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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유어북] “책 놓고 돌아설 때 짜릿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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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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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한겨레21>과 함께하는 ‘프리유어북’]

현재 회원등록 300여명, 전국 여행 중인 책은 112권… 당신도 ‘방류’의 기쁨에 동참하세요

골방의 책들을 사람들의 광장 속으로 보내는 책나눔운동, ‘프리유어북’(www.freeyourbook.com)이 네티즌들의 따뜻한 관심 속에 서서히 걸음마를 떼놓고 있다. 현재 프리유어북에는 300명 가까운 회원이 등록했으며, 모두 112권의 책들이 전국을 ‘여행’하고 있다. 운동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아끼던 책을 잃어버릴까 걱정스러워 책을 선뜻 내놓기 어려운 분들께 손을 내민다. -편집자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21>과 함께하는 프리유어북 운동의 새로운 로고. 새장 속 새가 풀려나와 푸른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책장에 갇혀 있던 책이 자유를 얻어 드넓은 세상을 누비는 모습을 표현했다. 펼쳐진 책갈피 위엔 홈페이지 주소(www.freeyourbook.com)가 적혀 있다.
“일단 지하철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척해요. 근데 막 안 꺼내지는 척하면서.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어요. 가방 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 싶으면 순간적으로 책을 의자에 놔두고 냅다 뛰어요. 그리고 지하철 계단으로 올라간 다음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와요. 놓아둔 책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르는 척 서 있으면 누군가 그걸 집을 거예요. (…) 주의할 건,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안 돼요. 좋은 일 한 거 티나면 멋이 없잖아요. 식당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냥 나가면서 그 사람 모르게 내가 그 사람 것까지 계산해주고 나갈 때 멋있는 거니까. 그럼 모두 열심히 방류, 열방!”

뜯어먹다가 내팽개친 책들이여

김병용(18·서울 대진고 3학년)군은 지난 3월23일 처음으로 ‘방류’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그 기쁨을 프리유어북 게시판에 올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그는 지하철역 3곳에 3권의 책을 차례차례 풀어줬다. 이날 저녁 7호선 하계역과 먹골·중화역에는 <자신있게 살아라>(앤드류 캐트스 지음, 홍은주 옮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좀머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가 놓여졌고,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김군은 “책을 놓고 누군가 집어갈 때까지 기다리던 순간이 짜릿했다”고 말한다. 교복에 달린 이름표 때문에 책을 발견한 이가 눈치챌까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서 있어야 했다. 혹 책이 너무 구석진 곳에 놓이면 발견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잘 보이는 계단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잽싸게 뛰어가기도 했다.

“책을 놓고 뒤돌아설 때 짜릿했어요.” 책을 지하철역에 풀어놓는 일이 보물찾기처럼 재미났다는 김병용군.(류우종 기자)
“엄마·아빠도 제가 이렇게 책을 풀어준 건 몰라요.” 대학 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어 지금은 책을 많이 읽지 못하지만 교사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책과 가깝게 살았다. 그래서인지 <한겨레21>에 실린 프리유어북 기사를 보고 관심이 커졌고 선뜻 책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물찾기 같은 거 하면 한번도 보물을 찾아본 적이 없어요. 프리유어북에선 내가 보물을 내놓고 찾아가라고 하는 거죠.” 김군은 프리유어북을 통해 책에 관한 새로운 정보나 감상, 평가도 나누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알았으면 한다.

충청남도 공주에 사는 이동은(44·회사원)씨는 3월22일 프리유어북 스티커를 우편으로 전해받았다.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의 소개를 받고 프리유어북 사이트에 들어가본 그는 “신선하고 독특한 문화운동”이라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그렇잖아도 책욕심이 많아 몇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제때에 책을 처분하지 않아 아내의 핀잔을 들은 것이 헤아릴 수 없는 그였다. 언젠가 헌책방에 갔다가 자기가 읽던 책을 아내가 몰래 내다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씁쓸함과 황당함에 몸을 떨기도 했더랬다. 그는 이참에 “뜯어먹다가 내팽개친 책들, 평생 뜯어먹어도 못 먹을 책들”을 방류하기로 결심하고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유시민 지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지음),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마틴 하트-랜즈버그 지음, 신기섭 옮김), <카오스의 날갯짓>(김용운 지음) 등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드는 데 영양분을 공급했던 책들을 나누고 싶어한다.

공주에는 지하철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없어 그는 대학에 책을 내놓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무엇보다 이씨는 자신이 아끼는 책을 공공장소에 내놓는다는 것은 그냥 책을 나눠본다는 의미를 넘어, 인터넷 시대에 무한정 확장되는 소통의 방법이라고 본다. “책은 매개체지만 운동이 커지면 새로운 연대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프리유어북 운동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꼼꼼히 밝힌 ‘10가지 제언’을 게시판에 올렸다. △도서관·서점·출판사·책동호회·시민사회단체 등과 연대할 것 △국내 언론매체에 충분히 홍보할 것 △회원간의 친목과 의사소통을 위한 구조를 만들 것 △게시판의 개편 필요성 등을 조목조목 짚어 운영자를 감동시켰다.

프랑스의 프리유어북 운동, ‘파스 리브르’ 포스터.

도서관과의 뜨거운 만남을 구상한다

학교 사서로 발령 대기 중인 정재연(24)씨도 프리유어북의 열렬한 지지자다. 누구든지 와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도서관이야말로 평등한 장소라고 믿기에, 도서관이 좀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씨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책을 건네는 프리유어북의 취지에 100% 박수를 보냈다. “해외 책문화의 흐름을 전해듣다가 우연히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크로싱 운동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운동이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처럼 내 주변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어려운 걸음을 떼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운영자에게 감사의 메일을 보내며, 도서관과 프리유어북 운동이 만나는 접점을 구상하고 있다. 도서관이나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원도에서 학교 사서로 일할 그는 사람들이 프리유어북 운동을 통해 책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문턱도 낮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저는 그림도 훌륭하고 내용도 알찬 좋은 어린이책을 많이 알고 있어요. 복지관이나 학교 같은 곳에 연락해서 어린이책을 풀고 싶습니다.”

운영자 김정호씨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에 일일이 답신을 보내며 바쁜 와중에도 행복의 탄성을 지르고 있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사이트를 개선해 등록한 책을 한눈에 둘러보고 빨리 찾을 수 있도록 검색 과정을 간편히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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