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예정된 <대추리의 전쟁> 상영을 가로막은 경찰… 명분을 찾으려 고심하다 “영등위 등급 받지 않았다”는 희극적 이유 들이대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영화가 끝난 뒤 단상에 오른 정일건 감독(푸른영상)은 “경찰청의 상영 불가 통보 이후 영화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2월부터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 머물며 미군기지 확장에 저항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영상을 모아 <대추리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생활과, 이주와 저항을 둘러싼 주민들 사이의 갈등, 무력 진압에 나서 주민들과 충돌을 빚는 전경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땅 소유권을 주민들에게서 국방부로 돌리는 건설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 재결’ 결정이 나던 2005년 11월22일 밤, 울먹이는 할머니를 둘러싼 전경들의 안타까운 표정이 보는 이의 가슴을 거세게 후벼판다.
경찰은 평택의 비극을 그린 기록영화 상영을 불허했다. 10월12일 평통사 회원들이 전경들의 스크럼에 둘러싸인 채 경찰청사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숱 더부룩한 김택균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팽성 대책위) 사무국장의 앞머리가 사실은 ‘가발’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된 기록영화
영화는 ‘서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이 개최하는 평화 영화제 ‘백 더하기 백’(10월26~29일)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평통사가 택한 영화 상영 장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배경이 됐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경찰은 허준영 전임 경찰청장 시절 이곳에 인권보호센터를 이주시켰고,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인권 경찰’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과오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고 싶어했다. 최문희 평통사 조직국장은 “경찰이 구두로 장소 사용을 승낙했다”고 말했다.
평통사의 계획은 뜻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경찰은 평통사 쪽에 공문을 보내 “장소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개막작 <대추리의 전쟁>이었다. 하루 아침에 영화제는 미아가 됐다. 경찰은 장소 사용 불허의 명분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처음엔 “(경찰의 폭력성을 부각시킨) <대추리의 전쟁>이 부담스럽다”고 했다가, “개막작만 빼면 장소 사용 신청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마침내 법적 근거를 찾아냈다. 그들은 영화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작품이라고 말했다. <대추리의 전쟁>은 올해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된, 잘 만든 기록영화다.
평통사 회원들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영화제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0월25일 저녁 7시에는 영화 상영회를 열 계획도 세웠다. 경찰은 압도적인 공권력을 사용해 이를 원천 봉쇄했다. 경찰은 영화 상영을 강행하면 “집기를 압수하겠다”고 했고, 서대문구청은 “영등위 심의를 받지 않은 점을 물어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극장 개관이나 비디오 유통 등 상업적 용도로 쓰이지 않는 영화는 대부분 영등위 심의를 받지 않는다. 문화연대는 성명서에 “경찰청과 서대문구청의 입장에 분노를 넘어 희극적 고통을 느낀다”고 썼다.
흥분한 곳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아닌 <중앙일보>였다(다소 뜻밖이긴 했다). <중앙일보>는 “경찰이 자신을 공격한 단체의 선전전에 이용당했다”고 흥분하며 “공권력이 농락당한 느낌”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했다. 또 “자주, 통일, 평화, 인권이란 단어만 나오면 앞뒤를 따지지 않고 스스로 주눅 드는 공권력의 실상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 ‘단어’들이야 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이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들이 아니던가.
그 50분을 가로막아 뭘 얻으려 했나
남영동 대공분실과 경찰청사 앞에서 밀려난 영화제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9층 교육원에서 개막식을 열었다. 경찰청의 약속을 믿고 미리 제작한 영화제 홍보 팸플릿에는 상영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영화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 40여 명이 영화를 지켜봤다. 저녁 촛불집회 때 농민가를 부르는 방병철(7)군의 앳된 목소리가 이어질 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고, 대추초등학교가 부서지는 광경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김택균 사무국장과 송태경 홍보부장, 김영오 함정리 이장이 관객을 둘러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은 채 50분을 넘지 않았다. 그 50분을 가로막아 경찰들이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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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운다]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걱정이여우리 딸이 교복 입고 들어오는데도 몇 번씩 검문하고 그랬어
최중교(4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8-1
황새울에 찬바람 소리가 깊어진다. 철조망에 갇힌 들처럼 무거운 마음이지만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또다시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더 걱정이여.
