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유어북] ‘삐딱한 동화’의 정직한 세계
등록 : 2004-06-24 00:00 수정 :
[프리유어북 | 책을 보내며]
‘책을 보내며’ 그 첫회… 안데르센을 거부하는 <행복한 왕자> <니코 오빠…>
김민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나이가 들어서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은 적이 있는가? 어른이 된 당신은 익숙한 동화들에서 어떤 낯설음을 느꼈을지 모른다. 동화가 단순히 어린이의 천진한 동심을 다루는 순수한 어떤 것이 아니라 사실은 특정한 어른들의 세계가 투사된 것임을 어렴풋이 눈치 챌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동화에 담겨있는 내용이 성차별을 조장하고, 인종주의적 뉘앙스를 풍긴다면 당신은 마음이 무척 상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동화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동화를 읽혀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프리유어북에 내놓을 책을 고심하며 고르던 나. 이런 어른들을 위해 ‘삐딱하면서도 기묘한’ 두권의 동화책을 추천하려고 한다.
내가 자유를 줄 동화책은 ‘안데르센’으로 대표되는 고전 동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른 세계가 투사되어 있는 작품이다. 거짓된 화해 대신 어른 세계의 참담한 실상, 또는 이 세상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솔직하게 드러낸 동화들로서 디즈니가 결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않을 작품들이다.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리스 작가 알키 지의 <니코 오빠의 비밀>이라는 두 권의 책을 프리유어북에 부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에는 다른 동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사적 소유에 대한 비판, 자기 희생의 가치에 대한 찬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의식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이들 작품이 딱딱하거나 도식적인 것도 아니다. 동화답게 재미있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기존의 동화에 대한 와일드의 도전 의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행간 곳곳에 녹아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 비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행복한 왕자>에선 금박 동상의 왕자가 제비를 통해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이중에는 성냥을 물에 빠뜨려 발을 동동 구르는 ‘성냥팔이 소녀’도 포함되어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사회의 무관심으로 얼어죽는 것에 대한 와일드식 비판이다. <젊은 왕>이라는 작품은 또 어떤가. 고귀한 공주와 비천한 평민과의 결합 속에 태어난 ‘젊은왕’은 평민들 사이에 섞여 살다가 어느날 왕좌에 오른다. 마치 백조 신분으로 오리 사이에 섞여 구박받던 ‘미운오리새끼’가 백조사회에 입문한 꼴이다. 그렇다면 미운오리새끼는 백조로 인정받은 뒤 어떻게 행동했을까? ‘젊은왕’은 자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므로, 자신의 즉위식에는 가는 황금으로 짠 예복과 루비가 박힌 왕관, 긴 줄무늬 위에 진주를 둥그렇게 감은 왕홀을 준비하라고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하지만 곧 ‘젊은왕’은 자신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죽어라 일하는 여러 사람들에 관한 꿈을 꾸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오늘은 나의 대관식 날이지만 나는 그것들을 입지도 쓰지도 들지도 않을 것이오. 이 예복은 슬픔의 베틀 위에서 고통으로 새하얘진 손이 짠 것이고, 이 루비의 심장에는 피가 흐르며, 진주의 심장에는 죽음이 있소.”
<니코 오빠의 비밀>은 특히 촛불집회에 아이들을 데려가 본 경험이 있는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아이들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당신에겐 아주 좋은 동반자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사 주지 않은 우리 부모님을 순간 원망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니코 오빠가 여동생에게 비밀스럽게 어떤 노래를 가르쳐 주는데, 그 노래가 과연 어떤 노래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이 책을 읽을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내게 그 노래를 가르쳐 준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
* 이번호부터 프리유어북에 ‘책을 보내며’가 연재됩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책을 방생하며 에세이를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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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유어북에 참여할 새책]몸은 나보다 먼저 말한다 피터 콜릿 지음, 박태선 옮김, 청림출판(02-546-4341) 펴냄, 1만9500원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사회심리학자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파헤친 책.
길 밖의 길 백무산 지음, 갈무리(02-325-4207) 펴냄, 7천원 ‘혁명 시인’ 백무산씨가 초월적 권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삶의 충만과 자율을 노래한 시집.
세계인이 꼭 가보는 유럽의 비경 이화득·이미경 지음, 서울문화사(02-799-9154) 펴냄, 1만5500원 여행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부가 자동차로 유럽을 샅샅이 돌아보고 필요한 정보를 모은 책.
책 죽이기 조린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문이당(02-927-4990) 펴냄, 9천원 세르비아의 작가 지브코비치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책의 운명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소설.
만화 학교에 오다 박경이 지음, 우리교육(02-3142-8107) 펴냄, 1만3천원 열혈 만화광인 국어교사가 만화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 아이들과 즐겨 읽는 만화책 등을 소개한다.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 라이너-K. 랑너 지음, 배진아 옮김, 생각의 나무(02-3141-1616) 펴냄, 1만5천원 철저한 자료 분석을 통해 남극점 정복에 나선 아문센과 스콧의 처절한 사투를 기록한 책
초콜릿 우체국 황경신 지음, 북하우스(031-955-3554) 펴냄, 1만1천원 <페이퍼>에 글을 쓰는 작가 황경신씨가 ‘한뼘’이라 불릴 만큼 은 소설들을 묶어 펴낸 책.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최준식 지음, 휴머니스트(02-335-4422) 펴냄, 1만5천원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가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와 함께 한국인의 한식 문화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책.
중앙아시아, 대륙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장준희 지음, 청아출판사(02-337-3485) 펴냄, 1만5천원 중앙아시아 지역 전문가 겸 여행 컨설턴트로 일하는 지은이가 중앙아시아의 역사·문화와 그 속의 한국인들을 조명한다.
그리스인이 들려주는 그리스 신화 니코스 알리아가스 지음, 이은진 옮김, 미래M&B(02-522-0768) 펴냄, 1만2천원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돕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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