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친우봉사회 동아시아 대표 존 페퍼 인터뷰- 양민학살 사죄노력은 민주주의의 초석
<한겨레21>은 미국친우봉사회(AFKC: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동아시아 대표 존 페퍼(36)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7월25일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이 주최한 ‘독일통일과 갈등해소’ 세미나 관계차 한국에 왔다가 8월1일 출국한 그는 <한겨레21>의 베트남 캠페인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베트남전 와중이었던 지난 1972년 5∼8월 미국친우회봉사회원인 다이앤 존스와 마이클 존스 부부가 이미 한국군 작전지역 양민피해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한겨레21> 294, 295, 296호 연재 참조) 미국친우봉사회는 1917년 퀘이커에 의해 창설된 미국 최대의 인권운동단체. 제1차 세계대전중 전세계의 민간인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전통을 살려, 지금도 세계 전역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다양한 반전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는 문제야말로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면서도 “한국은 베트남전의 주역이었던 미군의 문제를 한반도에서 풀어야 하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 <한겨레21>과 한국 인권운동단체들이 펼치는 베트남 양민학살 사죄운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 한국의 비정부기구(NGO)는 일본에 의한 위안부 문제나 한-미 불평등 관계를 제기해왔고, 미국친우봉사회도 여기에 함께해왔다. 그러나 이젠 한국군대와 정부가 외국에 나쁜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각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중요하고 특별한 일이다. 한국에서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야말로 바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 이 일은 한국사회에서는 대단히 민감한 일이다. 강력한 저항세력이 있다.
=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NGO단체와 참전군인들이 지속적 유대관계를 맺고 공동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는 미국 대 베트남의 단순구도가 아니다. 미국의 인권단체와 참전군인, 베트남이 함께 한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전쟁을 반대하는 그룹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미국 반전운동의 중심을 이뤘던 전통도 여기에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광주학살에도 참여한 것 아닌가. - 한국군부의 역사와 군사문화를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한국사회는 미국사회에 비해 군대식 문화가 심하다. 모든 남성들이 군대에 가야 하고 군대적 사고방식이 있다. 재벌관계도 결국 군대식 아닌가. 그런 것 때문에 평화운동이 어렵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도 이러한 군사문화의 지속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은 두 가지 문제에 함께 직면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대의 책임감이고 둘째는 그 베트남전의 주역이었던 미군이 한국에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부담이 클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한국사회의 군국주의 분위기가 감소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평화운동에 희망을 주는 분위기다. 그렇게 될때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좀더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군사적 필요성이 줄어들면, 참전군인들도 베트남전에 대해 좀더 부담없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나. -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 가령 미국에는 ‘평화를 추구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회’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중 하나는 자신이 싸웠던 지역을 방문해서 나무를 심은 일도 있다. 중요한 것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베트남전을 넘어 평화와 반전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군사문제 정보센터’(Center for defence information) 같은 퇴역장교단체는 군비축소와 군사행동 통제강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TMD(미일전역미사일방어)에 저항하는 일 등 미국군대가 다른 나라에 힘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문제제기를 많이 한다. -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첫째는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의 역사다. 둘째는 미군의 존재다. 셋째는 앞의 두 문제와는 별개이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어떤 공포와 두려움이다. 한반도의 분단이나 중국과 대만이 분리된 것은 더이상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착화된 군사력의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군이 당장 아시아지역에서 떠난다 해도 분단은 남아 있다. 그 누구도 강력한 힘과 군사력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 미국에선 누가 당신들의 평화운동을 방해하는가. = 극우보수 세력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미-북간이나 미-베트남간의 화해 협력을 지지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미국에 있는 ‘베트남 공동체’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베트남전 직후 남베트남에서 도망쳐온 정부관리들과 보트피플들이다. 이 사람들 내부에서 미-베트남 관계정상화를 지지하고 반전운동을 펼치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극도의 반공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이제 나이가 먹고 있다. 2세들은 그런 문제에 관해서 무신경하다. 세력이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베트남전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베트남전은 미국의 제국주의 신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한국에서 베트남전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 나는 <한겨레21>이 추진중인 베트남 현지 병원건립이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준비중인 ‘사죄의 역사박물관’ 건립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져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의료체계와 농업문제, 전쟁피해 재건프로그램에 집중해왔다. -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정부 차원의 사과’를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라고 예상된다. 한국도 과거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싶어했지만 안 되지 않았는가. 미국 정부도 노예문제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지금 당장 한국 정부가 할 일들은 그들이 가진 정보와 기록을 공개하는 일이다. 동시에 고엽제 피해 보상 등 참전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미국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 <한겨레21>의 베트남 캠페인은 베트남전 종전 24년 만에 시작됐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 결코 늦지 않았다. 그 어떤 진실규명도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까지도 2차대전의 여러가지 일들이 규명되지 않았다. 노근리 역시 50년 전의 일이다. 심지어 얼마전 미국에선 1868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인디언 공개처형 진상규명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100년도 더 지난 일 아닌가. 따라서 진실규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
