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추미애 의원의 엇갈린 정치적 행보…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 넓히려는 포석인 듯
2002년 12월18일 서울 종로 유세장. 당시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쓰인 국민통합21의 지지 피켓이 들어왔다. “속도위반하지 마십시오.” 노 후보는 추미애·정동영 의원을 치켜세웠다. 추·정 의원 등 ‘잠재적 후보군’과 경쟁하라는 얘기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경쟁’은, 당연히 당내 경선을 의미했다. 그러나 두 의원이 민주당과 국민참여통합신당(통합신당)으로 제 갈 길을 가게 됨에 따라, 현재의 구도가 지속된다면 두 사람의 ‘경쟁’이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형태의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판사와 앵커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국민의 정부’ 탄생에 기여했던 두 의원. 이들은 초·재선 의원 모임인 ‘바른정치실천연구모임’(바모)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구상을 공유하면서 2001년 민주당 쇄신파동에 함께했다. 지난 대선 때는 나란히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았다. 그런데 왜 서로를 “구시대 기득권 집착세력의 얼굴마담” “개혁세력을 분열시킨 분열주의자”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을까. 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일까.
신당행·당잔류 “동지에서 라이벌로”
일단 추 의원의 행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모’의 신기남·천정배·정세균·정동채 의원 등 추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온 의원 대부분이 정동영 의원과 함께 통합신당에 몸을 실었기 때문이다. 추 의원은 지난해 대선 직후인 12월22일 대부분 신당호를 탄 의원 23명과 함께 “지역분열 구도와 낡의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했던 기자회견장에 서 있었다. 추 의원이 ‘통합모임’ 공동대표로, 한때 자신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박상천·정균환 의원 등 ‘정통모임’과 민주당에 남은 현재의 모습은, 그의 정치 입문과 지난 대선 즈음의 활동까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추 의원은 “나는 확고하게 중심을 갖고 있으며 중심이동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자신은 중심에 서 있는 반면, (정 의원 등 신당파인) 다른 의원들이 당선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노 대통령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즉, 추 의원 자신은 예측 가능한 연장선상에 있음에도, 다른 의원들이 궤도를 이탈하는 바람에 혼자 튕겨져나온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란 주장이다.
추 의원의 설명대로라면, 추 의원이 노 대통령·신당파와 간격을 두기 시작한 것은 대북송금 특검 수용과 민주당 개혁안 처리 과정이라는 굴곡점을 지나면서부터다. 김원기 위원장·천정배 간사 체제의 당 개혁특위가 만들어낸 개혁안 가운데, 지구당위원장의 기득권 포기를 이유로 지구당위원장직을 폐지하고 관리위원장 체제로 바꾸자는 제안에 추 의원이 이견을 제시했다. 추 의원은 “개혁안에 이견을 내면 반개혁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였다”며 “당 개혁안을 놓고 생산적 토론을 벌여 개혁을 논하기보다는 당내 헤게모니 투쟁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노 대통령의 특검 수용에 대해서는,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던 희생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분노했고, 내가 지지를 호소했던 사람들 앞에서 면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당 문제로 골이 깊어지면서부터, 신당파 내부에서는 추 의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호남 출신이 많은 지역구 탓이다” “입각을 원했는데 강금실 법무장관이 대신 과실을 따먹으면서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추 의원을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영남후보 필승론’이다. 대구 출신인 추 의원이 차기 대선까지 호남 민심을 붙들어둘 경우, 노 대통령의 성공 신화의 재연이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다. ‘호남을 넘어서’를 모토로 내건 신당이, 차기 총선에서 몇십년 동안 굳어진 지역구도를 허물고 전국정당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테고, 신당보다는 민주당을 모태로 당 밖의 개혁세력의 살을 붙인 ‘터’가, 추 의원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더 안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추 의원은 지난 6월 국민대 특강에서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는 지역주의를 깰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지역주의 타파를) 호소하고, 국민·정치인·학계 등이 참여하는 특별기구를 만들어 몇년 동안 연구한 뒤, 내년 17대 총선이 아닌 2008년 18대 총선에서부터 적용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지역구도 타파를 내건 신당을, ‘인위적’이며 ‘가능성이 없는’ 모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해석의 틀을, 신당 논의를 이끌었던 정동영 의원쪽에 적용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호남 출신인 정 의원에게는, 현재의 지역정당 구도가 짐스러울 수밖에 없다. 17대 총선 뒤에도 현재와 같은 지역주의 구도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영남 득표율에 큰 기대를 걸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전국정당화라는 명분도 실린 만큼, 구주류 일각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벌어놓은 표가 있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예측을 뛰어넘는 결단이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정 의원은 영남으로, 추 의원은 호남으로 가야 장기적으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속사정이, 각각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데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에서 ‘대표 장수’로 맞붙을 건가
“민주당을 개혁하고 정비해 민주당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추 의원과, “정치개혁과 신당의 성공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는 정 의원은 언제까지 갈림길을 가게 될까. 추 의원은 “개인적으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만큼, 분열 방식을 철회하고 다시 통합의 원칙으로 돌아온다면 가깝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 의원은 “추 의원이 그분들(구주류)과 무슨 일을 같이 할 수 있겠나. 이쪽(신당)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상대방이 견인되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 의원은 통합신당에서 국민발기인모집단의 책임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추 의원은 민주당을 수습할 비대위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균질한 신당에서의 정 의원의 입지가, 통합모임과 정통모임의 갈등 소지를 안고 민주당에서의 추 의원보다는 안정적인 상태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만 내년 총선까지 두 당의 힘이 팽팽하다면, 두 의원은 총선의 ‘대표 장수’로 맞붙을 수도 있다. 민심이 어느 당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두 의원의 명암도 엇갈릴 전망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진/ 그들은 너무 쉽게 헤어진 것일까. 통합신당 의원총회에서 정동영 의원(오른쪽)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합류한 김부겸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용호 기자)
일단 추 의원의 행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모’의 신기남·천정배·정세균·정동채 의원 등 추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온 의원 대부분이 정동영 의원과 함께 통합신당에 몸을 실었기 때문이다. 추 의원은 지난해 대선 직후인 12월22일 대부분 신당호를 탄 의원 23명과 함께 “지역분열 구도와 낡의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했던 기자회견장에 서 있었다. 추 의원이 ‘통합모임’ 공동대표로, 한때 자신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박상천·정균환 의원 등 ‘정통모임’과 민주당에 남은 현재의 모습은, 그의 정치 입문과 지난 대선 즈음의 활동까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사진/ 지난 18일 추미애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통합파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