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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택 캠페인] 함께 쳐요, 평화의 꽹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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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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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풍물패와 함께 농악을 연주했던 한 일본인의 안타까운 심정… 농사와 음악을 빼앗는 군사시설에 한·일 시민들이 손을 잡고 반대하자

▣ 쓰나미 게스케 전직 신문기자

나는 원망하고 있다. 소박한 농민과 순수한 음악가를 투쟁가로 만들어버린 군사시설을 원망하고 있다. 왜 아름다운 농촌인 평택시 팽성읍에 ‘미군기지’가 강요되고 있는가? 그들을 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송 사부님, 힘내세요


나는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서 태어나 자란 일본 사람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한국 사람을 만나 농악과 사물놀이의 훌륭함을 알게 됐고, 함께 장구를 연주하게 됐다.

9월13일 국방부 포클레인이 부수고 지난 빈집 폐허 위에 평택 지킴이 한 명이 텐트를 쳤다. 안성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앞에서 텐트는 위태로워 보였다.

2004년 10월 마쓰야마시와 경기도 평택시가 우호협력 도시가 되어, 평택시 대표로 평택 두레풍물보존회의 송영민 단장과 단원들이 마쓰야마시를 방문했다. 그때 내가 속해 있던 농악 그룹 ‘마쓰야마 장고 여러가지’와 송 단장의 교류가 시작됐다. 송 단장은 매월 자비로 마쓰야마를 방문해 본고장의 웃다리풍물을 일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정말 훌륭한 만남이었다. 우리도 휴일을 이용해 가끔 평택시를 찾았고, 송 사부님이 몸담고 계셨던 대추초등학교에서 연습도 하고 농민들의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그렇게 왕래를 하다가 송 사부님은 대추분교가 강제 철거 위기에 놓이자 한동안 마쓰야먀 방문을 중단하게 됐다. 결국 대추분교가 한국 국방부에 의해 파괴되던 날, 일본에서 뉴스를 보던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부님과 대추리 주민들을 떠올리게 됐다. 우리는 사부님이 마쓰야마에 올 수 없어도 공연이 있을 때는 대추리의 평화를 빌며 장구를 쳤다. 음악에 평화를 부르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더 열심히 연주했다. 그럼에도 대추리 상황은 나날이 어려워져만 갔다.

미군 재편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행해지고 있어 대추리처럼 기지를 강요당하는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완고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래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뿐만 아니라 밖으로부터의 많은 국민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상과 농사를 빼앗고 음악까지도 송두리째 없애려 하는 군사시설에 대해 일본과 한국 시민들은 나라를 넘어 “NO!”라고 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단지 평화를 바랄 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농사를 짓고, 군용기 소리가 없는 하늘 아래에서 잠들고, 즐거운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나 군사시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일상을 빼앗고 그들을 투쟁가로 만들어버렸다. 기지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더 이상 이 문제에서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 이것은 비단 대추리나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지는 어느 곳으로든 이전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을 투사로 변하게 했나

기지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 관련 시설이나 댐 등 시골 마을에서 우리의 일상을 빼앗는 건설 계획들이 부상하고 있다. 피해자는 언제나 농민이나 어민이다. 주민을 무시한 계획이 세워지고 발표될 때마다 한 명, 또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 투쟁가로 바뀌어간다.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대추리에 사는 주민들도 원래는 순수한 농민이었다. 지금도 마음은 그렇지만 주택 철거를 두려워하며 경찰이 오면 되돌려보내기 위해 투쟁심을 불태우고 있다. 송 사부님도 지금은 평화를 바라면서 장구나 꽹과리를 치고 있다. 그들을 변하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처음 대추리에 군사기지를 만들었던 나의 조상들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인가, 미군인가. 그 모두 아니라면 대추리 문제에 무관심한 시민의 탓일까.

대답은 역시 어렵다. 나는 그들이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가고 싶다.


[들이운다] 마지막 추석이 될까 걱정이지

이번 추석은 이장님이랑 같이 쇨 줄 알았는데…

이옥자(61)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3-2

대추리·도두리도 추석을 맞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분주한 하루를 보낸 주민들은 추석맞이 노래자랑으로 765일째 촛불을 밝혔다. 손자들과 함께 노래자랑에 나온 이옥자 아주머니는 <흑산도 아가씨>를 불렀다.

추석이라고 동네에서 노래자랑 하니께 하는 거지. 잘하나 못하나 그냥 하는 거지. 사람들이 한번 해보라니께 한 거여. 명절이니까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다 왔어. 애들 오니까 좋아. 가까운 데 살아서 자주 와. 명일인데 좋게 지내야 하는데. 동네가 이러니까, 이게 또 마지막이 될까 걱정이지. 즐겁게 명일 쇠는 게 아니라 걱정이 많지. 또 얼마 전에 국방부에서 나간 사람들 모아놓고 화합잔치다 뭐다 해놓으니께 사람들 마음도 안 좋고. 그게 다 거짓말이여. 그 사람들이 그랬다잖아. 국방부에서 뭐 써다주고 읽으라니께 그냥 읽었대잖아. 그래놓으니께 한 동네 살던 사람들 서로 얼굴 붉히게 되고 마음도 안 좋고 그랬지.

