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평택기지 마스터플랜 논의를 보류한다는 보도가 나온 9월1일 …4년의 고통과 눈물 속에 찾아온 기쁨,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주민들
▣ 두시간 대추리 이주자
9월1일 오전 7시30분, 마을회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국방부가 용역과 경찰을 이끌고 주택을 철거하러 쳐들어온 것은 아닐까 싶어서였다. 아니었다. 스피커에서는 대추리 토박이 신종원씨의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민 여러분께 즐거운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미군이 평택 시설계획을 전면 보류했다고 합니다. 마을회관으로 나오셔서 자세한 소식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을방송은 서너 차례 반복됐고, 주민들은 바쁜 아침 일손을 잠시 놓고 마을회관으로 몰려들었다.
“그럼 우리 지태는 어떻게 되냐”
마을회관 앞에는 벌써 서른 명쯤 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이제 막 나온 주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나온 주민들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소식이 실린 아침 신문(<조선일보> 9월1일치, ‘미군, 평택 시설계획 전면 보류’)이 주민들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주한미군은 전시 작전통제권을 우리 정부에 이양키로 결정함에 따라, 평택기지 시설종합계획(마스터플랜)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당분간 마스터플랜 논의를 보류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미군기지 확장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내용까지는 못 미치지만 세계 최강 군대와 맞서 투쟁해온 주민들에게 기쁨과 자긍심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9월1일 아침, 미군이 평택기지 계획을 보류한다는 보도를 듣고 환호성을 지르는 대추리 주민들. 보도가 나간 뒤 주한미군 쪽은 마스터플랜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용 예정 터 285만 평 가운데 마을을 포함한 100만여 평 정도가 편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주민들 사이에 흘렀다.
반가운 소식에 주민들은 덕담과 농담을 섞어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송재국(69) 할아버지는 문정현 신부가 나타나자 반갑게 맞으며 “다음 일요일날 우리 신부님 장가들입시다”라고 외쳤다. 주민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누군가 “질긴 놈이 이긴다”고 외치자 다른 주민은 “질겼으니까 이기지”라고 화답했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투쟁은 온통 눈물과 땀의 역사라 부를 만하다. 할아버지는 “지난 3~4년 동안 싸우면서 즐거웠던 시간들을 모두 모아도 지금 잠깐 즐거운 만큼도 안 된다”고 말했다. 기지 확장 공사를 아주 안 한다는 게 아니어서 안심할 순 없지만, 오랜 투쟁 끝에 뭔가 성과를 이뤄낸 듯한 기쁨에 주민들은 박수를 쳤다. 송 할아버지는 “살면서 나 하나만 챙기는 게 아니라 옳은 일 하는 사람에겐 박수를 쳐줘야 된다는 소중한 깨우침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주민들이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기쁨의 눈물 뒤에는 쓰라린 고통의 추억이 있다. 김영녀(81·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고모) 할머니는 환호하는 주민들 뒤켠에 쪼그려 앉아 “그럼 우리 지태는 어떻게 되냐”고 시름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서 사진만 봐도 여기가 터지는 거 같아.” 할머니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지난 6월7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던 김지태 이장은 석 달째 평택구치소에 갇힌 채, 이날 오후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할머니는 요즘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서순희(66)씨는 “한 식구처럼 보듬고 살던 이웃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이사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사하는 날 어색해서 인사도 못했지, 뭐. 배신감 때문에 수십 년 정 붙이고 살아온 이웃들에게 ‘잘 가라’는 말도 못했다니까.” 벌써 5대째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이호순(69)씨는 촛불행사를 위해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손에 쥔 묵주를 놓지 못했다. 그는 “주님의 뜻이라면 이길 것도 같다”며 웃었다.
보도 나간 뒤 “계획 차질없다” 공식 입장
2004년 9월1일 시작된 주민들의 촛불은 지난 8월31일로 만 2년을 맞았다. 주민들이 꼽은 촛불의 소회는 한마디로 ‘고통’이다. 2004년 9월1일 시작된 촛불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날 국방부와 평택시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 사업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배제한 채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에 맞서 항의를 하다 주민 9명이 평택경찰서로 끌려갔다. 주민들은 “잡혀간 주민들을 내놓으라”며 팽성읍 본정리 농협 앞 빈터에서 처음 촛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은 국방부가 대추초등학교를 접수하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2005년 9월 대추초등학교 앞마당으로, 2006년 5월4일 국방부의 야만적인 행정대집행으로 초등학교가 허물어진 뒤 대추리 노인회관 옆에 자리한 평화예술동산으로 옮겨왔다. 그때 주민들의 감회는 한 마디로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는 것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주한미군 쪽에서는 “마스터플랜에 작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지만, 계획은 예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싸움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지만, 저들의 계획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추리·도두리의 농민들은 강하고 아름답다. 주민들은 “우리는 이 땅을 위해 끝까지 싸울 테니까 시민 여러분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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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운다] 우린 돈 땜에 싸운 게 아니여농촌 사람 깔보는 거야, 돈 얼마 줬다는 말만 하고 지랄하잖아
▣ 이수걸(70)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3
봄에 심은 고추가 파랗게, 빨갛게 주렁주렁 열렸다. 마을 곳곳에서 고추 따고 약 주는 손길이 바쁘다. 이수걸 할아버지도 이른 아침부터 고추밭에 약 주러 가신다.
