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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청원, “공천 신청, 나부터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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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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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 인터뷰]

물갈이 필요하지만 당 주류의 독선과 독주는 안 될 일… 공천심사위 다시 구성해야

서청원 전 대표는 “소속 의원 75명의 서명에 담긴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공천 신청서를 접수하진 않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그는 최병렬 대표쪽에서 거론해온 5·6공 세력 퇴진론과 관련해서도 “5·6공 핵심으로 물갈이 대상 1호인 그(최 대표)가 물갈이를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해당 인사들에게 명예로운 퇴진 방법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해 들어 한나라당 주류-비주류간 정면 대립으로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비주류의 선봉에 선 서 전 대표를 1월3일 서울 여의도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총선 승리 아닌 당권장악용 공천

­최 대표의 공천 작업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고 있다. 지구당위원장 공천 등급을 매긴 것(당무감사 결과)만 해도 객관성과 투명성이 없으며, 일부는 조작됐다. 혁명적·개혁적 공천은 시대적 요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심사위원을 민주적 절차로 선임해야 한다. 이번처럼 지도부가 15명의 심사위원을 일방적으로 선정할 게 아니라, 당 운영위원회(당무회의 격)에 2~3배수 후보를 내놓고 선정했으면 오히려 큰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부가 선정한 공천심사위원 가운데 8명이 외부 인사인데 그들이 당을 어떻게 아느냐. 오히려 외부의 작용에 의해 특정인 물갈이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속 의원 75명이 공천심사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서명한 것이다.

­당무감사 결과, 즉 지구당을 A~E 등급으로 분류한 자료가 조작됐다는 주장의 근거가 있나?

=서울의 박원홍 의원은 평가점수가 98점이라고 미리 귀띔받고도 나중에 D가 됐다. 경기도 남부의 어느 위원장은 ‘당신은 제일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통보받았는데 역시 D가 나왔다. 서울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민주화운동 출신의 386 인사인데 E가 나왔다. 그들이 특정인의 계보원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밖에 나올 수 없다. 사례가 수없이 많다. 반면에 최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B에 포진했다.

­최 대표는 개혁공천을 위한 선의를 주장하고 있다.

=총선 승리가 아닌 전당대회(5월) 당권 장악을 위해 사당화를 꾀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사심을 버려야 한다.

-공천 물갈이를 반대하는 것인가?

=물갈이 자체는 필요하다. 과거 총선 때도 30~40%의 물갈이는 있었다. 문제는 합리적·민주적 방법으로 하지 않고 독선과 독주로 흐르는 것이다.

-3일부터(11일까지) 공천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이런 상태라면 서 전 대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많은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심사 연기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어떻게 신청서를 접수하나.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른 서명파 의원들도 마찬가지인가?

=그런 문제는 의논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접수하라 말라 할 생각도 없다. 각자 개인에 맡길 일이다.

­최 대표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후속 대응책이 있나?

=대표를 지낸 사람으로서 당이 혼란스럽게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는 최 대표 퇴진이나 조기 전당대회 소집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 대표의 사과를 주장했을 따름이다. 사태가 수습되길 바랄 뿐이지 내가 당권을 차지할 욕심은 없기 때문이다.

­사태의 해법을 뭐로 보나?

=운영위원회에서 잘못 구성한 공천심사위 대신에 새 심사위를 다시 구성하면 사태는 수습된다. 당을 깨자는 사람이 어디 있냐.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 소집도 함께 요구하고 있는데 소집되면 무엇을 하려고 하나?

=한나라당이 처한 모든 현안이 논의될 것이다. 거기서 나올 이야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안풍 사건’(안기부 자금 총선유용 사건)과 관련해서도 소송이 들어오고 있다. 대선자금을 많이 받은 것을 두고도 앞으로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낸다면 변제할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중앙당사와 연수원을 매각해 국가에 헌납하고 잘못했다고 고해한 뒤 국민 속에서 겸허히 출발하자는 제안을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해왔다.

