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재 · 보궐 선거 결과에 나타난 정치신인 선호… 내년 총선은 신 · 구 세력의 대결로 짜일 듯
내년 4월 총선은 정당을 따지기보다는 신·구 정치세력간의 대결구도로 짜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정치권에 있다. 대선자금을 비롯한 검찰의 검은돈 수사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주목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정치권의 돈 문제가 들춰질수록 기성 정치인은 구체적 비리가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싸잡아 ‘부패 세력’으로 비난받기 십상이며, 상대적으로 때묻을 기회가 적은 정치신인들이 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
10월30일 기초단체장 4곳을 비롯해 72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지방 재·보궐 선거 결과는 이런 전망을 부분적으로 뒷받침한다.
영남권 한나라당 아성 흔들
경남 통영시장 선거에선 무소속 진의장 후보가 53.0%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강부근 후보(44.4%)를 눌렀다.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경남권에서 기성 질서에 금이 간 셈이다. 한나라당의 충격은 당 지도부가 대거 출동해 지원유세에 총력을 쏟은 터여서 더욱 크다. 홍사덕 원내총무와 박근혜·홍준표 의원, 이강두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가 대거 통영을 방문해 자당 후보를 지원했으며, 선거일 전날엔 최병렬 대표까지 지원유세를 했다. 선거운동 후반에 터진 SK 100억원 한나라당 유입 사건의 파장을 막아보려 했지만 무위로 그친 것이다. 통영시장 선거는 이곳(통영·고성) 지역구 출신인 김동욱 한나라당 의원과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전 국무조정실장)의 대리전 측면도 강했다. 정 총장이 자신이 나설 내년 총선의 전초전 의미를 두고 진의장 후보를 강력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 총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해 출신지인 통영에선 이겼지만, 고성에서 밀리면서 김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정 총장의 지역기반이 진의장 후보의 당선에 기여한 측면이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이래 굳어져왔던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 무너져내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사태의 본질을 좀더 꿰뚫는 것 같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영남권의 상당수 현역 의원들이 그동안 다른 정당의 도전을 받지 않고 쉽게 수성에 성공해왔으나 유권자들이 이에 염증을 표시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열린우리당 중앙당은 정 총장이 자당과 교감을 해왔다며 우리당의 총선 전망을 밝게 해주는 단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지 사정에 밝은 우리당 관계자는 “정 총장에게 우리당 참여를 요청하다가 지금은 본인의 판단을 기다려보자고 맡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즉, 영남권의 비한나라당 유력 주자들이 무소속과 우리당 가운데 어느 쪽을 ‘타는’ 게 나은지 저울질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광주에서는 민주당이 절대 우세하리라던 관측을 깨고 우리당 출신 후보가 구의원 선거 두곳을 모두 이겨내는 이변이 벌어졌다. 북구 오치2동에 신운식 후보를 내 당선시킨 김태홍 의원(우리당)은 “초반전에는 절대 열세로 시작했다”며 “그러나 신당이라고 해서 광주에서 꼭 망하라는 법이 없음이 실증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지 선거관계자에 따르면 서구 화정4동과 북구 오치2동 모두 선거전 개막 시기의 여론조사로는 70 대 30 정도의 민주당 우세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우리당쪽이 창당발기 설명대회 등의 이벤트를 집중시켜 분위기를 띄우면서 역전극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서구 화정4동의 임명재 당선자는 36살의 약사로 그동안 지역정가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던 ‘순수 신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반노그룹이 노무현 후보를 끌어내리려 할 때 광주에서 결성된 ‘노무현 후보 지킴이’에 참여한 게 고작이었으며, 대선 뒤에야 비로소 개혁국민정당에 가담했다고 한다.
서구 화정4동 선거는 도시지역 재·보궐 선거가 흔히 그러하듯이 투표율이 23.1%에 그쳤다. 투표율이 낮으면 바람보다는 조직동원 선거가 힘을 쓰게 된다. 그리고 조직 선거에는 자금력을 갖춘 구정치 세력이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광주의 ‘작은 이변’ 까닭은…
그러나 임 후보쪽은 노사모 회원들을 중심으로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조직했다. 직업에 따라 주부들은 오전이나 오후, 직장인은 퇴근 뒤 저녁시간에 활동하도록 순번제를 실시했다. 선거운동 과정을 주관한 박규환씨(노무현 후보 광주경선 조직책임자)는 “광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만들어내던 열정을 되살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뛰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사모 출신자를 가동해 조직에는 조직 대결로 맞섰다는 이야기다.
충청권에선 자민련이 계룡시장·음성군수·증평군수 세곳의 기초단체장 가운데 계룡·음성 두 군데를 건져내는 ‘선전’을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의 자민련 기반이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실증한 셈이다. 유운영 자민련 대변인은 “50~60대 이상 장년층을 주축으로 한 상당수 충청인들이 겉으로는 표시하지 않지만 여전히 JP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증거”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김종필 총재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세곳 선거구를 누비며 “다시 한번…”을 외쳤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4당 후보가 모두 나선 계룡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김성중 후보(21.2%)에 이어 우리당 인사인 무소속 박익만 후보(21.0%)가 민주당 강철수 후보(10.8%)를 앞선 대목도 흥미롭다. 해병 준장으로 예편한 지 석달 만에 출전해 ‘순수 신인’이라는 점말고는 내세울 게 없던 박익만 후보가 그런 대로 선전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 출신으로 이 지역(논산)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안희정씨는 “충청권에서도 뉴 브랜드가 등장할 경우의 파괴력을 예고하는 징후”라고 주장했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무너진 한나라당의 아성. 경남 통영시장 선거에 당선된 무소속 진의장씨가 당직자들과 환호하고 있다.(연합)
경남 통영시장 선거에선 무소속 진의장 후보가 53.0%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강부근 후보(44.4%)를 눌렀다.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경남권에서 기성 질서에 금이 간 셈이다. 한나라당의 충격은 당 지도부가 대거 출동해 지원유세에 총력을 쏟은 터여서 더욱 크다. 홍사덕 원내총무와 박근혜·홍준표 의원, 이강두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가 대거 통영을 방문해 자당 후보를 지원했으며, 선거일 전날엔 최병렬 대표까지 지원유세를 했다. 선거운동 후반에 터진 SK 100억원 한나라당 유입 사건의 파장을 막아보려 했지만 무위로 그친 것이다. 통영시장 선거는 이곳(통영·고성) 지역구 출신인 김동욱 한나라당 의원과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전 국무조정실장)의 대리전 측면도 강했다. 정 총장이 자신이 나설 내년 총선의 전초전 의미를 두고 진의장 후보를 강력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 총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해 출신지인 통영에선 이겼지만, 고성에서 밀리면서 김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정 총장의 지역기반이 진의장 후보의 당선에 기여한 측면이다.

사진/ 자민련은 살아 있다? 충남 계룡시장에 출마한 자민련 최홍묵 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뒤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