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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택캠페인] 월드컵과 강제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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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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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의 죽음을 덮어버린 6월의 악몽은 평택에 다시 찾아오는가… 검문소 안에 갇힌 주민들은 6월30일까지 나가라는 퇴거명령서 받아

▣ 평택=고유경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us@usacrime.or.kr

재미 삼아 동네 축구에 어울리는 것은 좋아한다. 하지만 경기를 구경하는 데는 취미가 없다. 그래서 요즘 방송과 신문은 물론 거리까지 뒤덮고 있는 월드컵 물결이 새로 사 신은 구두마냥 불편하다. 광화문 지하철역을 나올 때면 거대한 축구선수 인형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질 듯 버티고 있어 깜짝깜짝 놀란다. 건물마다, 인도에도 월드컵 전시물들이 펼쳐져 있다.

가판에는 붉은색 티셔츠와 각종 수건들이 즐비하다. 붉은 월드컵 물결에 동참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소외될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월드컵 열풍과 별개로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아닌 듯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정작 따로 있다. 5월4일 군경이 폭력으로 점령해버린 뒤 계엄 아닌 계엄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 말이다.


할 일 없는 군대, 의료지원하겠다?

“민간인은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승용차를 타고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선 두 차례 검문을 만나게 된다. 군부대가 들어와 논바닥에 철조망을 친 뒤 국방부는 미군기지 수용지역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민통선 지역에서나 있을 법한 검문과 함께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까지 설치했다. 이거 심각한 수준의 인권침해다. 검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가, 불법 불심검문에 대한 항의가 거세지자 평택범대위 때문에 검문한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검문을 한단다. 검문소를 지나 길 모퉁이만 돌면 닿는 곳에 사는 대추리·도두리 마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게 됐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된 그곳에는 군인들이 논 위에 철조망을 치고, 주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논을 파헤쳐 엄청난 깊이와 넓이를 자랑하는 수로를 만들었다. 애초 군사시설이 없는 곳에 군대를 투입해 일단 영농을 막고 나니, 더 이상 ‘군사작전’을 할 게 없어졌다. 대한민국 군대, 대단하다. 아이디어, 샘솟는다. 뜬금없이 지역 주민들 의료지원 활동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초록으로 자라는 벼를 짓뭉개고 철조망으로 주민들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더니 의료지원을 해준다? 이건 완전히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주둔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군이 조만간 할 일을 못 찾게 되면, 자기들이 파놓은 수로를 메웠다가 다시 파내는 일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다.

민간인 취급도 못 받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도 지난 5월31일 지방선거날 투표를 했다. 예년 같으면 ‘지방권력 교체’니 ‘중앙정권 심판’이니 하는 말들에 ‘콩이네 팥이네’ 곁들여가며 노인정에서 이야기 보따리와 함께 막걸리통을 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용히 지나갔다. 그저 기지이전 반대싸움을 지원해준 후보를 찍자는 말들만 조용히 나눴다. 시민에게 주어진 의무를 행사하지만,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 탓이다. 4년 전에도 비슷했다.

지난 2002년 여름 참으로 많은 비를 맞아야 했고, 그 빗속에서 굵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해 6월13일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깔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도 양주 참사 현장과 의정부 미2사단 정문, 광화문을 돌아다니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과와 살인 미군 처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절규는 그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의 열기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집회가 열리는 날마다 지겹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늘도 슬피 울던 그해 6월을 보냈다.

미 2사단 정문에서 미군들이 총을 들고 나오자 사람들은 “나도 죽이라”며 가슴팍을 내밀었다. 집회에 참가한 여고생들은 효순이와 미선이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고, 그들을 막는 경찰들의 봉쇄는 힘이 없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살인 미군이 한국 법정이 아닌 미군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날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미군을 처벌하라며 절규하고 울부짖었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공무 중 사고’라 재판권을 포기할 수 없다던 미군 당국은 지휘 책임자인 부대장 등은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차량 탑승자 2명만 미군 법정에 세웠다. 그마저도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결국 사건의 진상을 왜곡 은폐하는 결론을 내렸다. 두 여중생의 죽음은 살인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야 촛불이 돼 세상을 밝혔다. 형식적이나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도 받아냈고, SOFA의 ‘개선’을 통해 예방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그 촛불은 미국에 당당한 대통령을 요구했고,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마을 철거 작전 또한 상상 초월

1992년 윤금이씨가 주한미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됐을 때 “기지촌 여성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한-미 동맹에 금이 가서야 되겠느냐”는 정부 당국자의 말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는 감히 그런 얘기를 할 당국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해졌다. 그럼에도 또다시 다가오는 월드컵의 계절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 우려를 씻어낼 수 없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2006년 6월30일까지 마을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서를 받아놓은 상태다. 5월4일 군부대가 경찰들의 호위 아래 마을과 황새울 들녘에 투입되고, 무장 경찰들이 마을로 진입해 사람들을 연행한 뒤 포클레인으로 대추분교를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날 상상을 초월한 군경 합동작전의 경험에 비춰 마을 ‘철거 작전’ 또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의 달 6월이 지나면 강제철거가 시작될 것이다. 또다시 파괴와 희생을 치른 뒤 눈물을 흘릴 것인지, 문제투성이 기지 협정과 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파괴와 희생을 미리 방지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10만의 촛불이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라는 불빛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 원한과 애원, 포기와 부여잡음이 한마음에 공존하는 대추리·도두리에 평화의 불빛을 비춰야 할 때다. 그곳은 전쟁기지를 건설할 땅이 아니라 볍씨가 자라나 물을 대어야 할 땅임을, 민간인이 마음대로 드나들고 농사지으며 정답게 살아갈 곳임을 알려야 한다.


