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분당에 따라 정치권 새판짜기 돌입… 신4당체제에서 위력 발휘할 게임의 변수들
민주당의 분당과 국민참여통합신당(가칭)의 출범으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내년 4월 총선은 사상 보기 드문 여당의 분열 속에 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자민련을 중심으로 한 신4당체제로 치러지게 됐다.
현 시점에서 내년 총선에 미칠 분당의 즉각적인 효과는 간명하다. 즉, 민주당과 신당 모두가 지지층의 분열로 함께 괴멸적 타격을 입으며, 한나라당이 망외의 어부지리를 쥐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김영환 의원(민주당)은 이를 두고 “신당파는 자살을 선택했으며, 민주당은 타살을 강요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신당 공멸, 한나라당 대약진?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대표 노규형)의 전화여론조사 결과(9월17일 전국 20살 이상 남녀 800명 상대.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오차 ±3.46%)는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존 정당과 민주당 신주류가 주축이 된 신당에서 후보를 낼 경우, 정당만을 고려해 투표한다면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느냐’라는 물음에 한나라당 29.5%, 민주당 17.5%, 신당 14.0%, 자민련 1.0%, 민주노동당 2.1%, 모름·무응답 32.9%라는 응답이 나타났다. 같은 물음에 서울 지역 응답 결과는 한나라당 28.0%, 민주당 17.0%, 신당 15.3%, 민주노동당 2.4% 등으로 나왔다.
민주당·신당의 공멸과 한나라당의 대약진을 예고하는 결과에는 필연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는 통일민주당(김영삼)과 평화민주당(김대중)의 분열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를 당선시킨 1987년 대통령 선거의 경험이 있다. 또한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분당으로 당시 집권 신한국당의 대약진을 가져왔다. 기존의 지지층을 결속시킨 가운데 외연을 확대하는 세력연합에 성공한 정치세력이 승리하고, 분열한 세력이 대체로 실패하는 평범한 선거공학 원리가 관철돼온 것이다.
민주당 분당과 신당 창당의 명분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신당과 민주당 모두의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
신당파는 탈당과 신당 창당이 불가피한 이유로 민주당 잔류파의 ‘행태’를 주로 지적한다. 즉, 민주당 안에서 당무회의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통합신당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회의를 열 때마다 구주류쪽의 터무니없는 폭력 사태가 거듭되면서 ‘도저히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일부 민주당 잔류파 의원들도 구주류쪽의 행태에 문제가 있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행태상 문제점’이 기존 정당을 깨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야 할 이유까지 될 수 있는지에는 공감대가 넓지 않아 보인다. ‘당무회의에서 누군가가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당겼기 때문에’를 뛰어넘는 ‘국정 운영상의 중대한 문제가 있어서’라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분당 사태가 결국 신·구주류간 당권 다툼의 파생물로 비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리서치앤리서치의 9월17일 조사 결과도 국민들이 사태의 진실을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분열의 책임이 신·구주류 중 어디에 더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신주류 26.0%, 구주류 36.4%라는 응답이 나왔다. 반면에 ‘민주당이 분열되어 신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는 26.1%만이 ‘정치개혁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답했으며, ‘과거 만들어진 신당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69.7%에 이르렀다. 즉, 민주당 구주류가 ‘기득권 집착 행태’를 곱지 않게 보면서도 ‘그렇다고 분당까지’에는 회의적인 흐름인 셈이다.
분당에 회의적 시각… 유권자의 변화욕구
그렇다고 해서 아직 내년 4월 총선 결과를 확정적으로 예단하긴 곤란할 것 같다. 여러 정파들이 신4당체제 속에서 어떤 게임을 펼치느냐, 특히 통합신당이 어떤 식으로 정체성과 차별성을 분명히 하느냐에 따라 구도 변화의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노무현 후보간에 일대 역전극이 벌어졌던 것처럼 유권자 집단이 과거와 달리 강렬한 변화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이다.
