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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반전모임, 상황 반전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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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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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험대 오른 ‘파병반대’ 진영의 정치력… 우리당 · 민주당 당론 형성과정에서 힘 못 실려

올 초 서희·제마 부대의 이라크 파병으로 정치적 패배를 경험했던 ‘반전평화의원모임’(이하 반전모임) 등 정치권 내 ‘파병 반대’ 진영의 정치력이 또다시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다.

10월18일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 이후 임종석 열린우리당(옛 통합신당·이하 우리당) 의원이 ‘전투병 파병 반대’에 국회의원직을 내걸고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등 “전투병 파병만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정치권에서 세를 확산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4월 ‘국군부대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이 의원 179명의 찬성(반대는 68명)으로 통과된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 상태로라면 정부가 전투병 위주의 파병을 결정할 경우 국회에서 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추가파병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 내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쪽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흩어져 있는 반전모임 소속 초·재선 의원들이다.

사진/ 지난 4월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이 통과된 뒤 유감을 표명하는 ‘반전평화의원모임’ 소속 의원들. 아직은 정치권에서 세를 확산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파병동의안 국회 통과 가능성 커


임종석 의원은 정부의 파병 결정 다음날인 10월19일부터 “정부가 대규모 전투병 파병을 결정하고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단식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당의 김성호·송영길·이종걸·안영근·김영춘 의원 등은 10월21일 이정우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등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에 항의하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김성호 의원 등은 또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며 불가피할 경우엔 비전투병 위주로 파병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만들어 서명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이를 우리당의 당론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민주당의 김영환·정범구 의원 등도 ‘전투병 파병 반대’를 당론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양당의 의원총회에서 아직까지는 다른 의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양당의 지도부 등 중진들을 중심으로 한 방어논리에 부닥친 탓이다. 당 지도부나 추가파병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당수 의원들이, 파병 시기와 규모, 부대 성격 등에 대한 정부안이 확정되지 않았고 11월 중순 국회 차원의 이라크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한 만큼 조사 결과를 본 뒤 당론을 정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당의 경우에는, 김원기·이상수 의원 등 중진들을 중심으로 여당이 ‘전투병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이유가 더해진다.

이들 초·재선 의원이 ‘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세를 얻지 못하는 데는, 정치권이 재신임 정국과 대선자금 수사 등 굵직한 현안에 휩쓸리면서 추가파병 문제를 등한시한 외적 요인도 있지만, 우선 ‘전투병 파병 반대’ 진영의 정치적 구심점이 없는데다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사진/ “당론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의 의원총회에서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과 김근태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기자)
이는 김근태 의원 등 반전모임 소속 의원 19명이 “추가파병 동의안이 국회에 넘어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부결시키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시점이 이미 한달이 지난 9월18일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김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해 부시 미 행정부의 전투병 파병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라고 촉구했지만, 그 이후의 후속조치는 부족했다. 굳이 이라크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지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취합이 가능한 이라크 현지 상황에 대한 구체적 조사나, 여론수렴과 대안마련을 위한 공청회 개최, 정치권 내에서의 세 확산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 이후,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비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는 이들의 서명운동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투병 파병 반대 진영이 11월 초 이라크의 학계·시민단체 인사들을 직접 초청해 추가파병과 관련한 ‘이라크의 요구’를 들어보겠다는 행사도,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 이전에 진행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야당처럼 싸워야 하는 여당 의원들

분당 이전 민주당 의원이 주축이 됐던 반전모임이 분당 후유증으로 올 초 국회에서 ‘파병 반대’를 주도했던 것만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민주당의 반전모임 의원들이 신당 의원들과 마주 앉기를 껄끄러워해 반전모임이 아닌 새로운 틀이 필요한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우리당의 원내대표인 김근태 의원과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인 김영환 의원이 모두 정치권 내의 ‘파병 반대’ 목소리를 대변해왔으면서도, 막상 당론 형성과정에서는 당직의 무게에 눌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투병 파병 반대 진영 의원들 대부분이 중요 정책에 대해 의원들 개개인의 소신이 중요하다며 ‘당론 정치’를 반대해왔음에도 추가파병 사안과 관련해서는 ‘당론화’를 주요 목표로 삼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도 이들에겐 곤혹스런 대목이다. ‘정신적 여당’인 우리당이 전투병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내걸어야 국회로 넘어오는 정부의 추가파병 동의안에서 ‘전투병’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당이 전투병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면 민주당도 뒤따라올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투병 파병 반대를 당론화하려는 진영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실패한 점을 이런 어정쩡한 상황이 오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당정분리를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당정분리가 된 상태에서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여당과의 협력을 강화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이는 현재 정부와 우리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 우리당 관계자의 진단에는, 여당 의원임에도 야당 의원처럼 싸워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배어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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