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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프리유어북] 책을 자유롭게 하는 한번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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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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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과 함께 하는 ‘프리유어북’ ]

1년전에 책나눔 운동의 바람 불기 시작한 프랑스… 요즘은 지방도시로 급속 파급중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책나눔운동의 현장. 카페 등 일정한 장소를 정해 책을 돌려본다.
프랑스인 베르트랑은 쿠바 여행길에 쿠바 출신 망명작가 아레나스의 책 몇권을 지참했다. 쿠바에선 금지되어 있는 책들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죠. 현지에선 금지된 책들을 한번 읽어보라고요”


베르트랑이 금지된 책들을 국경을 넘어 전하게 된 동기가 바로 ‘북크로싱’(프랑스판은 www.passe-livre.com)이다. 북크로싱에 참여하며 북크로서가 된 베르트랑은 쿠바 여행길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버리는 게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을 찾아 책을 여행하게 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독서문화운동, 북크로싱이 프랑스에 정식으로 착륙한 건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그보다 몇 개월 앞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Leggere per 2’ 서점을 거점으로 성공적으로 전파되던 이 운동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도착한 데는 이 서점을 중심으로 피렌체시와 파리시, 두 문화도시의 후원과 협조에 힘입은 바 크다.

지난해 봄, 이라크 사태를 전후로 전 세계에 일던 ‘반전·평화’의 물결에 가담해 ‘평화를 위한 1만권의 책, 전쟁을 위한 0(zero) 총알’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내걸어 피렌체와 파리간의 북크로싱운동이 준비되었고, 드디어 2003년 3월21일 파리의 ‘국제책박람회’의 한 스탠드에 평화의 깃발과 나란히 진출했다. 그 자리에 이탈리아와 프랑스 작가들이 그들의 저서를 솔선수범으로 헌납했고, 참여자들이 늘어 박람회 동안 총 2천여권의 책들이 여행길에 나서는 성황을 거두었다.

책박람회의 여파로 미디어의 관심을 끈 북크로싱운동은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고, 파리에선 ‘Leggere per 2’ 서점의 파리분점과 그 서점이 자리하는 파리 4구 구청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현재 파리 4구에만 총 8군데의 토템(책을 전하는 곳)을 두고 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성격마냥 잔잔하게 퍼져가고 있는 문화운동이지만, 나날이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지금은 파리의 지방도시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게다가 ‘Leggere per 2’ 서점이 이탈리아어와 불어로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덕분에 이 운동은 국경을 넘어 벨기에·스위스·캐나다 등 다른 불어권 나라들로도 전파되고 있다. 그렇게 도서관, 카페, 병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준비되는 토템 주위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책을 나누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심 가져 대단히 영광”

서점 관계자 카푸아노씨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이트에 등록된 북크로서는 4500여명이고,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책은 총 2300여권을 헤아린다고 한다.

오는 3월19~24에 열리는 파리 국제책박람회에 다시 참가하게 될 파리 북크로싱은 파리 공식출범 1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첫돌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슬로건 ‘책을 전하기 위한 한번의 클릭’과 함께 준비된 포스터를 나에게 전하면서 “드디어 한국에서도 이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어 대단히 영광”이라며 흐뭇해하는 카푸아노씨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한국에서 준비한 돌 선물이에요. 이 기사를 실은 잡지가 나오면 그 잡지도 자유의 이름으로 함께 북크로싱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책을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로 참여하는 북크로싱. 독자들이 책에게 공간의 자유를 부여하는 이 운동을 통해 새로운 독서의 즐거움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나누고 여행하다 결국 내게 도착하는 책을 받아드는 즐거움과 내가 그 책에 다시 부여하게 될 자유. 그 감흥을 느껴보기 위해 나도 기꺼이 파리의 북크로서가 되려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 <한겨레21>은 창간 10돌을 맞아 ‘프리유어북’과 함께 방방곡곡 책나눔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동참을 원하시는 독자들은 프리유어북 홈페이지(www.freeyourbook.com)로 들어와 책을 ‘방생’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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