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전 있었던 대추분교 충돌을 뒤늦게 문제 삼아 활동가 6명 구속…‘힘 빼기’ 재판 지연으로 김지태 이장은 추석에도 감방에서 못 나와
▣ 평택=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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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천 너머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 바람에 철조망에 갇힌 평택의 너른 들은 짓눌려 있다.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평택 대추리·도두리로 들어가는 입구인 원정삼거리에서 불법적인 경찰의 통행 제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경찰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평택 대추리·도두리로 들어가려면 세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해야 한다. 민변 변호사들은‘경찰의 통행제한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했다.(사진/ 박승화 기자)
그들은 10월17일 오전 11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경찰청장을 ‘직권남용 및 공직자 선거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 국가에 대해서는 통행권 제한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내기로 했다.
민변도 불법 검문에 소송 제기
대추리 싸움은 이제 들판에서 법정으로 옮아가고 있다. 먼저 칼을 빼든 쪽은 검찰이었다. 그들은 지난 10월13일 노수희 전국연합 공동의장 등 6명의 활동가를 구속했다. 죄명은 5월4일 이뤄진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평택의 야만’이라고 불리는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6월께 경찰에서 소환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5개월 전에 있었던 ‘그때 그 일’을 문제 삼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5월4일 있었던 대추리 충돌로 경찰은 현장에 있던 학생·노동자·평화활동가 624명을 연행하고 이 가운데 60여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실제 영장이 발부된 것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때 이흥권 수원지법 평택지원 판사는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죽봉을 잡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람들 모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죽봉을 잡은 적이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 본인들의 자백이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죽봉을 건네받기만 하거나 특별한 폭력 행사가 없는 사람은 영장을 기각했다.
무더기 영장 기각에 검찰은 격앙됐다. 검찰은 “나중에 추가로 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그 다섯 달 동안 검찰은 현장에서 채증한 비디오 자료와 사진을 판독해 6명의 혐의를 추가로 찾아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으니, 그들의 혐의를 보여줄 수 있는 채증 자료가 확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10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 발생 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평택 지킴이들을 구속하는 것은 미군기지 싸움을 파탄내려는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범법자를 끝까지 쫓아가 정의를 세우겠다는 열혈 공무원들의 수사 의지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나”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범대위는 평택 투쟁으로 3월15일 40명, 4월17일 31명, 5월4일 524명, 5월5일 100명, 9월13일 24명이 연행됐고, 이 가운데 73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구속 수감자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을 포함한 8명이다.
대체 무슨 자료가 나왔다는 걸까
검찰은 골치 아픈 공안 사건인 ‘대추리 투쟁’을 서둘러 끝내고 싶어하는 듯했다. 수법은 ‘힘 빼기’였고, 희생자는 지난 4년 동안 주민들을 다독여가며 싸움을 이어온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었다. 애초 김 이장의 선고일은 9월22일이었다. 촌에서 성실하게 농사만 짓고 살아온 김 이장에게 예상된 형량은 벌금형이거나, 기껏해야 집행유예라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검찰은 선고일을 며칠 앞두고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새로운 증거 자료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무슨 자료일까?” 주민들은 긴장했다.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김 이장의 희망은 깨져버렸다.
10월13일 오전 11시30분,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는 기다려왔던 김지태 이장의 재판이 진행됐다. 평택구치소 수인번호 201번으로 갇혀 있는 김지태 이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방청석엔 주민과 지킴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김 이장의 통화 기록과 자신이 다쳤다고 주장하는 전경들의 피해 진술이 전부였다. 판사는 선고를 내리지 않고 선고일을 11월3일로 연기했다. 대추리 지킴이 ‘여름’은 “재판 기일을 고의적으로 연기한 검사의 태도와 이장을 잡아두고 주민들이 항복하기만을 기다리는 정부의 태도에 주민들이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10분 만에 끝났다. 흥분한 주민들이 재판장에서 거칠게 항의하며 소동을 피웠지만, 검찰도 법원도 머쓱했는지 주민들을 법정소란죄로 다스리지 않았다. 결국 김 이장의 1심 판결은 11월3일 평택지원 23호 법정에서 나온다. 이장의 어머니 황필순(76)씨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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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운다]국방부 놈들이 또 꼬시더래이장부터 내놓으라고 혀, 잡아가놓고 뭐하는 짓들이여.
