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평택 대추리·도두리에는 마을 주민들을 깨우는 비상 사이렌이 열렸다. 사이렌은 아침 8시40분에 울렸다. 주민들이 국방부의 포클레인을 막으러 들로 나갔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는 “지금 당장 평택으로 달려와달라”는 격문이 나붙었다. 주민들은 국방부의 농수로 침탈이 있기 전날 평택 황새울 영농단 앞에 모여 ‘대풍 기원 통수식’을 열었다. 이근남 평택 농민회장은 “요새 농촌은 부엌의 부지깽이도 일하는 때”라며 웃었다. 주민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통수식장에 모여 “올해에도 농사짓자”고 외쳤다. 대추리에 사는 이순금 할머니는 쇠스랑, 김순득(74) 할머니는 괭이, 홍옥선 할머니는 갈퀴를 들고 통수식을 찾았다. 김순득 할머니는 매년 땅 2200평을 일궈 쌀 50가마를 만든다. 할아버지는 1994년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할머니는 절박한 노동으로 평택 들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난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 힘들지만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나고 ‘할머니 3총사’는 새참도 거부하고 자랑스럽게 황새울 들판으로 흩어졌다. 주민들은 국방부가 “미군 기지를 위해 빼앗아가겠다”고 금 그은 땅 285만 평에 볍씨를 뿌렸다. 주민들은 4월6일 현재까지 80만 평에 씨를 뿌렸다. 김택균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 대책위 사무국장은 “국방부의 농수로 침탈에 대비해 모내기를 포기하고 마른 땅에 직접 씨를 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의 47마력짜리 트랙터는 뒤에 직파기를 달고 하루에 1만 평의 땅에 볍씨를 뿌린다. 땅 1500평에 40kg의 볍씨를 뿌리면 가을에 35가마의 쌀을 수확한다. 그는 “물 관리만 잘하면 직파 농법이 모내기보다 수확량이 더 많다”고 말했다. 농사를 막기 위한 국방부의 몸부림은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농촌공사 평택지사에 농업용수를 차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물이 공급되면 미국과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농촌공사를 윽박질렀고, 기자들을 모아놓고 “기지 이전이 늦어지면 1년에 1천억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신문들은 그 말을 받아 “미군기지 이전 불가피, 이전 지연 땐 연 1천억원 추가 비용”이라는 제목을 뽑아냈다. 경창호 국방부 대미시설부장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간여해서 보상을 더 받게 해줄 테니까 참으라는 식으로 주민들을 세뇌 교육한다”고 말했다. 4년째로 접어드는 주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관리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 보였다. 국방부는 주민들의 저지선을 뚫고 네 방향으로 흩어져 들어왔다. 국방부는 오전엔 도두리 양수장을, 오후에 들어서는 안성천 근처의 양수시설과 황새울의 대영농 양수로를 부쉈다. 국방부는 농민들의 농수로 복구를 막기 위해 빨리 굳고 강도가 높은 조강 시멘트를 부었다. 용역들은 휴대용 소화기를 주민들에게 뿌렸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저항하던 농민·노동자·평화활동가·주민 등 31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주민 7명이 다쳤다. 주민들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울었지만, 국방부 관리들이 그 울음에 성실한 답변을 해줄 것 같진 않다. 경찰이 주민들을 에워싼 사이 국방부의 불도저들은 볍씨가 뿌려진 평택의 너른 논을 갈아엎었다. 비인도적인 국방부의 침탈 작전에 용역들마저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노인들이 개처럼 땅에 끌리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정말 이런 일에 불려오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평택경찰서 뒤쪽에 자리한 ㅊ안전시스템 직원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도두리 마을회관으로 가 마을 주민들을 붙잡고 “시내로 나가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하루 일당 6만5천원을 포기했다. 농수로 1호선 지켜내, 싸움은 계속된다 대추리 황새울에서 작업하던 포클레인 기사 김아무개(33)씨도 “더 이상 작업할 수 없다.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국방부의 압력을 못 이기고 다시 포클레인에 시동을 걸었다. 그의 일당은 45만원이다. 그는 평택에서 7년 동안 토목공사 일을 해왔다. “주민분들이 불러주시면 논도 갈고 흙도 갈았습니다. 아침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돌아갈까 했는데, 하는 시늉만 해달라기에 일당 공칠 수도 없고 해서.” 저녁이 되자 국방부 직원들과 경찰들은 환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농수로에는 콘크리트를 부었고, 논두렁은 갈아엎었으며, 작은 개천을 잇는 다리는 부숴버렸다. 농민들은 평택 들판을 적시는 세 갈래 농수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대리 방며 농수로 1호선은 지켜냈다. 송태경 팽성대책위 기획부장은 “그런 식으로 막아놓으면 물 넘치고 뚝 무너지고 난리 난다”며 “콘크리트는 다시 뜯어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싸움을 끝내고 주민들은 다시 평택 대추초등학교에 모였다. 주민들은 584일째 촛불을 밝히고 “올해에도 농사짓자”고 외쳤다. 그들은 절망을 모르는 전사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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