옌성 인민위원회 투자기획부 관계자들은 건립과정의 절차문제가 원만히 이뤄지도록 하노이를 분주히 오가며 중앙정부와 접촉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병원건립 과정에서 외교적 걸림돌이 생기지 않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 산하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도 “가능하면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해 병원건립을 둘러싼 양국의 주변 여건은 조금씩 무르익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3월19일 현재 <한겨레21>독자성금으로 걷혀진 액수는 1억2351만3376원(141쪽 참조). 푸옌성쪽에서 원하는 50병상의 종합병원을 짓기에는 결코 충분한 액수가 아니다. 이에 따라 2000년9월경으로 잡혔던 최초 착공일자는 계속 미뤄져 왔다. 추가재원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중인 <한겨레21>은 지금 2002년 4월을 착공목표일로 잡고 병원건립의 각종 난제 해소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9일 찾아간 푸옌성. 호치민에서 나짱(나트랑)까지 비행기로 50분, 여기서 다시 렌터카를 타고 1번 국도를 두 시간 반 오르면 푸옌성의 중심 투이호아현이 나온다. 나짱은 베트남전 당시 주월한국군 야전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푸옌성은 백마28연대와 맹호부대가 주둔했고, 청룡부대가 작전을 펼쳤던 곳이다(육사 20기 출신인 현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맹호부대 장교로 참전한 곳도 푸옌이다). 한국군이 게릴라 소탕활동을 벌였던 5개성(쿠앙응아이, 쿠앙남, 푸옌, 빈딘, 칸호아) 중, 푸옌은 유일하게 3개 전투부대가 모두 거쳐가는 등 가장 치열한 작전이 전개됐던 곳이다. 그런 만큼 민간인 희생자도 많았다. <한겨레21> 구수정 통신원의 조사에 따르면 푸옌성에서만 1795명의 민간인이 죽었고, 이중 투이호아현에 해당하는 숫자가 1010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병원건립예정 부지는 투이호아현에서 차를 타고 30여분을 남쪽으로 더 가야 한다. 동(東)호아히엡과 남(南)호아히엡 가운데 놓여 있는 중(中)호아히엡사. 푸옌성 의료청 소속 앰뷸런스의 안내를 따라 달리는 길가에선 가끔 공사중인 트럭 외엔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택시도 이용할 수 없는 지역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진료를 받기 위해서 때로는 1시간 넘게 불편한 자세로 자전거에 실려와야 하는 것이다.
‘양호실’ 같은 종합진료소
푸옌성 의료청장 응웬 딘 딕은 “중호아히엡사에 세워지는 병원은 동호아히엡과 남호아히엡을 통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서쪽에 위치한 호아 빈과 푸옌성 가장 남쪽에 위치한 호아 탐의 일부 지역까지 커버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남·중 호아히엡사의 인구는 99년 조사 때 3만8826명. 7개 현과 140여개사를 거느리고 있는 인구 80만 푸옌성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응웬 딘 딕은 “특히 남호아히엡의 경우 2005년까지 공업단지가 조성될 계획이어서 곧 의료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중호아히엡에 병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취재팀이 찾은 가장 유력한 병원건립 터는 다름아닌 중호아히엡 종합진료소였다. 동호아히엡과 남호아히엡에도 보건소가 하나씩 있긴 하지만, 이곳은 수준이 한 단계 높은 ‘종합진료소’다. 2개의 병실(10개 병상)과 분만실, 진찰실, 약국이 각각 1개씩 있는 단층건물이었다. 2명의 의사, 1명의 약사를 포함한 8명의 직원이 매일 40∼50명의 환자를 돌본다고 한다. 종합진료소장 판 쿠옥 비엣(43)은 “농민이 90%, 어민이 10%인 이 지역에서 빈발하는 각종 농약중독과 부인병, 어린이 질환에 대한 진찰과 분만, 신생아 예방접종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대단히 제한적이며, 산부인과 분만을 제외하면 그것조차 ‘진찰’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내과나 외과적 질환을 포함해 정밀치료가 요구되는 그 밖의 것들은 투이호아현의 종합병원으로 가야 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전쟁후유증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 최근 푸옌성 의료청은 북호아히엡 주민들을 표본으로 정신질환율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인구구성비당 10%가 전쟁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방금 앞에서 병상이 10개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한국 병원의 병상 그림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나무에다 천을 뒤집어씌운 ‘야전침대’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게다. 