대추리에 그런 사람들 많잖아. 겨울이야 어떻게든 날 테지만 걱정이 많지. 이장이랑 같이 보내야 할 텐데, 그럴 테지?
난 대추리 토박이여. 우리 조상들이 300년 전부터 여기 살았어. 옛날에 우리 집이 보따리 장사들이 묵고 쉬어가는 집이었대. 집이 좋다고 그랬대. 나는 못 봤지. 말만 들은 거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구대추리에서 넘어와서 지금 이 터에 집을 지은 거야. 그때 우리 아버지는 군대에 있을 때고. 난 어려서 몰랐지만 어른들이 무척 고생했지. 그 터에 10년 전에 내가 다시 집 지은 거지.
나 어렸을 땐 대추리에 텔레비전이 딱 두 대 있었어. 옛날엔 부대 다니면 최고 부자였는데, 그때 부대 다니던 두 집만 텔레비전이 있었지. 개구리 잡아서 갖다주면 텔레비전 보여줬어. 개구리 잡아다주고 황금박쥐, 타잔 보고 그랬어. 그땐 마을에 애들도 많았거든. 나랑 계성초등학교 같이 다니던 애들이 대추리에 남자 8명, 여자 12명, 딱 20명이었어. 그 친구들이랑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가이생, 꽃가이생 하고 놀았어. 지금은 다 나가고 나 하나 남았지. 뭐 가끔 만나서 술 한 잔씩 하고 그래. 우리가 마지막으로 계성초등학교 다닌 거야. 우리 졸업할 때 대추초등학교가 생겨서 우리 밑에 애들은 거기 다녔지. 우리는 공구리도 안 된 논둑 따라 학교 다니느라고 장화 없으면 학교 못 갔어. 물이 가득 차 맨날 빠졌거든. 흙이 들러붙으면 떨어지지도 않아. 그러다가 학교 생기니께 다들 좋아했지. 처음엔 대추초등학교에 애들이 400명 가까이 됐어. 그땐 그랬어.
난 한 것도 없어서 힘든 것도 없어. 노인네들이 고생하니께 안타깝지. 농사만 짓고 잘 살던 사람들이 뭐여 이게. 난 안식구랑 틈틈이 7천 평 농사지어 애들 가르쳤어. 다른 건 해보지도 않았어. 농사만 지었지. 마을이 이렇게 된 게 마음이 아프지. 집에 들어오기도 힘들고. 우리 딸이 고3인데 교복 입고 들어오는데도 몇 번씩 검문하고 막고 그랬어. 너무 힘드니까 지금은 고시원 얻어서 밖에서 공부하고 있어. 뭐 불가항력이여. 이렇게까지 해온 게 자랑스럽지. 아마 세계에서도 이렇게 싸운 거 없을걸. 3년이 넘도록 싸웠다는 건 잘한 거여. 좋은 것으로 남아야지. 너무나 정당하지. 나중에 사람들이 판단하겠지. 지금도 박정희 평가하듯이 그렇게 시간이 가야 제대로 평가가 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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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평화의 땅 지키기]눈물의 수확을 거두다109,114,766원
10월27일 현재 1억911만4766원
이번주에 대추리의 추수가 끝났습니다. 국방부의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들판에서 주민들이 눈물로 가꾼 벼 이삭들은 알곡이 되어 곳간을 채웠습니다. 전체 285만 평 가운데서 추수를 할 수 있었던 논의 면적은 겨우 7만5천 평입니다. 보통 35가마가 나오는 논 한 구간(1500평)에서 20가마의 소출이 나기도 했고, 겨우 4가마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어렵게 자라준 벼가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내년에도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권혁 힘들내세요(2만원) 김미숙(5만원) 신승렬(5만원) 미선외3인(1만3천원) 지영지윤평화(3만원) 봉문수 김용운(2만원) 백승기(2만원) 김병희(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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