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
이라크전에도 ‘개입’한 해병 출신 시민운동가 김영만씨 “1km라도 제대로 뛰기 위해 금연”
“마음이 아주 가벼워요.”
그렇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설레는 희망 속에 베트남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그동안의 베트남 여행과는 다를 거란 기대다.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에 참여하는 베트남 참전군인 출신 김영만(59)씨. <한겨레21>의 오랜 독자라면 그의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해병으로 참전해 1967년 2월 짜빈동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베트남에서의 일들을 <한겨레21> 321호(2000년 8월9일치)에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이후 2001년 봄과 여름에 짬을 내어 자신이 전투에 참여했던 쿠앙응아이성 지역을 돌아보았다. 봄에는 진주문화방송 라디오 30돌 특집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여름에는 동료 참전군인들과 함께였다. “현지인들이 세운 증오비를 직접 보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둔기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어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밀가루 투척과 인간방패 베트남전에서의 끔찍한 일들은 죄책감이 되어 평생을 따라다녔고, 그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통해 그것을 갚으려 애썼다. 그래서 지금 그에겐 두개의 직함이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대표, 코리아평화연대 상임대표. 앞의 것은 경남 마산을 중심으로 인권·평화 활동과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하는 단체이며, 뒤의 것은 경남지역 46개 인권단체가 이라크전을 계기로 연합해서 만든 조직. 그는 이 두 단체 활동을 통해 지난해 큰 일들을 겪었다.
첫째는 5월 ‘조두남 음악관’ 개관식을 저지하기 위해 행사장에서 밀가루를 투척하다 42일간 감옥생활을 한 일이다. <선구자> 등을 작곡한 조두남은 친일파로 비난받는 음악인으로, 오래 전부터 열린사회희망연대를 중심으로 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이 펼쳐진 바 있다. 검찰의 ‘오버’로 구속까지 됐었지만, 뒤늦게나마 기념관 이름이 ‘마산음악관’으로 바뀌어 보람을 느끼고 있다.
둘째는 6월, 코리아평화연대에서 배상현·이해종씨 등 3명을 바그다드에 인간방패로 파견한 일이다. 10월에도 키르쿠크, 모술, 바스라 등 한국군의 파견이 예상되는 지역에 활동가들을 보내 현지 여론조사 작업을 벌였다. “전쟁이 한창인 지역에 인간방패를 파견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참전의 경험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김영만씨는 마라톤 행사가 열리기 전날인 오는 2월28일 푸옌성 뚜이호아 한국군 주둔지에서 3보1배를 할 예정이다. “이라크에서 다시 피흘릴 수 없다”는 이 3보1배의 정신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모두에 ‘개입’한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
하지만 2월29일 아침 마라톤을 제대로 뛸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평소 건강을 돌보며 살아온 스타일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래도 그는 한 가지 결심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뒤 올해 1월1일부터 매일 한갑 이상 피우던 담배를 끊은 것이다. “최소한 1km는 뛰어야지요. 아무리 못해도 말입니다.” 베트남과 그의 인연은 ‘금연’으로 계속 이어질 듯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그렇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설레는 희망 속에 베트남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그동안의 베트남 여행과는 다를 거란 기대다.

동료 참전군인과 함께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영만(오른쪽)씨.
밀가루 투척과 인간방패 베트남전에서의 끔찍한 일들은 죄책감이 되어 평생을 따라다녔고, 그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통해 그것을 갚으려 애썼다. 그래서 지금 그에겐 두개의 직함이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대표, 코리아평화연대 상임대표. 앞의 것은 경남 마산을 중심으로 인권·평화 활동과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하는 단체이며, 뒤의 것은 경남지역 46개 인권단체가 이라크전을 계기로 연합해서 만든 조직. 그는 이 두 단체 활동을 통해 지난해 큰 일들을 겪었다.

2001년 여름 베트남 호치민 동상 앞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