노쇠한 선배들한테 상처는 주지 말아야

­그렇다면 공천을 어떤 방식으로 하자는 것인가? 대안은?

=내가 대표가 되었다면 노쇠한 선배들한테 “시대가 그러니 양보해달라. 대신에 좋은 분이 있다면 추천해달라”고 하려 했다. 그 양반들한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공연히 5·6공, 5·6공 하면서 감정을 건드릴 필요가 있나. 명예롭게 은퇴할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연세 든 사람 중에도 능력 있는 사람이 있으니 나이만 갖고 일률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좋은 말로 하면 물러나지 않을 사람도 많을 텐데.

=바로 그런 상황 때문에 공천심사위원회가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있다면 힘을 갖고 교체를 추진할 수 있다.

­최 대표쪽의 이재오 전 사무총장 등이 5·6공 세력 퇴진론을 주장한 바 있다.

=사실 5·6공 핵심이 그 사람(최 대표)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최 대표와 나 가운데) 누가 개혁적이냐. 나는 대학 때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다 형무소에 다닌 사람이다. 그렇게 민주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당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갈 역동적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양반은 못한다. 서너 사람을 데리고 자기를 커버하려고 할 뿐이다. 일부 사람들이 최 대표한테는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5·6공 물갈이를 주장하는데, 물갈이 대상 1호인 그 사람을 추종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물갈이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 전 대표가 저항그룹의 대표 격이라지만 강하게 구심점 노릇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나는 세가 없다. 누구와 조직적으로 추진하지도 않는다. 각자 자발적으로 명예와 정치적 생명이 걸려서 하는 문제다.

­이회창 전 총재와 의논해본 적은?

=정계를 은퇴한 분한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럴 기회도 없었다.

­한나라당의 정책적 정체성은?

=이라크 파병이나 북핵 문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문제에서 우리 당의 확실한 입장을 표시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다. 유권자 흐름의 변화와 현 정권의 행태 때문에 대표가 신중을 기한 탓이다. 그러나 확실히 해줘야 할 부분에 대해 실망하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본다.

­어떤 방향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나?

=시대가 바뀌었으니 30대, 40대를 대폭 영입해 그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해야 한다. 우리는 ‘우’에 너무 치우쳐 있으니 ‘우’를 가운데로 가져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사회가 우와 좌로 갈렸는데 중간세력이 참 많다. 중간세력을 어느 당이 끌어들이냐가 중요하다. 일본 자민당도 급진세력을 포용하면서 그들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듯이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선 당시 지도부로서 불법 대선자금 문제에 책임이 크니 자숙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조용히 있으려고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당의 문제에 어려움이 생긴 만큼 발언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비주류가 탈당하거나 주류가 밀려나거나 해서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언론이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당의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하면 마치 분당이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시각으로 언론이 앞서가서 곤혹스럽다. 당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것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무슨 다른 일을 하겠냐. 이런 충정을 당도 알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최 대표 퇴진이나 전당대회를 해서 지도부를 새로 뽑자고 해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분권형 체제를 만들어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등을 의원총회에서 뽑았는데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하는 게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분권형으로 운영해야 한다.

안 받아들여지면 사라진다?

­제기한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은 정치 생명을 건다는 뜻인가 정계 은퇴까지 고려하며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인가?

=(손을 내저으며) 괜히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사라진다는 말도 그렇고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러나 현 상황에서 공천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을 뜻은 분명하다. 하긴 내가 국회의원을 하지 않게 되면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 아니냐.

­지난 대선 당시 이철 전 의원을 만나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면 내각 구성권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의한 바 있다고 최근 이 전 의원이 밝혔다.

=이철 의원 이야기에 내가 반박한 것도 없고…. 지나간 일, 다 잊어버린 일을 갖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방안을 이회창 후보와도 의논했나?

=그 양반을 당선시키려고 나 혼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했다.

­의논하지 않았나?

=(손을 내저으며) 의논하지 않았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이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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