[들이운다] 뭔 지랄을 하든 일 하는 거지

돈 땜에 싸운 게 아니잖아, 여기서 평생 살겠다고 한 거지

▣ 방효태(70)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4-5

방효태 할아버지는 단 하루도 몸을 쉬게 놔두지 못하고 논과 밭에서 일을 하신다. ‘안 하면 살 수가 없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피를 뽑았다.

이걸 마음대로 못하고 도둑질하듯 허니 말이나 되냐구. 아휴 물을 잡아서 약을 줘야 하는데, 물이 없잖아. 아직 내가 힘이 있으니께 하는 겨. 기어는 댕기니께 하는 거지. 내가 70이거든. 귀찮다고 안 하면 어떡해.

이거 내 논이거든. 땅값도 안 찾았거든. 내 논에 내가 들어가는데 누가 뭐라 그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렇게 하잖아. 내가 땅 팔았어? 난 땅 안 팔았거든. 그런데 내가 왜 불법이야? 기가 맥힌 노릇이지.

국방부가 뭔 지랄을 하든 그건 지들 법이고. 나는 내 논에다 가꿀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먹고 안 먹는 건 몰러. 법이 할 테구. 난 안 하면 살 수가 없잖아. 난 직업인데. 일하는 게 농민의 기본이여. 난 돈도 필요 없어. 우리는 돈 땜에 싸운 게 아니잖아. 땅을 지키고 내가 여기서 평생을 살겠다고 한 거지. 돈 더 달라고 싸운 거 아니잖아. 목을 조이는 겨. 힘의 논리로, 서민들을. 아프지. 한없이 아프지. 말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말로 할 수가 있나.

도시 가면 어떻게 살아? 배운 게 농사밖에 없는걸. 기술이 있어, 돈이 있어, 나이가 있어? 오로지 땅만 파먹고 살아왔는걸. 우리 나이 70이면 끝나는 거여. 인생 막음하는 거지. 이제 새삼스레 어떻게 하고 살아. 인제 끽 살아야 한 5년이여. 가는 건 순서가 없잖아. 때 되면 가야지. 이렇게 험한 꼴 볼라고. 그렇다고 해서 인생 마음대로 못하잖아. 죽으라면 죽고, 자연의 원리대로 하는 건데.

국책사업이 자국민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난 관계가 없다구 봐. 대한민국 국민이 국민답게 살아야 하는데, 왜 미국놈들한테 이런 걸 내주냐구. 위정자로서 할 게 아니지.

협의매수한 사람들이 땅 팔고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거든. 고향인데 고향을 버리고 나간다? 이거는 짐승도 안 되는 거거든. 하물며 저놈들은 말하기 좋게 협의매수라는데, 팔고 싶어서 파나? 견디지 못해서 파는 거여. 보다시피 몇 번을 이렇게 철조망을 치고 군인 들어오고. 인간의 탈을 쓰고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거야. 목을 조이는 거지.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정부와 대화를 했습니다

87,935,813원

6월2일 현재 모금액 8793만5813원

막혔던 물꼬가 열렸습니다. 정부가 평택 주민대책위와 6월2일 다시 대화에 나섰습니다. 서로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첫 만남치고는 느낌이 나쁘지 않습니다. 정부는 전에 없이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민들도 저간의 상황과 정부에 대한 요구를 소상히 전했습니다. 다시 만날 약속을 했고, 모임이 끝난 뒤에는 함께 자장면도 먹었습니다. 지난 5월4일 포클레인의 삽날에 대추분교가 힘없이 무너지고, 황새울에 온통 철조망이 둘러쳐지면서 숨통이 막혀가던 주민들은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그동안 정부는 대화를 제의할 때마다 주민들에게 대체 영농 부지와 이주단지 마련, 가난한 주민을 위한 이주단지 내 임대주택 건설, 추가 위로금 지급 등만 강조해왔습니다. ‘보상’만 강조하면서 대화에 앞서 주민들의 이주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군·경을 동원해 힘으로 밀어붙여 주민들이 입은 정신·육체적 고통에 대해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군대와 경찰을 마을에서 물려야 합니다. 붙잡아간 주민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영농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타들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부가 이번만은 주민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진이정이 아빠(4만원) 민주노총 여성(65만원) 류성문·김영애(5만원) 권유리(2만원) 조영금(2만원) 이호덕(3만원) 성동주민공동(10만원) 손영익(2만원) 우정희(3만원) 김현주(3만원) 방현옥(5만원) 노순택(20만원) 김승휘(5만원) 위창희(5만원) 정인수(3만원) 경기여고 3-14(8만7900원) 윤대영(10만원) 전만규(100만원) 박현정(5만원) 윤양순(5만원) 전남 나주농협(11만원) 이예겸(2만5천원) 이예지(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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