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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베트남] 뚜이호아, 내 청춘의 ‘신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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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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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

최전선에서 베트콩과 싸웠던 소설가 이윤기씨… 아직도 잊지 않은 ‘월남노래’를 그들과 함께 부르리라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아니, 여기는?”
그는 1월15일치 아침 <한겨레>를 받아들고 가늘게 몸을 떨었다. 뚜이호아….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뚜이호아’였다.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그 작고 아름다운 도시, 그리고 해변. 그곳에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니….


혼바산 피격, 그 아수라장의 기억

<그리스 로마 신화>로 한국 사회에 신화 붐을 일으켰던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가이자 소설가 이윤기(57)씨. 뒤늦게나마 정보를 얻어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 참가 신청을 했다. “내 친구들을 잃었던 땅…. 34년 만에 그곳에 한번 서보고 싶습니다. 그건 마치 아크로폴리스에 처음 섰을 때의 감격처럼 다가올 거라 믿어요.”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씨는 최근에 쓴 단편 <삼각함수>와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통해서 베트남전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보여준 바 있다.(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는 1971년 3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뚜이호아에 있는 백마28연대 외곽경비담당 소속중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그의 참전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1977년 소설 데뷔작인 <하얀 헬리콥터>가 베트남전을 다룬 작품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름을 얻은 베트남 참전 작가들 중에서는 드물게, 그는 베트콩 수색토벌작전의 최전선에 있었다. 탁월한 전투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연대 소속 병사들을 지도하는 교관으로 차출됐을 정도다.

하지만 말을 아꼈다.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게 꺼림칙하다고 했다. 문학청년의 흔적이 담긴 그 시절의 앨범을 보여주면서도 애써 흥분을 누르려는 듯 보였다. 그가 들려준 얘기 한 토막. “혼바산을 기억합니다. 아파트 5층 크기만한 거대한 돌이었지요. 안에 숱한 미로를 감춘 천혜의 베트콩 기지였어요. 어느 날 그 주변 개활지를 지나다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조준사격에 동료들이 나뒹굴면서 아수라장이 됐어요. 미군쪽에 무전을 날려 팬텀기 두대가 지원을 왔습니다. 혼바산에 한바탕 폭격을 쏟아부었지요. 그래도 허사였어요. 그렇게 퍼부어댔는데도, 팬텀기가 돌아가자마자 또 사격을 가하는 거예요. 결국 연막탄을 뿌려 시야를 가린 뒤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뚜이호아의 혼바산 계곡 바위를 바지가 다 헤어질 정도로 구르며 다녔다(왼쪽).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해 러닝셔츠를 찢어 머리에 쓰고 전투를 하곤 했다(오른쪽).

박정희 이름이 박힌 그 훈장…

그는 “전쟁이란 인간이 죽음에 접근할 때 얼마나 맨정신으로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무대”라고 말한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공포 앞에서 그냥 마비되고 만다. 그는 공포 앞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불굴의 킬러’였다. 그 덕분인지,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무공훈장도 받았다.

마라톤대회 참가 신청을 할 때 이 무공훈장은 쓸모가 있었다. 참전군인 할인 혜택을 위한 증명서로 요긴했기 때문이다. 그는 훈장을 복사해 팩스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자에게 “쓸데없는 짓이었다”며 후회한다고 말했다. “거참, 그게 무슨 자랑이나 된다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 그는 뚜이호아를 자주 꿈꾸었다. 호치민에서 차로 20시간이나 걸린다는 주변의 귀띔에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그러던 중 어느 베트남인과의 만남은 그리움을 조금은 상쇄해주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의 조카가 베트남 여성과 한국에서 결혼한다며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거예요. 신부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아는 <죽은 가을>이라는 아주 슬픈 노래를 베트남어로 불러줬어요. 뜻은 다 잊어버렸고, 발음은 기억하거든요.”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한 것일까. 노래를 부른 뒤 그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는 이번 베트남 방문 때 현지에서 꼭 이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한다.

“학생들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하던 70년대는 국가주의가 판친 ‘야만의 시대’였지요. 물론 지금도 월남전에 대한 죄의식이 ‘사상검열’의 대상이 되는 시대 아닙니까?” 그래서 그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며 ‘겁대가리 없이’ 탈영하는 육군 이병의 용기에 희망을 갖는다. 쏟아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읽는다.

‘겁대가리 없는’ 육군 이병에게서 희망을

인터뷰를 끝내며 그는 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마라톤을 못 뛰는 한이 있더라도 그때 그 현장을 꼭 찾아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의 최근작 소설집 <노래의 날개>에 실린 단편 <삼각함수>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그에게 사진으로나마, 내가 근무하던 한국군 전투부대가 있던 ‘호이난’ 해변의 백사장, 그 백사장의 노천극장, ‘호이난’ 비행장, 비행장과 (전투)단 본부 사이에 있던 공수장(空輸場)을 보고 싶노라고 했다.”(여기서 ‘호이난’이란 뚜이호아를 가리킨다) 소설 속에서 한 미국인 학자에게 했던 부탁을, 현실로 돌아와 기자에게 하고 있는 셈이다.

* 월남붕어… 1970년대 초부터 한국의 저수지에 등장하기 시작한 미국 물고기 ‘블루길’을 칭함. 한국의 낚시꾼들은 첫 낚시에서 블루길이 올라오면 잡아서 죽이거나 조황의 불길한 전조로 여겼다.

* 월남치마… 그저 감을 원통꼴로 잇고 위에 단을 접어 고무줄만 넣은 무신경한 치마. 한마디로 아무렇게나 만든 통치마.

* 월남화장실… 한국의 등산객들은 야산에다 배설하고는 월남화장실에 다녀왔다고 말하곤 한다. ‘월남화장실밖에 없다’는 말은 ‘화장실이 없다’는 뜻이다.

* 월남뽕… 딜러는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카드를 한장씩 나눠주고는 자기 앞에도 한장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일제히 카드를 뒤집는다. 중간에 끼는 숫자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 전혀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서 바보들이나 둘러앉아서 할 법한 카드놀이.

* 월남으로 시작되는 이 말들은 모두 월남과는 하등 인연이 없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인들은 월남에 대한 구체적인 어떤 정보도 없이, 막연하게 희화적이고 부정적인 것에는 월남이라는 관형사를 달았다. 월남인에게 이렇게 깊은 상처를 입힐 권리가 한국인에게 과연 있을 것인가.(이윤기의 <삼각함수> 중에서 발췌)

…… ‘월남뽕’의 경우 단순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이 놀이를 하느라 ‘월남이 망했다’는 설도 있음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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