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과 함께하는 ‘프리유어북’]
200여명이 광장 길바닥에서 ‘플래시몹’ 책놀이… 신기한 광경에 깜짝 놀란 시민들에게 책 선사
인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4월24일 오후 2시30분 인천 부평역 광장. 깨갱개앵~ 느닷없는 꽹과리 소리가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찢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역광장에 서성대던 아이들 200여명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풍경에 행인들은 발길을 멈췄다. “도대체 뭐지?”
“책으로 재미있게 놀 수 없을까"
이 행사는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열린 플래시몹 형태의 ‘책놀이’. 플래시몹이란 플래시크라우드(순간적으로 접속자가 폭증하는 현상)와 스마트몹(같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집단)의 합성어로서, 불특정 다수가 이메일과 인터넷 등을 이용해 ‘지령’을 받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같은 행동을 한 뒤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유네스코는 1995년 독서·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식 소유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표현하기 위해 4월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했다. 애초에 책의 날을 제안한 스페인에서는 이날만 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과 붉은 장미를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아 도시 곳곳에서 책과 장미를 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책으로 재미있게 놀아볼 수는 없을까’를 궁리하던 사람들이 뭉쳤다. 학교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해 애써온 교사들(‘학교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인천도서부연합), 시민단체(‘학교도서관 살리기 인천시민모임’)가 함께 책을 통해 ‘의미 있는 몸짓’을 보여주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수백명이 책을 읽는 플래시몹을 하고, 뒤이어 시내 곳곳에 책을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리유어북 사이트에 등록한 책은 690여권에 이르지만 이처럼 집단적으로 프리유어북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플래시몹이 벌어지는 10분 동안 역광장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생겨났다. 궁금함이 가득한 행인들은 수군댔고, 참가자들은 이에 초연한 듯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친구와 함께 역광장에 왔다가 플래시몹을 지켜본 이보해(20·인천 부평구 갈산동)씨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신기하다, 신기해”를 연발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셔서 친구들과 와봤다”는 설재현(17·인천 효성고)양은 함께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땅바닥에 앉아서 책읽는 게 자신이 없고, 가진 책이 교과서뿐이라 오늘은 그냥 보기만 했어요. 다음엔 같이 하고 싶어요.
풀어놓을 때의 스릴감이란…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다시 꽹과리 소리가 끝을 알렸다. 전부 책을 덮고 일어섰다. 볼이 발그랗게 상기된 아이들은 금세 재잘대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던 여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부광여고 도서부 동아리 ‘유노’(JUNO) 회원들이었다. 바닥에 앉아 책을 읽은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썰렁할 줄 알았는데 되게 재밌네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니까 창피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또 하고 싶어요.” “시험기간이라 다른 친구들이 많이 오지 못한 게 아쉬워요.” 속사포처럼 소감을 쏟아놓은 아이들은 이내 “우리나라도 어딜 가나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드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정답’으로 마무리했다.
이제는 책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만 남았다. 벌써 역광장 곳곳엔 프리유어북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벤치에 세로로 꽂힌 책도 있고 가로수 밑에 놓인 것도 눈에 띄었다. 자유를 얻은 책들은 이제 다양한 자세로 새 주인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이날 오후 인천터미널에 알퐁스 도데의 <별>을 놓고 온 김동초아(18·인명여고)양은 다른 참가자들보다 대범한 편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눈치보지 않고 벤치에 책을 놓곤 뒤도 안 돌아보고 왔어요. 물론 새 주인이 책을 놔주지 않고 자기 책꽂이에 꽂아둘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요.”
오후에 버스가 밀려 부평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플래시몹에 참가하지 못한 유준희(17·인천고)군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작은 해프닝을 겪었다. “버스에 슬쩍 책을 놓고 내렸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따라내리더니 책을 잊고 갔다며 돌려주더라고요.” 그는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프리유어북의 취지를 설명했고,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받았다. 책을 풀어놓을 땐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상관없이 떨리는 모양이다. 교사 김영석(30·논곡중)씨는 “버스 뒷자리에 책을 놓고 내리는데 좋은 일을 하는 건데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두근두근하더라”고 느낌을 전했다.
진달래 망울이 터지기 전 시작된 프리유어북은 라일락 향기를 머금고 점점 더 많은 날개가 돋아나고 있다. 이제는 책들이 훨훨 날아 그 여행의 흔적을 보여줄 때다. 프리유어북 사이트(www.freeyourbook.com) 운영자 김정호씨는 “책을 발견한 이들은 꼭 인터넷에 접속해 발견 장소와 날짜를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길바닥에 누워 책 읽은 적 있니?” 부평역 광장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운 자세로 '독서'를 하고 있다.(사진/ 김진수 기자)

프리유어북에 참가한 부광여고 독서부 동아리 'JUNO'.(사진/ 김진수 기자)

“남들 시선은 두렵지 않아” 10분 동안 독서삼매경.(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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