▣ 노영희(6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38-2
대추리·도두리의 가을, 집집마다 콩과 깨를 털어 말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노영희 할머니도 밭 한가운데에 앉아 쇠막대기로 콩을 털고 있다.
오늘 하루 종일 털었어. 이 콩을 널어 말리는 겨. 메주 쑤는 건 안 말려도 되고. 한참을 말려야 해. 봄에 심었지. 콩은 모 심고 나서 심는 겨. 얼마 안 돼.
이게 다여. 우리는 밭도 없고 논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그냥 이것 조금 해먹은 거지. 이 밭도 옆에 살던 이랑 같이 해먹던 거여. 해먹던 이가 이사 가고 나니까 그냥 심은 거지. 그렇게 살아온 거야. 나는 땅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될 수 있으면 뺏기지 말고 살다가 여기서 죽으면 좋겠다는 거야. 우리 아저씨도 나도 그런 거지.
우리 사는 것 좀 봐. 사는 게 이렇게 서러워. 얼마나 우리가 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살만 하니까 나가라고 지랄이야. 우리 아저씨는 남의 집살이 하고 난 장사하고 살았지. 우리가 재산이 없으니까 쌀 한 말 갖다먹으면 일을 나흘씩 해줬어. 없이 살아서 자식들 잘 가르치지도 못했어.
난 저 밑의 완도에서 태어났어. 거기서 제주도로 피난갔다가 육지로 또 나왔지. 우리 아저씨가 제주도에 일하러 와서 거기서 만났지. 친구 동생이 아저씨를 알아서 연결해줬어. 여기 온 지 38년 됐어. 생선 장사도 하고, 과일 장사도 하고, 채소 장사도 하고 별거 다 했어. 동태짝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내려주는 사람도 없이 얼마나 힘들었다고. 잠깐 쉬었다 가기도 힘들고. 모가지가 얼마나 아팠다고. 둔포장, 성환장 여기저기 장터 다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을 뻔도 했어. 그때 다쳐서 내 허리가 이런 거여. 4개월 동안 병원에서 꼼짝 못하다가 죽는 줄 알았어. 지금도 비 오려고 하면 몸뚱이가 죄 아파서 못 살아. 재작년까지 아파트 청소도 하고 고생 많이 하고 살았어. 예전에는 내가 장사 가서 외상값을 못 받을 때는 우리 애들 밥을 못해줬어. 이렇게 살아도 마음만 편하면 살아. 사람들은 땅도 없는데 뭐하러 여기 사냐고 그러는데 나간다고 편하게 사는 게 아니여.
예전에는 나무도 없었어. 땔거리도 없었지. 지금은 석유도 있고 그렇지만 그때는 탄불도 비싸서 못 때니까. 여기 미군기지에 철망도 없었을 땐 그냥 들어가 나무 해다가 땠어. 그러다 이렇게 철조망 치고 지랄하고 나가라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길 만들었는데. 여기까지 뺏으려고 지랄 염병이여. 비행기 소리도 아주 지겨워 죽겄어.
국방부에서 돈 찾아가라고 또 왔더라고. 우리 아저씨가 밭에 나가 있는데 국방부 놈들 둘이 와서 아저씨를 꼬시더래. 20일까지 신청하라고. 돈 신청해서 빨리 나가라는 거야. 어젯밤에도 전화오고, 집집마다 전화한대잖아. 뭐 내가 안 하면 되지. 난 안 나가. 나쁜 놈들이 그렇게 들쑤시려고 하는 거잖아. 이장부터 내놓으라고 혀. 이장 잡아가놓고 뭐하는 짓들이여.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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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땅 지키기] 흘러간 이슈인가요 108,791,766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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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이 ‘평택 캠페인’을 시작한 지도 이제 10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열 달 동안 거의 매주 평택을 오가면서 대추리·도두리 주민들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5월4일 대추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경찰의 방패에 찍혀 안경이 부러지기도 했고, 지난 9월 빈집 철거를 앞두고선 경찰의 불심 검문에 저항하다 흙탕물이 흐르는 참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평택에 대해서만큼은 객관성이라는 굴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습니다. 평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평택은 이제 흘러간 이슈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주 잊지 않고 적지 않은 성금을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김연화(3만원) 손명헌 권경록 한경희(10만원) 김선영(5만원) 남현석(15만원) 강재훈(5만원) 박재욱(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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