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동지’ 강금원씨가 밝히는 구설수의 진상… 인사 개입설은 언론 작문 · 정치적 대리만족일 뿐
강금원(53) 창신섬유 회장이 최고의 ‘시선 집중’ 인물로 떠올랐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연신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내다가, 야당으로부터 “사설 부통령이냐”는 공격까지 받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던 끝에 그는 11월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더 이상 언론을 상대로 발언하지 않겠다”며 ‘침잠’을 선언했다.
논란의 핵심은 그가 최근 한 신문사 인터뷰에서 “연말 청와대 개편 때 문재인 민정수석이 갈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인사 정보를 미리 탐지하고 있다는 관측을 낳을 대목이었다.
그는 정말 참여정부의 부통령 노릇 했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두고 “강 회장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의 핵심”이라고 즉각 공격했다. 김성순 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당 말기의 부통령 같다”고 했으며,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 정권에 소통령이 탄생했다”고 비난했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최도술 얼마 줬다, 선봉술 얼마 줬다, 이기명 얼마 줬다, 노 캠프에 얼마 줬다…. 대통령 인사권도 자기가 마음대로 다하는 것처럼 얘기한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11월19일 국회에 출석한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허태열 의원이 “대통령께 이런 사람 만나지 말라고 건의하라”고 하자, “동감 가는 데가 많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리려고 한다”고 답변하기에 이르렀다. 언론 보도가 정치 공방을 촉발하고, 이에 강 회장이 해명을 한다며 다른 인터뷰를 한 게 또 다른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두고 “도대체 웬 평지풍파냐”며 고개를 갸웃거려온 청와대 사람들의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자는 11월20일 부산의 자택으로 강 회장을 찾았다. 무엇보다 온갖 언론사의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대하다가 구설수를 ‘자초’한 이유를 필두로 해서, 나아가 ‘이 남자가 사는 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믿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며 3시간여 동안 최근의 심경과 노 대통령과의 인연 따위를 털어놓았다. 그는 우선 연말 청와대·내각 개편 때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갈릴 것이라는 대목은 “문 수석의 ㅁ자도 꺼내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언론의 작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신문에 그런 취지의 내 인터뷰 기사가 실린 뒤 해당 기자에게 전화해 따졌더니 ‘나도 쓰지 않은 대목이 들어갔다’고 해명하더라”며 윗선의 ‘가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누구누구를 내 회사 과장으로 시켜라 말라 하면 나도 기분 나쁠 터인데, 내가 왜 대통령의 인사에 참견하겠느냐”는 말도 했다. 사실 여러 정황상 그가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임은 분명하겠으나, 소통령 또는 사설 부통령이라 할 정도로 국정 또는 인사권 행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여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잠깐 옆길로 새보자. 할 말은 하고 살겠다는 그의 말투는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노 대통령도 특유의 다변과 솔직한 화법으로 숱하게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9월29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감사가 아닌 코미디”라며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맞받아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도 그는 기자에게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사업상 책잡힐 게 없다면 국회의원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머리를 숙일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거침없는 국회 답변으로 화제가 된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도 비슷하다.
겉보기 느낌은 이 정도로 해두고, 그가 왜 풍파의 주역이 되었는지라는 애초의 궁금증으로 되돌아가보자. 그동안 행보를 보면 ‘조용히 뒷돈이나 대는’ 전통적인 정치인 후원자의 그것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의 거두절미식 왜곡보도로 파문이 증폭되기도 했겠지만, 강 회장의 캐릭터도 흥미롭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기자는 “나를 돈 몇푼이나 내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 “나는 정권 탄생의 주주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등의 말에 밴 그의 ‘자부심’(?)에 주목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강 회장은 경제적 후원자를 넘어 ‘정치적 동료’였다. 예컨대 그는 노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내 반노 그룹이 후보 교체 운동을 벌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활동에 착수했다. 인연이 닿는 대로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부터 찾아다니면서 “눈앞의 유·불리보다는 원칙을 갖고 당원들이 뽑은 후보를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는 것이다. 박광태 광주시장도 이 무렵에 만나 통음하면서 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행을 바라보는 기업인의 시각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이 장부상으로만 존재했던 300억원의 ‘유령자금’ 때문이라는 말도 노 대통령한테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중진 정치인들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한다. ‘유령자금 300억원’ 문제도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물은 결과 그는 “관행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총선 따위가 있을 때 돈을 먼저 당겨쓰고 나중에 장부상으로 정리한다는 것이었는데, 평생 기업을 해온 그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 무렵에는 무주리조트에서 노무현 예비후보의 전국 경선조직원 수련대회가 열렸다. 강 회장은 그 자리에도 참석했다.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할 계제는 아니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위한 행사에 ‘피가 끓어서’ 안 가볼 수 없었다.
