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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 시민이 한-일 역사에 뛰어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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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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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운동의 주역들, 바람직한 한-일 관계의 가능성을 말하다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주민 생존권 보장한 뒤 역사마을로 조성해야

▣ 사회·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올 한 해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을 평가하고 바람직한 한-일 역사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12월1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었다.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상임대표인 박연철 변호사,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인 이광철 열린우리당 의원, 이준규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국장, 한일민족문제학회장인 최영호 영산대 교수가 나왔다.

2005년 뜨거웠던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의 주역들은 "우토로는 역사문제의 사회화"라고 평가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규, 이광철, 박연철, 최영호씨. (사진/ 류우종 기자)


부끄러웠고 분노했다

사회=올해는 우토로 살리기 불씨가 활활 타올랐다. 사실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우토로 문제를 고민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박연철=1997년이었나. 일본에 있었던 김경남 목사가 우토로 문제를 들고 왔다. 그해 김 목사와 박기호 신부, 그리고 내가 우토로에 가서 실태 조사를 벌였다. 한국에 돌아와 조사 보고서를 각 단체에 돌리고, 그해 9월 우토로 동포 후원회를 결성했다. 일본 시민들은 1980년대부터 제기했던 것인데, 1990년대 중반에 와서야 한국 시민들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그러다가 올해 들어서야 큰 이슈가 됐는데.

박연철=지난해 춘천에서 열린 사회적 약자의 주거 문제에 관한 국제학술대회에 우토로 주민들이 오면서 언론에 보도됐다. 그 뒤 재외동포 문제를 다루는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의 젊은 활동가들이 1990년대에 활동했던 우리를 찾아왔다. 불교계의 진관 스님과 국회의 몇몇 의원에게 이 문제를 알렸고, 일대 캠페인이 일어났다. 우토로 땅을 사자는 모금운동으로 확산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가 공개적으로 우토로 땅을 5억5천만엔(55억원)에 한국 정부나 주민들에게 팔겠다고 밝힌 일이었다.

박연철.

이광철 =사실 우토로를 접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분노했다. 전쟁 때 끌려가 보상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이르렀는데, 그동안 대한민국과 국회의원은 무얼 했는가. 4월12일 의원 14명이 모여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4월 말 우토로에 갔고,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다. 당장 올해 할 일은 주민들의 거주권과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었다. 10억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모금운동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의 변화 때문인지, 지갑 여는 게 쉽지 않았고. 그래도 국가가 할 일이 없다고 냉담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11월 국회 질의 과정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우토로 지원을 위해 예비비까지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제 정부가 책임있게 나서는구나’ ‘거주권 확보 문제는 일단 해결이 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하고 있다.

이준규=우토로 문제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시민사회의 모금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정부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라종일 주일대사와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우토로를 다녀왔고, 정부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갖게 됐다. 정부로선 우토로 주민들의 주거 안정 확보가 1차적 목표다. 주민들이 강제퇴거되는 것은 절대 막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모금운동 초기 논란은 기우

사회=우토로 땅을 사들이기 위한 모금운동을 결정하기 이전에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강제 동원 당사자로서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 한국 시민사회가 나섰으니 말이다.

이광철=우토로라는 역사적 문제가 단순한 지원 문제로 인해 감춰질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금운동을 해보니 기우임을 깨달았다. 지원을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고, 현실을 통해서 역사적 근거를 찾아갔다. 운동은 이념과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게 아니다. 모금이 확산되면서 전후 배상과 사할린, 중국 등의 재외동포 문제까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부도 애초에 우토로를 민사 간의 땅 소유권의 문제로 바라봤는데, 종국에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지원하려고 했다.

이준규.

최영호=우토로가 사회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일본 시민들은 우토로 문제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 전체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는데, 우토로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우토로에 수도·전기를 넣어주자는 운동도 일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한국에서의 모금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전후 처리 등 한-일 역사의 문제를 우리 사회 안에 가져왔다. 특히 모금운동은 일반인들이 직접 역사 문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전후 처리 문제를 지적하면서 논리는 횡행하고 있지만, 정작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4억원의 모금이면 큰 액수다. 그런 점에서 우토로 운동은 역사 문제가 사회화되는 단서이자 시험대였다.

사회=우토로 문제에 대해 일본 쪽에서 어떤 대답이 왔나?

이준규=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17세대에 이르는 생활보호자는 어떤 식으로든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이 길거리로 쫓겨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방정부인 우지시도 우토로 문제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광철=지난 4월 의원단이 우토로에 방문했을 때 우지시에 공동 실태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지시는 답을 주지 않았다.

박연철=우지시의 기본적인 입장은 주민들이 일반 시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힘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전기 문제는 땅 소유권자의 동의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다.

