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위기감에 민주당-열린우리당 통합론 부상… 양당 실세들 거부감·통합 효과 미지수
설훈 의원(민주당)은 12월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마침 같은 날 오전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17표밖에 얻지 못해 36표를 얻은 유용태 의원에게 고배를 마신 직후였다.
설 의원은 기자에게 “오늘 경선에 떨어진 게 통합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원내대표가 될 경우 당론에 구속되지만, 떨어진 만큼 제약 없이 소신껏 뛰어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양당 의원 50명가량 규합해 시동 건다”
굳이 설 의원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민주당열린우리당 통합론의 논거는 간명하다. 두 당의 분당 이후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파문으로 타격을 입고서도 여전히 20%대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는 반면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기 15~18%로 한나라당의 그것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가 분열한 정치 지형으로는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중부권 선거에서 두 당 후보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게 통합론의 1차적 이유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도 “판세가 어렵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최근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한나라당 원외 지구당위원장과 자신이 각각 40대 40, 그밖에 민주당의 경쟁자가 20 정도의 비율로 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진 의원은 주요 당직과 정부직을 섭렵했으며 의정활동 성적도 호평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서울지역 후보 중 최강타자군에 들어간다. 그런데도 사정이 이렇다고 했다. 두 당이 정책과 노선이 다를 게 없는 만큼 갈라설 이유가 없다는 점은 통합론의 명분이 되고 있다. ‘주적’인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어부지리로 획득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 의원은 통합의 로드맵을 묻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쳐 의원 50명 정도만 규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정도의 세를 토대로 양당 지도부에 압력을 가해 두 당이 50대 50 지분으로 당 대 당 통합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설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개혁국민정당,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 5명을 비롯해 그동안 세 불리기를 했지만, 그 사람들도 모두 함께하면 된다”며 “분당이 없었다면 어차피 우리가 영입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통합 일정과 관련해 “내년 1월 중순까지는 통합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늦어도 3월 초순까지 통합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창당 일정을 역산하면 그때까지는 정치적 결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설 의원은 지금까지 민주당 안에서 통합론의 기수로 꼽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 홀로’ 외쳤을 뿐 이렇다 할 조직화 시도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설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도 끝났으니 즉각 행동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행동이라면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로 통합운동 기구를 만들어 세몰이를 본격화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화가 통할 사람들로 민주당에서 고진부·김성순·송훈석·이낙연·이정일·이훈평·이희규·조성준·조한천·김경재·박종우 의원을, 열린우리당에서 정대철·김근태·김덕규·김명섭·김덕배·김성호 의원을 거론했다. 대개 강원도와 수도권 의원이 주축을 이룬다. 양당 실세, “때가 아니다”… “논의도 말라” 열린우리당에선 정대철 의원이 통합파의 ‘외로운 태두’로 꼽히고 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과반수를 획득하는 일은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며 “합당이든 연합공천이든, 아니면 제3의 방법이든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통합의 현실적 이유와 명분은 다를 게 없다.
다만 정 의원은 설 의원과 달리 공개적으로 깃발을 들고 나서는 것은 망설이고 있다. 한 측근은 “1월 중순까지 전당대회를 통해 열린우리당이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통합 논의가 나올 것”이라며 “그때 가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설 의원의 공세적 태도와 달리 정 의원이 상대적으로 몸을 낮추는 이유는 열린우리당의 좀더 복잡한 사정 때문이다. 당내 다른 인사들은 정 의원이 통합 필요성을 거론할 때마다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신기남 의원은 “그러려면 왜 신당을 창당했느냐”고 쥐어박았으며, 경남 남해·하동 출마를 준비 중인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역주의 수구정당으로 돌아갈 거냐”고 공격했다.