그의 활동이 ‘위력적이었다’고 볼 근거는 찾기 어렵다. 본인은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기업인일 뿐 이렇다 할 사회적 직책이 없는 그가 활약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까라고 의심하는 게 좀더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활동의 성과 이전에 “그저 좋아서” “그리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그는 노 대통령을 돕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어쩌면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사업을 해서 돈은 꽤 벌었으며, 그렇다고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이나 처지는 되지 않는 가운데 노 대통령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꿈을 대신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과거의 노 대통령이 어디 대통령이 될 것 같기나 한 사람이었느냐. 그래도 그를 돕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치인에게 뒷돈을 대고, 정치인은 그 대가로 사업의 편의를 봐주는 정치인-후원자 관계의 음습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꿈을 대신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한 다리 끼어 ‘참여하는 재미’를 나름의 대가로 챙겨온 것 같다. 또한 정권의 탄생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정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는 거침없이 여러 정국 이슈들에 대해 발언해온 것 같다. 물론 그 밖의 범죄성 비리가 있는지 여부는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
‘참여’의 재미 느껴… ‘노 의원’과 의기투합
강 회장의 성장 이력과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과정도 흥미롭다. 그는 전북 부안의 고향집이 일찌감치 망한 뒤 서울로 상경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굶기를 밥먹듯 했다고 한다. 학생 시절에는 미술과 체육 시간이 가장 싫었는데, 그 이유는 도화지·크레파스·체육복 따위가 없어 선생님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일찌감치 경제와 사업에 눈을 떴다”고 했다. 다시 전주로 이사해 전주공고를 다닐 무렵에는 교내 행사 사진을 찍어 현상해 파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며 그때부터 가족을 먹여살렸다고 한다.
공고 졸업 뒤 직장과 야간대학 생활을 하던 그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호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인맥이 없으니 돈을 빌릴 곳도, 납품할 곳도 없이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호남 사람이 영남에 와서 사업을 하려면 책잡히지 않도록 바르게 행동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주력 사업체인 창신섬유는 특수염색 업체로 인도네시아와 과테말라 등에 종업원 1만여명 규모의 해외공장을 두고 있으며, 그가 2001년에 인수한 충주 시그너스 골프장만 해도 1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는 1988년 무렵 노 대통령의 부산 광안리 집을 그가 사러 갔다가 처음 만났다. 몇해 동안 어울리면서 “부산 출신이지만 YS의 3당합당을 거부했다. 그러고 나서 정치를 하려다보니 김대중 총재의 제1야당에 몸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 총재가 원칙과 소신을 분명히 가진 사람이더라”는 노무현 국회의원의 말에 공감해 가까워졌다고 강 회장은 밝혔다.
강 회장은 이어 “지역갈등과 계층간 차별을 없애는 게 정치의 목표라는 노 의원의 말에 전적으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학벌이 약한데다 호남 출신이 영남으로 옮겨 자수성가하기까지 자신의 처절한 인생 체험과, 부산상고 출신으로 영남 지역주의와 맞서 투쟁하는 노 의원의 정치철학이 들어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은 “노 대통령과 나는 뜻이 맞더라. 뜻이 맞으면 동지 아니냐”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몇달 전 민주당을 탈당하기에 서 강 회장이 청와대로 들어가 “어떻게든 당을 고쳐 써야 한다”며 탈당을 만류한 것도 이런 정서 탓으로 읽혔다.