"국방부 장관 즉각 해임"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며…

=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NGO단체와 참전군인들이 지속적 유대관계를 맺고 공동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는 미국 대 베트남의 단순구도가 아니다. 미국의 인권단체와 참전군인, 베트남이 함께 한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전쟁을 반대하는 그룹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미국 반전운동의 중심을 이뤘던 전통도 여기에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광주학살에도 참여한 것 아닌가. - 한국군부의 역사와 군사문화를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한국사회는 미국사회에 비해 군대식 문화가 심하다. 모든 남성들이 군대에 가야 하고 군대적 사고방식이 있다. 재벌관계도 결국 군대식 아닌가. 그런 것 때문에 평화운동이 어렵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도 이러한 군사문화의 지속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은 두 가지 문제에 함께 직면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대의 책임감이고 둘째는 그 베트남전의 주역이었던 미군이 한국에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부담이 클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한국사회의 군국주의 분위기가 감소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평화운동에 희망을 주는 분위기다. 그렇게 될때 베트남전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좀더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군사적 필요성이 줄어들면, 참전군인들도 베트남전에 대해 좀더 부담없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나. -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 가령 미국에는 ‘평화를 추구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회’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중 하나는 자신이 싸웠던 지역을 방문해서 나무를 심은 일도 있다. 중요한 것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베트남전을 넘어 평화와 반전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군사문제 정보센터’(Center for defence information) 같은 퇴역장교단체는 군비축소와 군사행동 통제강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TMD(미일전역미사일방어)에 저항하는 일 등 미국군대가 다른 나라에 힘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문제제기를 많이 한다. -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첫째는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의 역사다. 둘째는 미군의 존재다. 셋째는 앞의 두 문제와는 별개이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어떤 공포와 두려움이다. 한반도의 분단이나 중국과 대만이 분리된 것은 더이상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착화된 군사력의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군이 당장 아시아지역에서 떠난다 해도 분단은 남아 있다. 그 누구도 강력한 힘과 군사력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 미국에선 누가 당신들의 평화운동을 방해하는가. = 극우보수 세력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미-북간이나 미-베트남간의 화해 협력을 지지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미국에 있는 ‘베트남 공동체’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베트남전 직후 남베트남에서 도망쳐온 정부관리들과 보트피플들이다. 이 사람들 내부에서 미-베트남 관계정상화를 지지하고 반전운동을 펼치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극도의 반공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이제 나이가 먹고 있다. 2세들은 그런 문제에 관해서 무신경하다. 세력이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베트남전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베트남전은 미국의 제국주의 신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한국에서 베트남전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 나는 <한겨레21>이 추진중인 베트남 현지 병원건립이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준비중인 ‘사죄의 역사박물관’ 건립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져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의료체계와 농업문제, 전쟁피해 재건프로그램에 집중해왔다. -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정부 차원의 사과’를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라고 예상된다. 한국도 과거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싶어했지만 안 되지 않았는가. 미국 정부도 노예문제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지금 당장 한국 정부가 할 일들은 그들이 가진 정보와 기록을 공개하는 일이다. 동시에 고엽제 피해 보상 등 참전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미국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 <한겨레21>의 베트남 캠페인은 베트남전 종전 24년 만에 시작됐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 결코 늦지 않았다. 그 어떤 진실규명도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까지도 2차대전의 여러가지 일들이 규명되지 않았다. 노근리 역시 50년 전의 일이다. 심지어 얼마전 미국에선 1868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인디언 공개처형 진상규명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100년도 더 지난 일 아닌가. 따라서 진실규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
고경태 기자k21@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