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북한행 고민중
등록 : 2000-11-07 00:00 수정 :
(사진/10월30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 수교 교섭 11차본회담 모습)
지난 10월31일 북·일수교 교섭 11차 본회담(올해 4월 재개된 이후로는 제3차)이 합의도출 없이 끝났다. 이와 관련해 일본 내부에서는 미국, 유럽까지 서둘러 타고 있는 “북한행 버스를 놓칠지 모른다”며 일본 정부의 근시안을 비판했다. 적극적 수교론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놓쳐도 상관없다. 우리 식대로 가자”는 소극적 수교론자들도 적지 않다. 적극적 수교론자들 가운데서도 “서두를 것 없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전술적 소극수교론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버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보는 점에서는 적극론자쪽에 가깝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이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는 일본이 제시하고 있는 수교방식 및 절차에 관한 문제다. 북한은 지금 사죄와 보상을 중심으로 한 과거청산 우선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식민지지배가 불법임을 공식인정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수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해 지난 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때와 같은 경제협력방식을 주장한다.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고 따라서 보상도 배상도 할 수 없으며 상호 재산청구권 차원에서 얼마를 주고 나머지는 원조형식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보상금액 및 앞으로의 양국관계 전망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지금껏 양자간에 근접한 것은 과거사에 대해 일본이 북한을 특정해서 문서로 사죄할 수 있다고 물러선 것뿐이다.소극적 수교론자들과 전술적 소극수교론자들은 지금 경제재건에 다급한 것은 북한이고 남북과 북-미관계가 급진전된다고 해도 북한경제 재건에 들어갈 대규모 자금은 결국 일본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있다. 북한이 원칙문제로 큰소리치지만 결국 일본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거나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일본 돈이 최대무기”라는 지적은 언론들도 공공연히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양쪽의 판단이 앞으로 북-일교섭의 향방을 가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소극적 수교론자들 중에는 또다른 부류들도 있다. 그들은 러시아제국이 남진정책을 펴던 19세기 말과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의 일본에 대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19세기 말의 전략적 가치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본다. 중국도 러시아도 앞으로 상당 기간 한반도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일본을 위협할 만한 역량이 없으며 따라서 일본이 한반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의 소극론자들이 많지는 않다. 대세는 북한행 버스를 놓칠까봐 초조해하는 쪽이다. 외교안보상으로도 그렇고 장차 국제적인 북한경제 재건을 상정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버스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취약한 모리 요시로 총리내각의 국정운영능력에서 보듯 어떤 경우도 지금의 빈약한 일본정치 리더십으로는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결국 여전히 일본 외교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대북 움직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한승동 특파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