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외교로 눈에 띄는 국제무대 복귀 행보… 자본·기술 유입은 북-미 관계에 달려 있어
북한이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상호 방문을 통해 북-미간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한 데 이어,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간 동안에는 영국과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으로부터 수교의사를 확인했다. 올 들어 이탈리아(1월), 오스트레일리아 (6월), 필리핀(7월) 등 3개국과 수교하고 지역 안보 국제기구인 아시안지역안보포럼(ARF·7월)에 가입한 북한이 한발한발 착실하게 국제무대로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또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도 수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고립에서 개방쪽으로 정책적 선회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북-미 베를린 협상에서였다. 북한은 이 협상에서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과 관계정상화가 어렵다는 게 당시 국제사회의 여론이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나갈 의사가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대외관계 개선의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사일 문제 해결 의지로 걸림돌 제거
실제 북한은 이후 본격적인 전방위 외교에 나서게 된다. 우선 지난해 9월 92년 이후 7년 만에 백남순 외무상을 54차 유엔총회에 보내 EU 의장국인 핀란드 등 6개국 외무장관과 회담하게 하는 등 대 서방외교를 강화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과거 동맹국과의 관계도 재확인했다. 올 5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 장쩌민 주석을 만난 데 이어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해 북-러시아 관계를 복원시켰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올 초까지 만해도 성과가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았다. 특히 유럽의 중심국가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경우 대북수교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였다. 정부 관계자는 “유럽국가들은 그동안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남북대화의 진전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중단 △인권상황 개선 등을 내세워왔다. 그렇지만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10월 북-미관계의 급진전으로 미사일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교환경이 좋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이런 외교적 성과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도 큰 몫을 했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맞춰야 한다는 이른바 ‘조화와 병행의 원칙’을 내세웠던 과거와 달리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돼야 한다’며 대북관계정상화를 적극 권고해 온 것을 국제사회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로 나아가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물줄기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로 진출하려는 동기에는 정치적 목적이 앞섰던 과거와 달리 경제적인 면이 크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90년 이후 식량난을 겪으면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시련기’를 보낸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 진출 이외에 생존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은 90년대 초 경제회복과 체제생존의 돌파구를 확보하기 위해 라진·선봉 자유무역경제지대 창설, 신무역제도 도입, 대미·대일 국교정상화 회담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한반도 비핵화 선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의 조처를 취했다. 이는 바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조치였다. 따라서 이런 정책변화는 그동안 핵 문제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최악의 경제위기 등으로 ‘일시 중단’됐다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고 체제정비를 거친 뒤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대외개방은 90년대 초부터 체제생존을 위한 일관된 정책인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정책변화가 아니라 90년대 초부터 추진돼온 근본적 태도변화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남아 있다. 정규섭 관동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선 북한이 전면개방을 선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분적, 점진적 개방을 해나가면서 통제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과정마다 고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미관계도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대외 관계개선은 기껏해야 단순한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형식적 관계에 머물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북한이 전방위 외교에 나서는 목적, 즉 국제사회와의 실질적인 상호교류를 통해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얻으려는 의도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완전한 진입까지는 걸림돌·변수 많아
물론 북-미관계는 일단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예정돼 있는 등 이미 관계정상화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11월3일 마친 북-미 미사일 회담도 북한이 요구한 ‘미사일 대리발사’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는 등 미사일 문제 해결에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시험발사 등을 포기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경제적 보상과 체제안전보장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등 많은 난제도 상존하고 있다. 특히 이들 문제는 비용분담 등 국제적 협력과 조정이 필요한 데다 관련국들 내부의 반북 여론도 의식하면서 풀어가야 하는 것들이어서 해결책 모색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대외개방화에 따른 북한 내부사정의 변화 가능성도 변수다. 국방연구원의 서주석 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국제무대 진출은 정치적 목적이 컸던 과거와 달리 경제적 유인이 크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과 기술 등의 유입과 함께 일정 정도 북한사회의 개방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급격한 개방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면 북한 당국은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인권상황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럽국가들의 경우 수교를 결정한 것은 애초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전제조건 중 하나였던 인권상황을 더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보다 북한과 직접 관계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사진/북한은 북-미 베를린 협상 뒤 본격적인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실제 북한은 이후 본격적인 전방위 외교에 나서게 된다. 우선 지난해 9월 92년 이후 7년 만에 백남순 외무상을 54차 유엔총회에 보내 EU 의장국인 핀란드 등 6개국 외무장관과 회담하게 하는 등 대 서방외교를 강화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과거 동맹국과의 관계도 재확인했다. 올 5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 장쩌민 주석을 만난 데 이어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해 북-러시아 관계를 복원시켰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올 초까지 만해도 성과가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았다. 특히 유럽의 중심국가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경우 대북수교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였다. 정부 관계자는 “유럽국가들은 그동안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남북대화의 진전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중단 △인권상황 개선 등을 내세워왔다. 그렇지만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10월 북-미관계의 급진전으로 미사일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교환경이 좋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이런 외교적 성과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도 큰 몫을 했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맞춰야 한다는 이른바 ‘조화와 병행의 원칙’을 내세웠던 과거와 달리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돼야 한다’며 대북관계정상화를 적극 권고해 온 것을 국제사회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로 나아가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물줄기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로 진출하려는 동기에는 정치적 목적이 앞섰던 과거와 달리 경제적인 면이 크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90년 이후 식량난을 겪으면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시련기’를 보낸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 진출 이외에 생존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은 90년대 초 경제회복과 체제생존의 돌파구를 확보하기 위해 라진·선봉 자유무역경제지대 창설, 신무역제도 도입, 대미·대일 국교정상화 회담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한반도 비핵화 선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의 조처를 취했다. 이는 바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조치였다. 따라서 이런 정책변화는 그동안 핵 문제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최악의 경제위기 등으로 ‘일시 중단’됐다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고 체제정비를 거친 뒤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대외개방은 90년대 초부터 체제생존을 위한 일관된 정책인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정책변화가 아니라 90년대 초부터 추진돼온 근본적 태도변화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남아 있다. 정규섭 관동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선 북한이 전면개방을 선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분적, 점진적 개방을 해나가면서 통제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과정마다 고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미관계도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대외 관계개선은 기껏해야 단순한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형식적 관계에 머물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북한이 전방위 외교에 나서는 목적, 즉 국제사회와의 실질적인 상호교류를 통해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얻으려는 의도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완전한 진입까지는 걸림돌·변수 많아

(사진/북한은 동맹국과의 관계도 정상화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평양에서 북러 신조약'을 체결한 뒤 조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