고추밭에 약 주러 가.
봄에 심은 거 지금 따먹고 있잖아. 탄저병 때문에 약 주는 겨. 고추가 자꾸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리지 말라고 주는 거여. 얼마나 애들 쓰고 키운 건데. 다 그렇지 뭐.
난 1952년에 구대추리에서 넘어왔지. 15살 때 저 이북서 피난 와서 구대추리에서 살다가 쫓겨난 거지. 실향민이여. 구대추리에서 넘어올 때는 17살이었어. 구대추리에서는 나그네 셋방살이 했어. 공회당에서 셋방살이 하다가 여기로 쫓겨와서는 포막 짓고 살았지. 거기나 여기나 고생을 얼마나 했다고. 포막을 막대기로 세우고 이엉으로 지붕 엮어서 한 해 겨울을 살았어. 이렇게 움막집에서 3~4년 살다가 집을 짓기 시작한 거지.
군대 제대해서 1968년부터 미군부대 경비일 하고 여적까지 하는 거여. 미군부대 경비 15년 했고, 지금은 아파트 경비일 하지. 출판사 수금사원일도 8년 해봤고. 미군부대에서는 실탄 넣은 총 메고 일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다고. 일하고 돌아와서 논에 나가는 거지. 조금씩 땅 얻어서 농사짓기 시작했어. 2구간 지었어. 3천 평. 철조망 안에 안 들어간 거 가꾸며 사는 거지.
집 헐거나 말거나. 즈이놈들 뭐 또 맘대로 하겠지. 철거한다고 했으니 뭐 하겠지. 니들은 헐어라, 우리는 가만히 있겠다 이거지. 사람 사는 집 즈이들이 헐겄어? 뭐, 하긴 워낙 흉악한 놈들이라 어쩔지 모르지. 몰라. 불안할 것도 없고. 그냥 사는 거지. 우리 안사람은 신경써서 약도 먹고 신경외과도 다니고 그래. 난 뭐 당뇨·고혈압·관절 때문에 고생이지. 괜찮았는데 올해 와서 많이 아프네.
지금 대추리 사는 이정오·방효태 하고 다들 동갑이여. 노인회장은 한 살 더 먹고. 이정오는 좀 후에 오고, 방효태는 집안 대대로 사는 사람이지. 이 동네 방씨가 많잖아.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지. 자치기하고, 공도 차고. 뭐 요즘 다들 김장배추 심고 고추 따느라 바쁘지. 나도 추석 때 먹으려고 조선배추 심었어. 비가 와야지 뭐 좀 해먹을 텐데. 비가 안 와서 걱정이여. 농사짓는 거 힘들지. 힘들어.
노무현이 개판이지. 농촌 사람들이라고 깔보는 거야. 국방부 직원이고 시청 직원이고 돈 얼마 줬다 뭐했다는 말만 하고 지랄하잖아. 얼마 전에 시청 직원이 찾아와서 가격이 얼마니 뭐니 지랄했잖아. 땅값이 몇 배 오르지 않았냐고. 그런 멍청한 놈들이 어딨어. 그 지랄들이나 하고. 우린 돈 땜에 싸운 게 아니여.
처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찾아갔어. 전세버스 타고 많이 다녔지. 국방부에서 청와대에서 우리 말 안 들어보려고 했지. 안 만나준다고 했지. 시골 사람들 무시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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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땅 지키기] 평택의 승리일까요? 111,210,391
9월1일 1억1121만391원
9월1일 대추리에는 오랜만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났습니다. 그날 <조선일보>에서 미군이 평택 시설계획을 전면 보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를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주한미군 쪽에서는 ‘한-미 작통권 이양’ 문제로 애초 계획에 작은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진 일정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조선일보> 쪽의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그렇지만 변화의 낌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부에서는 8월30일 빈집 철거를 위한 용역과 경찰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사태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한겨레21>은 <조선일보>의 보도가 팩트에 충실한 정확한 것이길 바랍니다. 평택 황새울에서 안성천 너머로 저무는 노을을 다시 볼 수 있다면, <한겨레21> 평택 싸움의 승리를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이라는 영예를 기쁜 마음으로 <조선일보>에 양보하겠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김하랑(3만원) 박민희(3만원) 권혁 금속시그지회(4만1800원) 조혜영(10만원) 이지영(5천원) 나혜온 이미연(5만원) 정은선(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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