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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택 캠페인] 대추리에 날아온 ‘외국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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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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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큐멘터리 작가 나카이, 미국 기자 싱글테리, 멕시코 미술가 라시…파헤쳐진 논을 보며 함께 슬퍼하고 평택 지킴이가 된 외국인들 이야기

▣ 글·사진 두시간 대추리 이주자

농사밖에 모르던 동네 대추리에 꽤 많은 외국인이 다녀갔다. 그 가운데 일본인 나카이 신스케, 미국인 본 싱글테리, 멕시코인 페드로 라시. 이들의 인상이 눈에 선하다.

나카이 신스케는 일본 교토 출신의 30대 청년이다. 미군기지 터 주변 사람들의 삶을 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가인 그는 지난 연초 대추리에 온 특별한 사정을 이렇게 말한다. “교토에서 열린 ‘Marines go home’이라는 영화 상영회에 갔다가 대추리에서 온 활동가를 만났어요.


여기서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계속 지키려고 싸우는 것을 알고 이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질기게 싸워주세요”

그가 대추리에 첫발을 디뎠을 때 알고 있던 한국말이라고는 고작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잘 먹겠습니다” 정도였다. 지금 그는 “맛있다”는 우리말 형용사를 “맛있겠다”로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대추리 주민들, 특히 먹을거리를 챙기는 부녀회원들과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결과다. 그가 사랑받는 까닭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절절한 고통을 그가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비록 논을 빼앗았지만 집까지 빼앗지는 못할 거라는 희망을 그는 갖고 있다. 국방부의 강제철거가 이루어진 지난 5월4일과 5일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렇게 잘해주시는 것에 대해 보답하도록 작업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주민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지킴이다.

20대 초반의 미국인 여성 본 싱글테리.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에서 매달 발행하는 진보적 신문인 <뉴피플> 기자이자 저술가다. 그녀는 석 달 전에 또 다른 미국인 친구에게서 대추리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미국 정부가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해왔는지를 알고는 놀랍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곤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찾기 위해 첫 국외선 비행기를 탔다.

그녀가 대추리에 첫발을 디디며 목격한 것은 군경이 파괴한 아름다운 논과 대추초등학교 건물, 뿌리가 뽑힌 거목, 나뒹구는 미끄럼틀이었다. 그녀는 처참한 광경에 눈물을 흘렸고, 마을에 머무는 동안 땅에 대한 이 지역 농민들의 뜨거운 애착에 깊은 존경심을 품었다. 한 달을 머문 뒤 미국에 돌아간 그녀의 소망은 미국인들이 직접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녀는 주민들에게 “포기하지 마세요. 계속 질기게 싸워주세요.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저도 미국에 돌아가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자에게 “미국 사람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미국 정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 사람들이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한다. 국경을 넘어 “대추리·도두리에서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 역시 나카이처럼 평택 지킴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종합대학 교수이자 미술가인 멕시코 국적의 페드로 라시. 9월과 10월에 열릴 광주비엔날레의 초대를 받은 그는 사전답사차 6월 말 잠깐 대추리에 다녀갔다. 군부대가 철조망을 치고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황새울 들녘을 보는 그의 서글서글한 눈이 슬픔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대추리에 들어온 미술가와 시민들이 주민들과 웃고 장난치는 모습에 그의 눈은 이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기자는 그에게 지킴이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6월 초 정부는 주민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외부 세력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주민대표는 정부 관리에게 “우리에겐 외부 세력이 아니라 천사”라고 응수했다. 관리는 “그렇게는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주민대표는 “그럼 지킴이로 부르라”고 했다. 결국 그렇게 약속했고 문서에도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

멕시코 노동자와 FTA, 그리고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페드로는 반문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오랜 교분을 쌓아온 한국인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언어장벽을 넘어 연대하자고 했다. 그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느끼며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쌀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그 쌀은 멕시코 사람들이 노예처럼 일해서 생산해 한국에 들여오는 겁니다. 멕시코 농민들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면서 몰락했고 미국에 값싼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들어왔죠.” 그래서 그는 미국의 멕시코 이주노동자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나아가 그런 구조를 뒷받침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한 그림 안에 넣는다. 그러면서 밑바닥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그 역시 평택 지킴이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정부가 7월 빈집 철거를 강행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주민과 지킴이 사이엔 마주 잡은 따뜻한 손이 있다.


[들이운다]내 전부인 700평, 반도 못 남았지

지질 검사한다고 들어왔을 때, 저것들이 내 명치를 짓밟았어

▣ 이호순(6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44

이른 아침부터 이호순 할머니가 절반이 뚝 잘린 논 한쪽에서 피를 뽑고 있다. 700평이 전부인 할머니의 논은 구덩이와 철조망으로 갈라져 두 개가 되었다. 군홧발로 밟혀 죽어가는 저쪽 편 논을 등지고 할머니는 남은 거라도 살리기 위해 몸을 굽힌다.

