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투쟁에 싸늘한 여론… 지지자 결집 · 지도력 확보 등 당내 기반 다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투쟁은 예고된 것이었다. 최 대표는 지난 6월 치러진 대표 경선 당시 유세에서 “야당의 권력은 투쟁에서 나온다”며 “단식투쟁을 벌여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출한 야당 지도자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임기 중에 단식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 거부에서 그 계기점을 찾은 것이다.
민심 계기판 고장나 ‘단식 투정’할까
일주일 남짓한 최 대표의 단식투쟁에 여론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 대표의 단식 나흘째인 11월29일 <한국방송>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특검 거부 철회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인터넷 한겨레>가 11월26일 조사한 ‘라이브 폴’에서도 최 대표의 단식과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전체 응답자 6907명 가운데 75.5%인 5215명(12월1일 현재)이 “국정을 내팽개친 다수당의 횡포”라고 응답했다. 국회 다수당이 법에 규정한 대로 재의결을 추진하는 대신, 국회를 공전시키고 단식 ‘투정’을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런 여론의 향배를 몰랐을까. 사실 최 대표만큼 정치적 굴곡점에서 민심의 흐름을 잘 읽어온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낙점에 의해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면서도 노태우 정권 때는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행을 주도했고, 문민정부 출범 전에는 민정계 출신임에도 민주계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전략팀에 결합했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18%의 득표율에 그쳤지만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홀로 ‘필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4선의 중진 의원으로 당내에 그럴듯한 ‘계보’가 없으면서도 20여년을 꿋꿋이 버텨온 밑천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닦아온 기민한 정치감각이라는 데 토를 다는 정치권 인사는 별로 없다. 요즘은 정치·정당 개혁의 전도사가 됐다. 그런 최 대표의 ‘민심 계기판’이 고장난 것일까. 아니면 2003년 11월이 승부수를 던질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한 것일까.
최 대표 단식의 정치적 득실을 논하기엔 이를지 모르지만, 일단 당내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자의 결집과 당내 지도력 확보 차원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선자금 정국 이후 최 대표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5·6공 시절 행정조직의 수장 노릇만 했을 뿐 정당정치는 아예 모른다거나 최틀러가 이름 값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강한 추진력이 강점으로 꼽혔는데 정작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한 핵심 당직자의 말이다.
비주류 목소리 낮춰… 힘쏠림 현상 뚜렷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이회창 전 총재가 7년 동안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최 대표가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최 대표의 단식 초기에 강경투쟁 방식을 비판했던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소장파들이나 서청원·김덕룡·강재섭·박근혜 의원 등 비주류 중진들의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최 대표에게 ‘힘쏠림’ 현상이 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짧게 보면 이번에 결집된 힘이, 특검법 재의결시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이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당내 이탈표를 막는 데 주효하게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최 대표를 중심으로 한껏 끌어올려진 에너지가 어디를 향할 것인가이다. 민주당·자민련과의 공조로 12월 초 특검 재의결에 성공할 경우, 국회에서 2번이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끌어낸 힘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 정도의 일치단결된 힘이라면, 상황에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의결할 수도 있고 국민투표라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헌법 개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난 6월 대표 경선 과정에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젊고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길을 가도록 하는 게 내 목표”라고 주장하면서 ‘인큐베이터론’을 펼쳤지만, 총선 이후까지 아우르는 원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근 그는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그 구상의 끝자락을 내비쳤다. 2007년이면 고령이라 힘들지 몰라도 내년이라면 혹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최 대표는 문제의 발언 이후 즉각 비보도를 요청해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직후인 점을 감안해보면 그의 구상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최 대표의 측근들도 ‘천기누설’에 함구하고 있지만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노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의 특검 결과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을 하기 힘들 정도의 비리가 드러날 경우 한나라당은 재신임이 아니라 바로 탄핵 절차에 착수할 것이다. 혹은 이라크 파병 문제를 계기로 전통적인 한-미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 경우, 노 대통령의 책임을 그 이유로 삼을 수도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과 1대 1로 맞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최 대표의 단식은, 이런 구도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에 따른 수순일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 탄핵 이후까지 생각했나
한나라당의 당내 문제로 국한해봐도 ‘힘쏠림’ 현상은 최 대표의 행보를 넓혀주는 쪽으로 작용할 것 같다. ‘내부 기회주의와 기득권 타파’가 그의 대표 취임사의 핵심이었다. 당적을 옮겨가며 정치적 생존에만 골몰한 기회주의자, 부정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끌어쓴 부패세력,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탄압에 앞장섰던 반민주 세력을 물갈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도저도 안 되어 내년 총선에서 현 집권세력과 맞붙을 경우엔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한데, 권위와 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최 대표의 단식농성장에 붙어 있는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는 구호가, 최 대표의 단식에 비판적인 네티즌들 사이에서 변질돼 전파되고 있다. 혹시 ‘라’자를 잘못 넣어 “나를 구하겠습니다”가 아니면 ‘한’자를 빠뜨려 “한나라를 구하겠습니다”의 잘못된 표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진/ 최병렬 대표는 특검 수용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30일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오른쪽)과 유인태 정무수석비서관이 단식중인 최대표를 방문했다.(국민일보)
최 대표는 이런 여론의 향배를 몰랐을까. 사실 최 대표만큼 정치적 굴곡점에서 민심의 흐름을 잘 읽어온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낙점에 의해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면서도 노태우 정권 때는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행을 주도했고, 문민정부 출범 전에는 민정계 출신임에도 민주계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전략팀에 결합했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18%의 득표율에 그쳤지만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홀로 ‘필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4선의 중진 의원으로 당내에 그럴듯한 ‘계보’가 없으면서도 20여년을 꿋꿋이 버텨온 밑천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닦아온 기민한 정치감각이라는 데 토를 다는 정치권 인사는 별로 없다. 요즘은 정치·정당 개혁의 전도사가 됐다. 그런 최 대표의 ‘민심 계기판’이 고장난 것일까. 아니면 2003년 11월이 승부수를 던질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한 것일까.

사진/ 최병렬 대표는 단식투쟁으로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지난 11월27일 한나라당 서울시지부 특검관철 결의대회가 중앙당 강당에서 열렸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