이번 추석에는 이장님이랑 같이 쇨 줄 알았는데 그게 걱정이지. 아이구, 나 그때 구치소 앞에서 촛불행사할 때 앞에 나가서 말했잖아. 앞에 나가 딱 서니까 이장님 엄마 아버지가 딱 내 앞이야. 우리네도 이렇게 아픈데 엄마 아버지는 어떨까 싶어 눈물이 나와서, 아휴. 쳐다볼 수도 없고. 9월22일 나올 줄 알았지. 설마했지. 이장 아버지 자꾸 마르는 것 좀 봐. 딱해 죽겄어. 뭘 해야 하나 몰러. 그렇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 안 먹고 안 잘 수도 없는 거고. 이번에는 내보낼 테지 뭐.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로 시집와서 61년 살았어. 저쪽 3반 뜸 살던 할머니가 중신해줘서 스무 살에 결혼했어. 우리 아버지 고향은 진위면, 엄마는 부여여. 아버지가 이불 보따리 하나 싸가지고서 여기 오신 거여. 옛날에 일해주면 밥이라도 얻어먹으며 사니께 두 양반이 생활력이 엄청났지. 아버지는 농사짓고 엄마는 스텐 장사하고, 아주 그냥 자식은 고생 안 시키겠다고 일을 얼마나 하셨다고.

우리 부모님도 여기서 계속 같이 싸우셨지.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2년 됐는데 국방부고 어디고 열심히 같이 다니셨어. 우리 아버지 신문에 뉴스에 많이 나왔어. 노인양반이 빼삭 말라갔고 너무 가련하게 생겼는지, 인터뷰도 많이 하고 많이 나왔어. 그때 영농단 앞에서 무슨 집회하고 오셨다가 바로 돌아가셨지. 속상해 죽겠어. 아버지 돌아가시니께 엄마도 나가셨어. 나는 엄마 나가는 거 반대했는데. 아들네랑 살고 있는데, 노인양반들 편안하게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나가서 사는 것도 편치가 않아. 우리네도 시간이 안 맞으니께 잘 못 가보고 그러지.

노인정에서 밥 많이 했지. 힘들었지. 다 연세 많은 양반들이고 내가 젊으니께 했는데. 그때 너무 힘드니께 몸이 아프더라고. 올봄 한참 일할 때 한 달 내내 밥할 때는 많이 힘들었지. 할머니들이 하는 거 아니여. 70, 80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그래도 그때만 해도 재미났었지. 올봄에는 자신감을 갖고서 재미나게 했어. 밥만 먹으면 노인정 가서 일해야겠다 그 생각만 한 거지. 모 심고 사람들 밥 먹으러 오면 얼마나 재밌냐.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쌀이고 뭐고 아까운 거 모르고, 쌀 없다고 그러면 40kg 갖다 딱 놓고 그랬지. 지우네 할머니랑 김양분 할머니 그 둘이 극성맞아 일도 많이 해. 마늘에 고춧가루에 김치에 그걸 다 갖다 댔지. 동네 돈, 대책위 돈 덜 쓰게 하려고 그랬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적으로는 재미나게 했지. 올해도 농사지으면, 설마 모 심어놨으니께 괜찮을 테지 그랬지. 누가 이렇게 가시철망 치고 경찰들 갖다놓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어.

요 우리 집 앞까지 바다였어. 게 잡아먹고. 미름챙이 뚝 따서 삶아 무치면 꼬들꼬들하니 맛있어. 고추장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그 큰 게 삶으면 오그라들어. 나무쟁이 뜯어다가 먹고. 뭐 이름도 뜻도 모르고 갯벌에 나니까 먹는 거지. 또 거기서 나는 나무 해다가 묶어서 집 가생이에다 빙 둘러갖고 겨울에 때는 거여. 그렇게 고생했어. 우리 아버지도 거기 막는 거 일한 대가로 밀가루 받아갖고 수제비도 해 먹고 그랬어. 그렇게 둑 다 막은 거야. 우리네도 갯벌은 알았지. 밤 되면 물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거기 가서 게 잡고 그랬으니까. 우리도 셋방살이 하며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노인양반들 고생한 거 비하면 고생도 아니여. 지게로 가래로 바다 막은 거 다 들었잖아. 여기 같이 살던 친구들은 다 딴 데 시집갔지. 친정이 여기니까 오면 보는 건데. 지금 이렇게 돼가지고 이사가서 이제 없어. 고무줄, 사방치기, 공깃돌 놀이, 줄넘기하며 놀았는데.



[평화의 땅 지키기] 썰렁한 국방부 잔치

107,947,716원

10월6일 현재 1억794만7716원

10월2일 오전 11시 평택 본정리 서부다목적회관에서는 ‘도두·대추리 주민화합 마을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유종상 기획차관, 박경서 국방부 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 송명호 평택시장 등 평소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고관대작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도두리·대추리 잔치가 왜 본정리에서 열려야 하는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고 즐거운 마음에 기지 이전 사업에 동참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모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잔치 자리는 1시간 만에 썰렁하게 끝났고, 사흘 뒤인 10월5일 대추리 최고 어른이셨던 오순이(101) 할머니께서 눈을 감았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이현숙(5만원) 신임재(6천원) 진이정이아빠(4만원) 은혜와석진(2만원) 차보경힘내세요(3만원) 힘내세요(3만원) 권도형(3만원) 임석수(3만원) 권혁 한공순(3만원) 이자(452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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