최영호=땅 소유권과 민족 차별은 별개라는 게 일본 공무원의 태도다. 제도적인 차별은 고치겠지만, 소유권 문제는 민족이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토로 땅을 사들여 말끔히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처음 설정한 운동의 기대치가 너무 높지 않았을까.

아무리 못해도 반은 확보할 수 있을 듯

이광철=기업의 후원이 적었다. 의원들 이름으로 기업에 우토로 관련 행사 협찬과 모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1천여 통 보냈다. 하지만 대답은 미미했다. 정부 못지않게 기업도 예민하더라. 혹시라도 일본 시장에 영향을 미칠까봐.

박연철=우토로국제회의는 우토로를 역사마을로 조성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운동의 1차 목표는 거주권·생존권의 확보지만, 그 다음은 역사마을로서의 상징성을 남기는 것이다.

이광철.

이광철=그렇다. 역사적 상징성을 빼놓고 우토로를 생각할 수 없다. 강제노동으로 이끌었던 교토 비행장이 현재 자위대 땅으로 일부 남아 있고,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살았던 함바집도 남아 있다. 우토로는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역사를 덮는 데만 급급하고, 우토로에 우호적인 일본인들조차 역사마을 조성을 부담스러워하는 측면이 있다.

최영호=우지시 한가운데에 있는 우토로는 개발을 앞둔 상태라 보존하기가 만만치 않다. 땅 소유권자는 개발 이익을 얻고 싶어할 테고.

이광철=우토로를 공동소유로 하면 역사적 공간으로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박연철=1980년대 일본 시민사회의 힘이 한창 상승할 때다. 이때 일본 시민들이 우토로를 발견했다. 그들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에 방문하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쨌든 여기까지 왔고 한편으로는 이뤄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우토로 주민들의 뒷모습이나 약한 모습도 투시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은 그저 좋은 ‘이웃 사람’의 순수한 뜻으로 모였고, 그 이상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당차게 모금운동을 벌이는 데에도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고.

최영호=일본 비정부기구(NGO)의 한계다. 최근엔 전후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는데, 전체 사회의 우경화로 인해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한국 시민들은 반대로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시민들이 역사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우토로도 그런 경우다.

사회=우토로 땅의 시가가 30억~50억원 정도 될까. 앞으로 우토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어떤 모습인가.

이준규=아직 주민들이 새 소유주인 서일본식산과 공식적인 협상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보고받았다. 주민들이 매입 방안을 만들려는 논의에 구체적으로 이르지 않은 것 같다. 구체적인 땅 매입 절차에 들어가려면 전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와 현 소유주인 서일본식산과의 소유권 분쟁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야 한다.

박연철=주민과 서일본식산은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논의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논의가 쉽지는 않다. 주민들은 10억원을 낼 예정이다. 여기에 총련과 민단 등 재일동포 사회가 모금을 보태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아무리 못해도 전체 6400평 가운데 반은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에서 좀더 많은 예산을 책정했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사례가 일본에 우토로밖에 없겠냐만, 현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해줬으면 한다.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일 관계가 경색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해결 방식을 통해 한-일 관계를 열어가는 새로운 접점을 만들 수도 있다.

재외동포 문제를 생각하게 된 계기

최영호.

이준규=일본에 전후 책임을 지라면서 강공한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는 평화 관계를 지키면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 우토로 주민을 외국인으로서 선대하라고 요구하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최영호=역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본이 해결해야 한다. 우리 외교 당국은 역사 문제를 관리해야지 해결할 수 없다. 해결은 일본에서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가 신사 참배를 강행할 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관리다. 이 문제가 한-일 교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해줘야 한다. 우토로에 기념관을 지을 때엔 재외동포재단이나 NGO 등이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민단과 총련이 나서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사회=2005년은 우토로엔 중요한 해였다.

이광철=나는 한시름을 놨다. 정부가 우토로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1월 제주도에서 아시아 국회의원들이 모여 아시아 평화의원 연맹을 결성했다. 일본에선 사회당·민주당 의원들이 왔는데, 우토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우토로는 60년 동안 방치돼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정부는 물론 문화예술인, 정치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모금운동에 참여했고, 재외동포 문제를 다시금 생각했다. 2005년은 보람찬 한 해였다.

이준규=재외동포 문제를 국민들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은 정부나 민단, 정치권이 주민들과 협력해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포와 국내와의 유대도 강화됐으면 한다.

최영호=우토로에 역사마을이 세워지길 바란다. 개개인이 감정적 반일이 아닌 합리적인 대응을 고민할 수 있는 역사적인 현장으로, 한-일 관계에서 평화를 키워드로 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박연철=올해 강한 힘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젊은 활동가들, <한겨레21>, 의원들이 열심히 해줬다. 외교통상부도 실천적인 접근을 보여줘서 고맙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가지고 모금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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