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베트남] 달리고 또 달려 고엽제를 이기다

493
등록 : 2004-01-15 00:00 수정 :

크게 작게

베트남과 마라톤이 운명적으로 얽힌 ‘참전군인 출신 참가자’ 강동인씨의 극적인 인생드라마

“그 해변을 다시 달리고 싶다.”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푸옌성 뚜이호아의 바닷가를 뜨겁게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뚜이호아에 주둔했던 백마28연대 출신의 참전군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1968년 1월부터 69년 1월까지 백마28연대 30포병연대 B포대 소위로 근무했던 강동인(57)씨는 일찌감치 참가신청을 한 뒤 1월12일 입금까지 마쳤다. 그는 68년 당시 자신의 포병부대와 함께 작전을 했던 보병7중대 김승남 대위를 비롯한 선배장교들 4명도 함께 뛸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동인씨를 만나 그때 그 시절 뚜이호아 이야기를 들었다. 뜻밖에도, 그의 인생역정은 베트남과 마라톤이 운명적으로 얽힌 한편의 드라마였다.

고엽제후유의증으로 인한 중풍을 마라톤으로 극복한 강동인씨. 풀코스를 완주한 뒤 삶의 철학도 바꾸었다.(사진/ 고경태 기자)

베트남 승려와의 기이한 만남

그것은 먼저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68년 6월의 어느날, 보병부대와 함께 ‘롱투이 부락’으로 작전을 나가다 앞서가던 소대가 크게 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흥분한 중대장은 “포를 빨리 때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관측장교였던 그는 105mm 포로 표적을 조준한다. 순간, 가물거리던 흰 깃발. 그는 망원경을 눈에 들이댔다. 누군가 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승려였다. 조준사격을 미루고 위협사격을 하면서 표적에 접근했다. 사찰이었다. 젊은 승려는 뭔가를 호소하는 안타까운 눈빛이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부녀자와 아이 30여명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만약 그냥 포를 날렸다면 모두 몰살당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1982년. 계급은 소위에서 중령으로 올라가 있었다. 대만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주말, 타이페이에서 카오슝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옆에 앉은 승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4년 전의 바로 그 베트남 승려였다. 전쟁이 끝난 뒤 대만으로 건너온 것이다. 타이페이역 근처에서 불교교육원을 운영하며 기공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후 그는 대만에 있을 동안 그 승려에게 큰 감화를 받는다. 기공도 전수받는다. 그 베트남 승려의 한자 이름은 정행(淨行) 스님. 이 인연은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는 87년 전역 뒤 역술가이자 조계종 포교사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1968년 뚜이호아 주둔지에서 작전 출동을 앞두고 포즈를 취한 강동인 소위.
그리고 고엽제후유의증. 그는 늘 너무나 건강했지만, 웬일인지 혈압은 항상 높았다. 기공과 등산, 가벼운 달리기를 해도 혈압은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을 자만했기에, 20년간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 베트남전을 다녀온 동료나 선후배들이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러다 결국 2002년 9월 중풍으로 쓰러진다. 원인은 역시 고혈압이었다. 그 뒤 그는 보훈병원에서 ‘고엽제후유의증에 의한 고혈압’ 판정을 정식으로 받는다.

드디어 42.195km를 완주하다

“걸어야 산다.” 의사는 그에게 하루에 10km 이상 걷고 달리라고 권유했다. 그는 곧바로 지역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고 매달 각종 마라톤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지난해 9월28일엔 ‘김제마라톤대회’에서 42.195km 풀코스를 뛰었다. 4시간17분의 기록, 그것은 중풍을 완전히 몰아낸 한판 승리의 또 다른 드라마였다.

그는 풀코스를 완주한 뒤 삶의 철학을 바꾸었다. “지금까지는 돈을 벌기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봉사하는 삶을 살자.” 그는 한동안 운영하던 역술원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사람들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사주도 봐주고, 상담도 해주면서 떠돌이 인생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이제 내 몸이 살았으니 베풀며 살자.” 자신의 달리는 사진을 앞면에 인쇄한 그의 명함 뒷면엔 이런 구절만이 들어 있다. “움직인다/ 걷는다/ 뛴다/ 平常心/ 無我禪/ 慈悲喜捨/ 本來無一物.” 베트남에서의 인연은 그의 인생을 흔들었고, 베트남에서 얻어온 질병은 다시 한번 그의 몸과 마음을 흔든 셈이다.

1982년 중령 시절 대만에서 다시 만난 베트남 승려에게 기공 훈련을 받고 있다.
“롱비치 해변의 은빛 모래사장이 그리워요. 도깨비7호 작전을 끝내고 나서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리고 그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푸옌성의 지명들. 카오송 반도, 혼바산, 다비야 계곡, 봉로베이…. “험준했던 다비야 계곡에선 청룡 1개 소대가 모조리 당했다지요. 그 정글을 누비며 달리고 또 달렸는데….”

인생의 가장 격렬한 시절을 보냈던 그곳에서 다시 뛸 강동인씨. 그는 더욱 많은 참전군인들이 함께 뛴다면 기쁨이 두배가 될 거라고 덧붙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