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특위 구성안 표결 ‘비충청권 반란’… 대통령 수렁에 빠뜨린 한나라당도 궁지에 몰려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인 신행정수도 건설이 초반부터 암초를 만났다. 11월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위원회 구성안’이 부결된 것이다. 179명의 출석 의원 가운데 과반수에 미달하는 84명만이 찬성해 부결됐다. 반대는 70명, 기권은 25명이었다. 이날은 노 대통령이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3대 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방분권특별법) 등의 통과를 바라는 대국회 협조서한을 보낸 날이었다.
‘신행정수도건설 특위안’이 부결된 직후, 본회의장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김학원(자민련)·이완구(한나라당)·박병석(열린우리당) 의원 등 특위구성안 통과에 적극적이었던 충청권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해 고함을 쳤다. 특히 신경식 의원 등 한나라당 충청권 의원 10여명은 당 지도부를 비난하면서 신행정수도건설 법안 부결시 탈당과 함께 의원직 사퇴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여야 4당 총무 합의에도 집단 거부
표결에 참여한 대부분의 의원들도 자신의 선택 결과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특위 구성안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여야 4당 총무의 합의에 따라 제안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들의 합의는 곧 통과로 이어져온 것이 관례여서, 이날 부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본회의 10여분 전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위원장 정균환 민주당 의원)가 특위 구성안을 여야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왜 특위 구성안이 부결됐을까. 우선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 대부분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비충청권 의원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양 당 지도부의 장악력이 떨어진 가운데 벌어진 ‘의원들이 집단 반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경우 수도권과 영남 의원 상당수가 특위 구성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의 권위에 반기를 든 셈이다. 민주당에서도 수도권과 호남·강원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기권해 찬성은 겨우 9명에 불과했다. 의원들의 반대·기권 표에는 ‘행정수도 건설 아예 말도 꺼내지 마라’는 의원들의 의중이 실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민주당의 김재두 부대변인은 “신행정수도 건설이 내년 총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한 의원들이 이심전심으로 반대와 기권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수도권의 경우 최소 몇표에서 3천표 이내에서 판가름 나는데 수도 이전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동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총무들이 어떻게 합의했든 간에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마당에 ‘내 살 길부터 찾아야겠다’는 의원들의 생존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특위 구성안 표결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3대 특별법’을 앞두고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대결 구도를 암시하는 전초전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 틀로는 한나라당의 영남 의원이나 민주당의 호남·강원 의원들의 반대 표를 해석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행정수도 건설을 내년 총선에서 충청권 공략을 위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총선용 카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 “총선용 카드 저지”
심규철 한나라당 의원의 최근 건교위에서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심 의원은 “이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 총선에서 충청권 장악을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속셈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표결에 참여한 한나라당·민주당 의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대·기권에 표를 던진 배경에, 특위 구성안 찬성은 곧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돕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노 대통령이 탈당한 마당에 굳이 ‘지난 대선 공약’에 구속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들은 지난해 대선 당시 반노 진영에 섰거나 민주당 분당과정에서 ‘정통모임’에 속했던 의원들이다.
박병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투표결과를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을 우선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에만 전념하고 있다. 국회 예결위가 며칠 동안 파행된 것도, 11월25일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연계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 아닌가. 이번 특위 구성안 부결도 이런 당리당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다른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도 비슷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 박 의원은 “민주당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각을 세우고 싶지는 않다”며 “민주당 의원들의 투표결과도 의외였지만 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특위 구성안 부결을 지역이기주의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부류도 있었다. 한나라당의 신동철 부대변인은 “대구·경북의 지역 정서에는 해방 이후 부산과 인천에 밀리고 이번에는 다시 대전에 밀리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며 “이 지역 국회의원들 처지에서는 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경우 입지가 곤란해지는 만큼 아예 초반부터 차단하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부대변인은 또 “신행정수도 건설보다는 천도에 가까운데 핵심인 입지 선정이 빠져 있어 굳이 국회 차원에서 논의를 서두를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 땅에 유치하지 못할 바에야 다른 곳에 가는 것은 더욱 싫다는 지역이기주의가 기저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충청 민심에 떨고 있다
의원들의 자발적인 ‘집단 반란’이든 당리당략에 따른 투표 결과이든, 특위 구성안이 부결되자 정작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쪽은 한나라당이다. 민주당의 반대·기권표가 적지 않았고 열린우리당의 찬성 투표가 저조하지 않았느냐고 화살을 돌리려 해도, 과반 의석을 보유한 한나라당의 책임이 가벼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최병렬 대표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따라 같은 특위 구성안을 다시 논의할 수 없는 만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등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3대 특별법’을 함께 다루는 특위를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11월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위 부결 당시 반대 토론의 표면적인 이유가 “해당 상임위인 건교위에서 심의해야 한다”(김광원 한나라당 의원)였던 만큼,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지방분권특별법의 소관상임위인 산업자원위와 행정자치위 소속 의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건교위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충청 민심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홍사덕 총무의 발언도, 이번 표결에서 전체 건교위원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이 반대한 점에 비춰보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배를 띄워보지도 못할 위기에 처한 노 대통령도 곤궁하지만, 그 덤터기를 뒤집어쓸지도 모를 한나라당 역시 그리 속 편한 처지는 아닌 셈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특위 구성안 부결로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지난 11월6일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 국정과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표결에 참여한 대부분의 의원들도 자신의 선택 결과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특위 구성안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여야 4당 총무의 합의에 따라 제안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들의 합의는 곧 통과로 이어져온 것이 관례여서, 이날 부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본회의 10여분 전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위원장 정균환 민주당 의원)가 특위 구성안을 여야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왜 특위 구성안이 부결됐을까. 우선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 대부분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비충청권 의원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양 당 지도부의 장악력이 떨어진 가운데 벌어진 ‘의원들이 집단 반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경우 수도권과 영남 의원 상당수가 특위 구성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의 권위에 반기를 든 셈이다. 민주당에서도 수도권과 호남·강원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기권해 찬성은 겨우 9명에 불과했다. 의원들의 반대·기권 표에는 ‘행정수도 건설 아예 말도 꺼내지 마라’는 의원들의 의중이 실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진/ 한나라당은 특위 구성안 부결로 내홍을 겪고 있다. 홍사덕 원내총무가 부결사태에 대해 이완구 의원(맨 오른쪽)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사진/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충청권 대 비충청권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촉구하는 충청도민.(연합)

사진/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서울시의회 의원들.(한겨레 김정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