고개 숙인 후원자 “언론 접촉 끊겠다”
강 회장은 기자에게 “최근 소동의 대부분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대통령의 퇴임 뒤를 책임지겠다”는 대목은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빈손으로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겠다”고 하자 자신이 “좋은 생각이다. 그런다고 나중에 생계가 걱정되겠느냐”는 차원에서 덕담 반 농담 반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다른 뜻으로 곡해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연일 계속돼온 언론 인터뷰 ‘등판’을 두고, “처음에 한 신문이 왜곡하길래 그것을 해명하려고 다른 신문기자의 전화에 응했고, 그게 또 왜곡돼 또다시 해명하려고 또 다른 전화에 응하다보니…”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순수 기업인으로서 언론이 우리 회사의 신상품 소개 기사 따위를 있는 그대로 잘 써주길래 언론은 다 그런 줄 알았다”고도 말했다.
어쨌든 강 회장은 11월20일 기자와의 자택 인터뷰에서 “내 뜻은 그게 아니었지만 내 행동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면 도리가 없는 것”이라며 침울한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의 측근으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사업도 당분간 젖혀두고 어디 외국에나 나가 있고 싶다”고도 말했다. 기자와 술잔을 기울이던 시간에도 서울의 여러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연신 전화가 왔지만 그는 “죄송합니다. 통화할 형편이 안 되네요”라며 취재 요청을 피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기업인으로는 프로페셔널이었지만, 정치와 언론 상대 분야에선 역시 아마추어였다. 대통령의 ‘옛 후원자’에 쏠리는 사회적 시선의 무게도 그는 뒤늦게 절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금원 부통령 소동’이 이로써 막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두고 “강 회장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의 핵심”이라고 즉각 공격했다. 김성순 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당 말기의 부통령 같다”고 했으며,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 정권에 소통령이 탄생했다”고 비난했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최도술 얼마 줬다, 선봉술 얼마 줬다, 이기명 얼마 줬다, 노 캠프에 얼마 줬다…. 대통령 인사권도 자기가 마음대로 다하는 것처럼 얘기한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11월19일 국회에 출석한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허태열 의원이 “대통령께 이런 사람 만나지 말라고 건의하라”고 하자, “동감 가는 데가 많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리려고 한다”고 답변하기에 이르렀다. 언론 보도가 정치 공방을 촉발하고, 이에 강 회장이 해명을 한다며 다른 인터뷰를 한 게 또 다른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두고 “도대체 웬 평지풍파냐”며 고개를 갸웃거려온 청와대 사람들의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자는 11월20일 부산의 자택으로 강 회장을 찾았다. 무엇보다 온갖 언론사의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대하다가 구설수를 ‘자초’한 이유를 필두로 해서, 나아가 ‘이 남자가 사는 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믿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며 3시간여 동안 최근의 심경과 노 대통령과의 인연 따위를 털어놓았다. 그는 우선 연말 청와대·내각 개편 때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갈릴 것이라는 대목은 “문 수석의 ㅁ자도 꺼내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언론의 작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신문에 그런 취지의 내 인터뷰 기사가 실린 뒤 해당 기자에게 전화해 따졌더니 ‘나도 쓰지 않은 대목이 들어갔다’고 해명하더라”며 윗선의 ‘가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누구누구를 내 회사 과장으로 시켜라 말라 하면 나도 기분 나쁠 터인데, 내가 왜 대통령의 인사에 참견하겠느냐”는 말도 했다. 사실 여러 정황상 그가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임은 분명하겠으나, 소통령 또는 사설 부통령이라 할 정도로 국정 또는 인사권 행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여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권의 주주 자임, 나름의 소신 피력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김 소장’으로 불린 차남 현철씨가 정보라인을 독점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는 실력자답게 철저하게 잠행 행보를 보였다. 진짜 막후 실력자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강금원 부통령 소동’은 말 그대로 이 시대의 또 다른 희극 같다.
그러나 강씨가 그동안 쏟아내온 그 밖의 발언들 “대통령 측근들의 군기반장 역할을 해왔다” “나도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 “정권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 내 역할을” 등은 나름의 소신에 뿌리박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기자들의 쏟아지는 전화에 그때그때 응대했다고 강 회장은 설명했다.
사진/ “정권의 주주로 할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부풀려지거나 잘못 알려졌다며 더 이상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 강금원 회장은 1988년 무렵부터 ‘노무현의 후원자’로 지냈다. 강 회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참여의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사진/ 강 회장은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연합)

사진/ “기업인으로서 정치인에게 꿀릴 게 없다.” 강금원 회장은 지난 9월2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