우리 정치사엔 실제로 분당의 성공사례도 있다. 5공화국 시절인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동교동·상도동계가 기성 민한당을 ‘2중대 어용 야당’으로 몰아붙이며 신민당을 창당해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통합신당은 이와 관련해서 일단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새로운 상품으로 내걸고 승부를 결해보려는 판단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은 9월17일 광주·전남 언론인 간담회에서 “민주정당이 되려면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데 이 문제를 놓고 논쟁하다가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그냥 신주류, 구주류만 남게 된 것”이라며 “이렇다 보니 힘이 약해지는 측면이 있으나 차제에 새로운 정치질서로의 변화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신당도 유권자 참여를 포함하는 상향식 공천과 원내정당화, 전자정당화, 당 부설 연구재단 설립을 포함하는 정책정당화 등을 주된 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지도부를 당의장과 원내대표로 이원화해 김근태 의원을 원내총무로 선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정당정치의 행태를 다른 정파보다 앞장서서 개혁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정파를 ‘낡은 정치세력’으로, 자신들은 ‘새 정치세력’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정당정치의 행태 개혁이라는 상품으로 신당이 바람을 일으킬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김형준 박사(정치학·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는 “낡은 정치세력 대 새 정치세력 구도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구사해 성공을 거둔 전략”이라며 “그러나 대선과 총선의 성격이 다른 점에 비춰볼 때 내년 총선에서도 같은 전략이 먹힐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선은 미래지향적 투표 행태가, 총선은 정권의 중간평가와 같은 과거회귀적 투표 행태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데다, 총선에선 젊은층의 참여율이 낮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차별화 여부가 신당 바람의 세기 결정
또한 한나라당이 이미 사고지구당 위원장 선정에서부터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려는 점도 정당행태 개혁론의 상품성에 의문을 더한다. 즉, 정당행태 개혁이야 당연히 해야겠지만, 다른 정당도 따라잡아 해버리면 그만이라는 한계가 있다.
대신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념과 계층을 토대로 한 정파간 정책적 분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김헌태 소장(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은 “통합신당이 자신을 범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즉 자신과 다른 정파들과의 관계를 반수구세력 대 수구세력의 양분 구도로 만들어나갈 경우 활로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통합신당이 내건 정당개혁은 국민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정치권만의 문제로 투영되기 십상”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합신당의 일부 의원(김근태·김성호 등)들이 이라크전 추가파병 반대운동에 앞장선 게 의외로 정파간 차별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파병반대당 대 파병찬성당의 구도가 짜일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이 통합신당을 ‘과격 진보세력’이라며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것도, 반대로 신당이 기존 민주당과 차별화되도록 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경남양산 지구당위원장을 하다 신당을 위해 탈당한 송인배씨는 “신당이 성공하려면 기존 민주당과도 차별화를 해야 한다”며 “김근태 신임 원내대표가 ‘민주당과의 재결합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영남권 정서로 볼 때 ‘도로 민주당’으로 비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민주당 구주류 일각에서 거론하는 ‘내각제 연합론’의 향배도 신당의 홀로서기 성패를 점치는 변수가 될 것 같다.
내각제 연합론은 ‘반노무현 정파’들이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공동의 총선 공약으로 내걸며, 총선 승리 뒤 실제로 개헌을 단행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주장은 지금도 한나라당(149석)과 민주당(65석), 자민련(10석)을 합치면 개헌선(국회 재적 272석의 3분의 2)을 넘기기 때문에 잠재적 파괴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준표 의원(한나라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합치면 영호남과 충청이 합치는 전국정당이 되는 것”이라며 전략 설계도도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내각제 연합의 실제 성사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통합신당 입장에서 보면 내각제 연합이 형성될 경우 신당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확보하긴 오히려 쉬워질 수도 있다. 즉, 통합신당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권 사수론’의 유일 근거지가 되면서 현재의 여당 분열 구도를 ‘1여다야 구도’로 뒤바꿔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 연합’이 정치권 재편할 수도
신4당체제에서 펼쳐질 다자게임의 최종적 향배를 점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범개혁세력의 챔피언이든, 반노무현 비판세력의 대표주자이든 자신을 중심으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정파가 승리를 거머쥐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저 그런 집단들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는 정파는 몰락하게 마련이다. 통합신당이 출생 명분의 취약성을 벗지 못하다가 1996년 국민회의·민주당 분당의 전철을 밟을지, 자신들의 공언대로 ‘환골탈태’를 거쳐 1985년 2·12 총선의 신화를 재현할지도 이러한 게임의 룰과 무관하지 않다.
박창식 cspcsp@hani.co.kr

사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파간의 다자 게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재보선 합동연설회에서 청중들이 후보의 연설을 듣는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대표 노규형)의 전화여론조사 결과(9월17일 전국 20살 이상 남녀 800명 상대.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오차 ±3.46%)는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존 정당과 민주당 신주류가 주축이 된 신당에서 후보를 낼 경우, 정당만을 고려해 투표한다면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느냐’라는 물음에 한나라당 29.5%, 민주당 17.5%, 신당 14.0%, 자민련 1.0%, 민주노동당 2.1%, 모름·무응답 32.9%라는 응답이 나타났다. 같은 물음에 서울 지역 응답 결과는 한나라당 28.0%, 민주당 17.0%, 신당 15.3%, 민주노동당 2.4% 등으로 나왔다.

사진/ 민주당과 통합신당은 공멸의 길을 걸을 것인가. 지난 19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통합신당 주비위에서 원내대표로 뽑힌 김근태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사진/ 지난 22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대표직 승계 뒤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