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4월26일 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대책위) 사무실이 꾸려진 대추초등학교에 모여든 농민들은 “국방부가 이번에는 군대를 동원한다”며 숨을 낮췄다. 그들은 “이번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듯 보였다. 국방부는 4월27일부터 5월7일까지 대추분교를 강제 철거하겠다고 주민들에게 공문을 보내왔다. 그들은 주민들의 저항을 헤치고 대추초등학교를 접수한 뒤, 돈 7억여원을 들여 미군기지 확장 예정 터 285만 평을 모두 감쌀 수 있는 길이 25km짜리 철조망(높이 1.8m)을 설치할 계획이다. 경창호 대미사업부장은 “철조망을 친 뒤에는 보병이 경계를 서고, 외곽 경비는 경찰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에는 곤봉으로 시위 진압 훈련을 받고 있다는 병사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크게 질수록 크게 이기는 거야”
문정현 신부는 “이대로 충돌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물리력이 없으니까 결국 처절하게 당할 수밖에 없겠지. 처절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더 크게 이기는 거야. 80년의 광주를 생각해봐. 이번 싸움은 더 크게 질수록, 더 크게 이기는 거야.” 주민들에게 저항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된 듯했다. 농민들은 웃고 떠들며 “이번에는 단체로 안전모를 맞추고 나가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의 웃음에서 기자는 설핏 피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이웃한 K-6 미군기지에서는 지겹도록 블랙호크 헬기가 뜨고 지고 있다. %%9900001%% 국방부가 말했던 ‘대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국방부는 4월27일 오후 3시 평택 팽성읍사무소로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은 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임인 팽성 대책위에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았다. 김장수 국방부 부지확보실 대령은 “오늘 설명회에는 협의 매수에 응한 사람들만 왔다”며 “대추리·도두리에 반대하시는 분들에게는 별도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미 땅을 팔고 나간 사람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대책위 주민에게 잘못 걸려온 국방부의 전화를 받고 설명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택균 대책위 사무국장은 “하여튼, 웃긴 놈들”이라며 혀를 찼다. 설명회에는 대추리·도두리에 살다 땅을 팔고 나간 주민 40여 명이 모였다. 지난 2월까지 도두2리 주민이었던 이연철(70)씨는 “땅을 빼앗긴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 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스물여덟에 평택 도두2리로 이사했다. 그도 남은 농민들과 함께 갯벌을 막아 논을 한 뼘씩 넓혔다. 젊은 시절 그는 땅 6천 평을 소작지었다. 그는 땅 3300평을 1평당 15만원에 국방부에 넘겼다. “어차피 나는 보상금 받고 나왔으니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나는 나대로 가는 거지 뭐.” 설명회장에서 노인들의 주장은 계통이 없었다. 그들은 “돈을 더 달라”고 말했다가, “두 번씩 쫓겨나는 설움을 아느냐”고 울었다. 그들은 “약속한 대로 취업 대책을 마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평택시·한국토지공사 직원들이 몰려나와 주민들이 받게 되는 이주정착특별지원금·생활안정특별지원금·이주택지·주거이전비·농업손실보상금·농기구 보상금·전세자금융자금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돈을 신청하려면 등기권리증·주민등록초본·인감증명·통장사본 등을 갖춰야 한다는 유인물을 한 부씩 복사해 노인들에게 나눠줬다. 임정석씨가 “전세자금 5천만원 대출 대신 1천만원이라도 현금으로 달라”고 주장했고, 홍창유(69)씨는 “감정평가를 늦게 받아 보상가가 낮아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미군은 이전을 미루는데… 다음날 아침 조간 신문들은 “2008년까지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는 게 힘들 것”이라는 기사를 나란히 실었다. 박경서 미군기지 이전사업단 창설준비단장은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기지 이전의 핵심 단계인 시설종합계획(MP) 작성을 애초 2006년 6월 말에서 같은 해 9월 말로 3개월 연장하자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은 이날 성명에서 “2005년 12월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MP가 2006년 6월 말로 연기되었고 이제는 9월로 다시 연기됐다”며 “(일정이 자꾸만 늦춰지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주민들과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한 달도 하지 않은 채 군부대 투입이라는 강수까지 두려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보다 못한 <한겨레21>은 4월28일 국방부 대미사업부, 국무조정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모임은 범대위, 대책위 등 4자 쪽에 “함께 모여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며 토론회를 제의했다. 김지태 대책위 의장은 “국방부 쪽에서 4월30일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며 “예고한 대추초등학교 강제철거 계획을 백지화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는 “평택 공설운동장 일대에 현재까지 전투경찰 차량 24대(약 6개 중대)가 집결해 있으며 속속들이 증강되고 있다”는 긴급 메시지가 올라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과 피끓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평택은 다시 폭풍전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