이 병상은 주로 산모들 차지였다. 원래 4개가 산모용인데, 병상이 모자라 다른 병실까지 산모가 입원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양호실’ 정도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분만실은 더욱 엉망이었다. 녹이 슨 분만대,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가위 따위의 분만 기구들. 출산과정에서 산모나 아이 모두 목숨을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푸옌성 의료청장 응웬 딘 딕은 “내년 봄 이 종합진료소 건물을 헐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2002년 4월경 새 병원 기공식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간접화법이었다. “우리가 프로젝트 보고서 초안에서 밝혔듯이 종합진료실·수술실에 내과, 외과, 소아과, 결핵과 등 6개과 5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이 지역 의료서비스의 질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폭 개선시킬 것입니다.” 그는 “병원건립과 장비인도가 다 끝난 뒤에는 설사 한국쪽에서 지원이 끊기더라도 베트남쪽에서 모든 운영을 책임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베트남에서 모든 병원은 국가 소유다. 개인병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푸옌성에만 400여명의 의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엑스레이 전문의, 초음파 전문의, 외과수술 전문의 등 종합병원에 걸맞은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는 것은 물론 병원운영을 위한 자체 인력과 예산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한국쪽의 의료기술 전수가 절실하며 약 3∼5년간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면 고맙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비행기삯이 건립비용보다 더 들지라도…
중호아히엡 종합진료소에서 2km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는 또 하나의 병원건립 후보지가 있었다. 6000㎡ 면적의 공터로 해안과 8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중호아히엡사 인민위원회 토지관리 간부 응웬 응옥 쾅(40)은 “이곳은 종합진료소 자리보다 터가 세배가량 넓은 장점이 있으나, 마을 중심가에서 멀다는 점과 바다가 가까워 장비노후 문제가 걱정되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현 종합진료소 자리는 중호아히엡 중심가인데다가 기차역과 1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동호아히엡과 남호아히엡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지리 조건을 안고 있다.
푸옌성 인민위원회에서 만난 인민위원회 주석(당서기장 겸임) 응웬 탄 쾅(51)은 “토지매입비가 별도로 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럼 우리가 세를 받겠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종합병원에 대한 의료수요도 절박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병원이 지닌 한-베트남간의 상징적인 의미”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흘 뒤 하노이에서 만난 푸옌성 인민위원회 투자기획부 대표 룽 응옥 아이(50)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러한 분위기를 좀더 자세히 전해주었다. “주석께서 이렇게 말한다. ‘이 병원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다. 절차문제 해결을 위해 하노이 가는 비행기삯이 병원건립비보다 더 들어도 좋다. 전력을 다해 뛰어라!’”
푸옌=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사진/병원건립 부지로 가장 유력시되는 투이호아현 중호아히엡사의 종합진료소. 꼬마들이 병원 마당을 거쳐 하교하고 있다.

사진/푸옌성 투이호하현 전경. 한국군 3개 전투 부대가 모두 거쳐간 곳이다. 멀리 <머나먼 쏭바강>으로 유명해진 쏭바강이 보인다.

사진/중호하히엡 종합진료소 의료진들. 맨 오른쪽이 판 쿠옥 비엣 진료소장.

사진/응웬 탄쾅 푸옌성 주석 겸 당 서기장(왼쪽)과 응웬딘 딕 푸옌성 의료청장(오른쪽).

사진/중호아히엡사 종합진료소의 산부인과 병실. 병상이 꽉 차 일부 산모는 다른 병실로 가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