열린우리당에서 통합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민주당 탈당과 분당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데 썩 성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통합 논의는 잘못을 자인하고 기어들어가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측면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당과의 지지율 경쟁에서 대체로 뒤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을 거론하는 것이 약세를 노출하는 결과가 된다는 전략적 고려도 작용하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핵심 전략통들은 통합론의 비현실성도 지적한다.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 선거와 달리 총선은 전국 지역구에서 출마 희망자들의 이해관계가 부닥치기 때문에 통합 내지 단일화는 훨씬 어렵다”며 “섣부르게 통합 논의에 들어갔다가 대혼란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선거구 단위의 연합공천 문제 역시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자도 차기를 겨냥해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기필코 출마하려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도 복잡하다. 통합론자인 설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큰 표 차이로 떨어진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민주당의 주축을 형성한 호남 현역 의원들의 다수, 구체적으로는 박상천정균환 의원 중심의 정통모임쪽이 통합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한화갑 의원은 통합에 대한 거부감은 적되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통모임을 주축으로 한 호남 중진들 사이에선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논의 이면에 여세를 몰아 자신들을 물갈이해버리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의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 통합보다는 영남권 공략에 무게
두 당 사정 외에 판짜기의 ‘큰손’일 수밖에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도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노 대통령은 최근 유인태 정무수석에게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안이 국회 정치개혁특위 논의에 반영되도록 뛰어보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정 안 되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도 채택되길 노 대통령은 강하게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는 호남을 근거지로 수도권과 충청·강원권에서 선전을 기대하는 민주당의 전통적 전략보다는, 어떻게든 영남권에서 교두보를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두 당 지도부는 이와 같이 통합이라는 정치적 절충보다는 어떻게든 힘에 의해 상대방을 찌그러뜨리는 완승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자당의 지지율 끌어올리기가 지상 과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런 상태에선 통합론이 힘을 얻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1~2월 들어 사정이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두 당의 지지율 경쟁이 어느 한쪽으로 결판나지 않고 비슷비슷한 상태가 유지된다면 공멸에 대한 공포가 두 당에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호남 기반을, 열린우리당은 유일 여당이라는 나름의 ‘브랜드’를 고루 나눠갖고 있다는 측면도 흥미롭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통합파 의원들은 총선 판세가 이대로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설훈 의원(사진 맨 오른쪽)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본격적으로 통합운동에 나서기로 했다.(연합)
굳이 설 의원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민주당열린우리당 통합론의 논거는 간명하다. 두 당의 분당 이후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파문으로 타격을 입고서도 여전히 20%대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는 반면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기 15~18%로 한나라당의 그것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가 분열한 정치 지형으로는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중부권 선거에서 두 당 후보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게 통합론의 1차적 이유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도 “판세가 어렵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최근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한나라당 원외 지구당위원장과 자신이 각각 40대 40, 그밖에 민주당의 경쟁자가 20 정도의 비율로 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진 의원은 주요 당직과 정부직을 섭렵했으며 의정활동 성적도 호평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서울지역 후보 중 최강타자군에 들어간다. 그런데도 사정이 이렇다고 했다. 두 당이 정책과 노선이 다를 게 없는 만큼 갈라설 이유가 없다는 점은 통합론의 명분이 되고 있다. ‘주적’인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어부지리로 획득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 의원은 통합의 로드맵을 묻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쳐 의원 50명 정도만 규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정도의 세를 토대로 양당 지도부에 압력을 가해 두 당이 50대 50 지분으로 당 대 당 통합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설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개혁국민정당,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 5명을 비롯해 그동안 세 불리기를 했지만, 그 사람들도 모두 함께하면 된다”며 “분당이 없었다면 어차피 우리가 영입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통합 일정과 관련해 “내년 1월 중순까지는 통합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늦어도 3월 초순까지 통합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창당 일정을 역산하면 그때까지는 정치적 결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설 의원은 지금까지 민주당 안에서 통합론의 기수로 꼽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 홀로’ 외쳤을 뿐 이렇다 할 조직화 시도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설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도 끝났으니 즉각 행동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행동이라면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로 통합운동 기구를 만들어 세몰이를 본격화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화가 통할 사람들로 민주당에서 고진부·김성순·송훈석·이낙연·이정일·이훈평·이희규·조성준·조한천·김경재·박종우 의원을, 열린우리당에서 정대철·김근태·김덕규·김명섭·김덕배·김성호 의원을 거론했다. 대개 강원도와 수도권 의원이 주축을 이룬다. 양당 실세, “때가 아니다”… “논의도 말라” 열린우리당에선 정대철 의원이 통합파의 ‘외로운 태두’로 꼽히고 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과반수를 획득하는 일은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며 “합당이든 연합공천이든, 아니면 제3의 방법이든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통합의 현실적 이유와 명분은 다를 게 없다.

사진/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과반수를 획득하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이용호 기자)

사진/ 청와대는 양당의 통합보다는 지역구도 극복에 매달리고 있다. 유인태 정무수석(오른쪽)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