그래도 가꿔야지.

안 먹을 수도 없고. 난 저 700평이 전부여. 그런데 반도 못 남았지. 절반 넘게 죽어가고. 우린 그것뿐이여. 저걸로 먹고살았지. 일해서 먹고살았는데. 그러니 저거 파놓을 때 내가 정신을 잃었지.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려. 스물다섯에 여기로 시집와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벌써 몇 년이냐. 비행기 소리가 너무 커서 못 살겠더라구. 아기를 낳았는데 놀라서 잠을 못 자. 깜짝깜짝 놀라고. 그 소리에 태어난 지 3일 만에 애가 죽었어. 첫애였는데 그렇게 됐어. 나 그렇게 살았어.

결혼하기 전에는 저 미군기지 쬐그맸었어. 저기 조그맣게 있었는데 점점 커지더라구. 그전에는 저 길이 뚫렸었어. 안정리로 가는 길이 뚫려서 걸어다녔어. 그런데 요놈들이 점점 먹어 들어오더니 학교 정문 있는 데 있잖아. 거기를 딱 막더라고. 막으니까 어떻게 해. 갈 데가 없잖아. 그래서 동네에서 돈을 걷어가지고 땅을 샀다고. 길을 맨들었어. 지금 버스 다니는 길 있잖아. 그거 우리가 맨든 거지. 그때는 다 흙길이었어.

우리 아저씨는 이발소를 했어. 처음에는 집에서 했어. 근데 다른 사람들이 이사 와서 이발소를 냈어. 동네서 3개니께 이발소가 안 되지. 그래 가지고 아저씨가 시내로 나갔어. 시내에서 하다가 도두리 말랭이에 이발소를 샀어. 거기서 22년 동안 했지. 그러다가 저녁에 집에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어. 오토바이 타고 오다 사고 났는데 뺑소니였어. 잡지도 못했어. 기억력이 없어지고 이발도 못하고. 집에서 놀기가 그러니까 평택에 아파트 경비일 나가고, 나도 청소하러 나가고 그랬지. 나이가 먹으면서 후유증으로 시력이 떨어지니까 경비도 못하고. 몇 년 쉬다가 2001년도에 돌아가셨지. 난 52살부터 청소하고 식당일 하고. 고생 퍽 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일 하러 가. 가정집에.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때 지질 검사한다고 기계 들어왔을 때 신부님 끌어내리는 거 보고 구하다가. 저것들이 여기 명치를 밟았어. 군홧발로 밟았으면 죽었어. 운동화를 신었더라고. 걔들이 밀어서 쓰러졌는데 밟은 거여. 병원에서 하룻밤 자고 왔어. 올해 죽을 운인가, 초등학교 무너진 이튿날도. 여경들이 나를 끌어가더니 네 사지를 들고 저기 갔다 버리더라고. 그때 팔꿈치로 얼굴을 때려서 지금도 아파. 밥을 못 먹어. 입이 안 벌어져. 희망이 없어. 하도 아프니까.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몰라, 죽어도 여기서 그냥 살아야지. 너 죽고 나 죽고 할 판이여. 이놈의 정부 악독한 놈들이여.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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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행진이 펼쳐집니다

94,899,881원

6월30일 현재 9489만9881원

평택 대추리의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은 이제 걷기로 했습니다. 행사의 이름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및 한-미 FTA 협상 저지를 위한 285리 평화행진, 평화야, 걷자!’로 정해졌습니다. 이번 행진에서는 평화를 파괴하는 ‘반평화 오적’을 청와대·국방부·정부·미군·검찰과 경찰로 정하고 행진 기간 동안 그들을 직접 찾아가 미군 평택 이전의 부당성을 외칠 예정입니다. 행진은 7월5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됩니다. 정부의 모진 탄압에도 평화를 향한 발걸음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진 신청과 문의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서울대책회의 상황실로 하시면 됩니다. seoul0709@empal.com 또는 016-706-8105.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김말향(5만원) 백승일(3만원) 이승로(1만5천원) 여성학 소모임(11만원) 노형산(5만원) 이길숙(3만원) 김현옥(3만원) 황미란(5만원) 구본철(10만원) 최월순(10만원) 김종진(3만원) 윤여선(50만원) 박지영(10만원) 김유석(10만원) 임현진 김한결·김산(5만5천원) 김재관(10만원) 김근준 박주령 서단 이재인(2만원) 윤정화(3만원) 이자(7299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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