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약 50만 명은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 95년, 조국이 해방된 지 60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외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 사회에서 계속 소외되고 있다. 재일동포들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발단은 1905년 11월17일에 체결된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 100년, 재일동포는 아직도 방을 빌리는 것조차 국적을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다. 이런 차별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내가 ‘차별받지 않고 있다’고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이름을 짓고, 일본어를 몸에 익히고, 일본 유치원과 소학교에 진학한다. 일본에서는 민족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되지 않고 대학입시 자격 등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우리나라는 섬나라다’는 교과서를 읽고 일장기가 게양된 강당에서 기미가요를 계속 불러왔다. 이렇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성장한 경우가 많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다른 동포들과 서로 알고 지낼 기회는 거의 없다. 모두 일본 이름을 호적에 올려놨기 때문에 누가 동포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사춘기를 고독 속에서 지낸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면 외국인등록증을 작성하고 항상 휴대하는 것이 법률로 규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는 외국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회사에 취직할 때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채용된다고 해도 일본 이름을 올릴 것을 강요받고, 일본인과 결혼할 때도 상대방 가족에게서 국적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는다. 재일동포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참정권이 없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면 난 왜 조선인인가. 조선인인데 일본에서 자랐던 것인가. 계속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일본 국적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은가?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다. 지금 이렇게 일본 이름을 짓고, 일본인의 가면을 쓰고, 일본인들에게 역행하지 않으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름’을 배제하는 일본 사회에 책임이 있다. 나는 조선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본명(한국 이름)을 쓰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자식에게까지 나와 같은 가혹한 인생을 살아가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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