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 선언은 ‘파렴치범 혐의’ 벗고 명예회복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일 수도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은 정말 정치를 그만둔 것일까.
1996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사무총장을 지낸 강 의원은, ‘안풍’ 1심 재판 다음날인 9월24일 갑작스레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재판부의 결정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일시 정지됐고 정상적인 의정활동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강 의원이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안기부 예산을 빼돌려 선거자금으로 지원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해 징역 4년에 추징금 731억원을 선고했다.
“그 돈은 YS의 대선잔금이었다”
강 의원은 정계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전과자 남편, 전과자 아빠는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시 안기부 계좌를 통해 신한국당으로 돈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안기부 예산은 아니며 출처를 내 입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강변해온 그가, 전과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한 꺼풀 벗기면, 누군가를 향한 강한 원망과 섭섭함도 묻어난다. 강 의원을 가까이서 10여년 이상 보좌해온 이장연 비서관은 “그동안은 정치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지만, 이제 다 던졌는데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심 재판을 앞두고 강 의원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 의원의 정계은퇴 선언이, 국가예산을 횡령해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파렴치범’ 혐의를 벗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힌트는 기자회견 당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최 대표는 “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선 당 밖의 5, 6명이 진실을 알고 있고 때가 되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진실을 알고 있는 5~6명’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씨, 이원종 전 대통령 정무수석, 권영해 전 안기부장, 다음달 초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김덕룡 의원 등이 포함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다음날 홍준표 의원은, 국감장에서 공개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잔금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신한국당 의원들에게 지원된) 안기부 자금은 (YS의) 대선잔금”이라며 “YS의 차남 현철씨의 사조직 나사본(나라사랑운동본부) 대선잔금 130억원 중 70억원이 안기부 계좌로 들어갔다는 것은 재판부도 인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남경필·원희룡·오세훈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도 김 전 대통령이 명쾌하게 밝혀야 한다는 뜻을 상도동쪽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내년 4월 총선에서 큰 불로 번질지도 모를 ‘안풍’의 불씨를 차단하고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계’쪽의 작품으로 선을 긋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강 의원쪽은, 그런 의도에 대해서는 불쾌해하면서도 “어차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잡히지 않겠느냐”며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
그렇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입을 열까. 당장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입’ 구실을 하고 있는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와 재판부를 상대로 강력한 정치투쟁을 벌일 생각은 않고 근거도 없이 대선잔금 운운하는 것은 초점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라고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강 의원이 1997년 대선 당시 ‘20억+알파’ 등 당시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공세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화살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년 총선에서 아들 현철씨의 국회 입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이, “그 돈은 내 돈 맞다”거나 “내가 시킨 일”이라고 털어놓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의 재임기간 중에 금융실명제가 도입됐는데 안기부 계좌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거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처벌한 사유 가운데 기업으로부터 걷은 통치자금 문제도 들어 있는데 문제의 돈이 대선잔금이나 당선사례금이라고 밝힐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01년 1월9일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삼재 의원은 여러 곳에서 선거자금을 조달했겠지만 나는 돈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른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과 현철이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당시 강 의원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강 의원의 ‘벼랑 끝 전술’의 배경엔, 그동안 안풍 재판에 소극적이던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금의 실체가 무엇이든 15대 총선 때 문제의 자금을 지원받은 현역 의원이 수십명 포진해 있는 당으로서, 이 문제에 관한 한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강 의원의 이 비서관은 “직접 누구 탓을 하거나 섭섭하다는 말씀은 한번도 없었지만, 특히 대선이 끝난 뒤 강 의원만이 홀로 싸웠는데 왜 인간으로서 그런 감정이 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건 초반만 해도 이회창 총재가 “사무총장을 맡아서 불거진 일인 만큼 변호사 선임 등 당에서 책임지겠다”고 적극 나서 한나라당 율사 출신 의원들을 포함해 한때 변호인단이 100여명을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서정우·이정락·정인봉·장기욱 변호사와 이주영 의원 등 5명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강 의원의 다른 측근은 “당 지도부나 상도동쪽 모두 재판의 진행과정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누가 그를 지치고 힘들게 했는가
‘안풍’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표적사정이다. 안기부 예산을 지원받은 적이 없다”고 강단지게 맞섰던 강 의원은, 최근 측근들에게 “잠을 청하다가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고 한다.
이장연 비서관은 “강 의원이 모든 것을 던졌는데 희생양만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적어도 정치환경을 바꾸는 흔적이라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정계를 은퇴함으로써 시작된 강 의원의 ‘장외 정치’가, 어떤 파장을 부를지 지켜볼 일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진/ 눈물,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강한 원망과 섭섭함인가. 9월24일 강삼재 의원의 정계은퇴 기자회견.(연합)
강 의원은 정계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전과자 남편, 전과자 아빠는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시 안기부 계좌를 통해 신한국당으로 돈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안기부 예산은 아니며 출처를 내 입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강변해온 그가, 전과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한 꺼풀 벗기면, 누군가를 향한 강한 원망과 섭섭함도 묻어난다. 강 의원을 가까이서 10여년 이상 보좌해온 이장연 비서관은 “그동안은 정치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지만, 이제 다 던졌는데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심 재판을 앞두고 강 의원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 의원의 정계은퇴 선언이, 국가예산을 횡령해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파렴치범’ 혐의를 벗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힌트는 기자회견 당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최 대표는 “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선 당 밖의 5, 6명이 진실을 알고 있고 때가 되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진실을 알고 있는 5~6명’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씨, 이원종 전 대통령 정무수석, 권영해 전 안기부장, 다음달 초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김덕룡 의원 등이 포함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사진/ 한나라당은 가급적 빨리 ‘안풍’의 불씨를 차단하고 이를 김영삼 전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계’쪽의 작품으로 선을 긋고자 하는 분위기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만난 김 전 대통령.(국회사진기자단)

사진/ ‘안풍’과 관련해서 검찰에 출두하는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