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인 김용택씨는 가장 멀리 사는데도 가장 빨리 책을 보냈다. 그것도 책마다 한편의 시 같은 말씀을 줄줄이 쓰셨다. “여기 이 책 속에 내 딸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계십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신 농부들이 있습니다.”(<콩, 너는 죽었다>) “올해도 그 여자네 집 살구나무 살구꽃이 피었답니다. 그 여자도 그 여자네 어머니도 없는 빈집에 살구꽃이 피었다 졌답니다.”(<그여자네 집>) “우리 동네 한 그루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습니다. 새 잎이 피어 눈부십니다. 그 나무를 보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나무는 위대한 이 세상의 창조물입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이 시를 썼습니다.”(<나무>)
<선방일기> 3권을 보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메시지를 읽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지허 스님,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아마도 당신 마음속에,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지허 스님과 강 장관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억누를 길 없어 책을 펼쳤다. 알고 보니, <선방일기>는 본래 1973년 <신동아> 논픽션 부문에 당선됐던 것인데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어떤 눈밝은 이에 의해 책으로 나온 것이었다. 선방의 일과를 솔직담백하게 기록한 지허 스님은 서울대 출신의 출가승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그 뒤로 종적을 감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강 장관의 애절한 문장은 애독자로서 지허 스님의 행방을 궁금해한 까닭이었다.
배우 안성기씨는 따뜻한 마음이 물씬 풍기는 책과 글을 보냈다. 자신이 목소리 출연했던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를 같은 이름으로 꾸민 책과 김혜자씨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등 기증도서마다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엽서가 끼워 있었다. 황기원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장)는 책이 여러 사람 손을 타면 쉬이 더러워진다며 비닐 커버를 입혀서 기증했다. 책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일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277쪽 ‘오월의 빛’부터 읽고, 나머지는 아무 꼭지나 열어서 읽으시면 즐거움이 더할 것입니다.”(<책 같은 도시 도시 같은 책>)
건축가 정기용씨는 <의재 허백련-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를 보내며 속표지 한바닥 가득 장문을 썼다. “이 책은 나의 동료 건축가인 조성룡 선생이 의재 허백련 선생님을 기리는 미술관을 광주 무등산 자락에 지으며, 기념으로 편찬한 책이다. 책이라기보다, 책으로 집을 지은 느낌이다. 한국 동양화의 맥을 잇고 있는 화가다. 그를 위한 건축을 설계한 건축가다. 이들을 한 방에 모으는 일을 한 ‘책 디자이너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한편으로는 낯설고 불편해 보이는 이유를 더듬으면서.”
소설가 박완서씨는 처음엔 자신의 책은 기증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가, ‘저서는 더욱 환영’이라는 말에 <나목> 등 소설 13권을 부랴부랴 챙겨 보냈다. 어린이를 위한 미술가이드북을 쓰기도 했던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김선정씨는 <나는 싸기대장의 형님> <솔로몬과 나비> 등 좋은 동화를 여러 권 보낸 뒤, 이튿날 잊은 책이 있다며 추가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등을 보탰다.
이 밖에도 여러 사람이 좋은 뜻을 모았다. 김원(건축설계사무소 광장 대표), 노회찬(국회의원), 박원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송기철(음악평론가), 승효상(건축설계사무소 이로재), 윤도현(가수), 이상은(가수), 이일훈(후리건축 대표), 임옥상(화가), 정태춘(가수), 정기용(기용건축 대표), 박영선(국회의원), 유홍준(미술평론가·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황지우(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기웅(열화당 대표), 황정민(아나운서). 행사 당일 금남로를 지나던 많은 이들은 이들의 이름에 끌려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 책들을 정말 주는 건가요?”
그래서 정말 부탁한다. 책을 주신 분들의 좋은 뜻을 당신의 서가에 가두지 마시라고. 책을 발견하면 인터넷 사이트(
www.freeyourbook.com)에 반드시 ‘신고’할 것을, 그리고 소중히 읽은 뒤엔 반드시 남과 나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