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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능력 없는 장관들 해임 건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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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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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고건 국무총리]

9월 중 ‘장관성과관리위원회’ 구성해 업무능력 심사… 청와대와는 코드 아닌 사이클 맞추는 관계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건 국무총리는 지난해 <행정도 예술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다. 행정에 관한 한 달인을 넘어 이제 예술가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일까. 국무총리 취임 6개월을 넘긴 그를 만나 ‘행정예술’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투명’ ‘공정’ ‘시스템’ 같은 고전적인 행정용어들을 술술 쏟아내며 막힘 없이 답변했다. 달인다운 면모다. 그러면서도 미묘한 대목에선 적절한 단어를 고를 때까지 한참을 뜸 들이는 신중함을 보였다. 자유자재로 강약과 완급을 조절해 가히 ‘예술’의 경지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코드가 아니라 사이클을 맞추는 사이’라고 애써 강조한다. ‘개혁 대통령, 안정 총리’라는 일반적인 평가가 아니라 ‘개혁’이라는 코드를 같이하는 총리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그의 ‘욕망’이 읽힌다.

-참여정부의 지난 6개월 동안을 평가해달라

=6개월 전 참여정부가 출범할 당시의 대내외적인 국정환경은 역사상 최악의 조건이었다. 한-미 관계 사상 가장 불편한 관계로 치달았고, 북핵 위기가 고조됐으며, 이라크 전쟁과 사스(SARS) 사태가 설상가상으로 겹쳐 있었다. 또 지난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SK글로벌 사태와 300만명이 넘는 카드 신용불량자 사태가 금융시장을 강타하는 악조건이었다. 거기다 탈권 위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해묵은 사회갈등 구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다. 어렵고 바빴던 6개월이었다. 그런데 한-미 관계,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북핵 위기도 평화적 대화체제인 6자회담이 열리는 상황으로까지 이끌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스 예방 모범국가로 한국을 지정했다. 예전 같으면 금융시장이 외환위기 버금가는 금융위기로 번졌을 텐데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회복세에 있다. 정부출범 초기엔 동시다발로 분출하는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5월20일 이후 총리가 주재하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시스템화해서 일관된 원칙으로 대처해오고 있다. 노사갈등이나 사회갈등이 하나씩 해결돼서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대책 소홀” 시인

-지지율 하락 이외에 아쉬운 점은 없나.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미흡하고 아쉬운 점도 많다. 특히 경제활력 대책을 조금 더 잘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청년실업 대책에 조금 소홀했던 점을 솔직히 시인한다. 가만히 보니 주무부처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총리실에 청년실업특별대책위와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여기서 획기적인 장·단기 청년실업 대책을 세울 것이다.

-최근 법안이 통과된 주5일제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주5일제 시행에 대한 철학은.

=주5일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과제다. 과도기적으로 올 수 있는 부작용에는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주5일제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해주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정부도 분야별 후속대책을 면밀히 세워 추진할 생각이다.

-주가가 오르면서 하반기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번지는 것 같다. 향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우선 4조5천억원의 추경예산을 서둘러 집행 중이다. 이게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리라고 생각한다. 청년실업 대책 외에도 임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감세정책을 통해 기업투자 활성화 조처를 취하고 있다. 또 미국경제 회복세에 힘입어서 3/4분기부터는 조금씩 회복세로 전환되리라 생각한다. 하반기에 회복세로 전환되고 다음해에는 정상적인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본다.

사진/ 고건 총리는 ‘행정의 달인’답게 고전적인 행정용어들을 술술 쏟아내며 막힘없이 답변했다.
-연말까지 어떤 정책에 역점을 두어 추진할 생각인가.

=몇 가지 남아 있는 갈등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하면서 경제살리기에 치중할 생각이다. 범정부적으로 경제살리기에 온 정성을 쏟을 것이다.

-현안 이외에 총리 재임기간 중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1997년 총리 재직 때 시작한 규제개혁이 성과가 있어서 양적으로는 1만4천건의 규제가 7천여건으로 절반쯤 줄었다. 이게 1단계 규제개혁이다. 그런데도 기업이나 시민들은 규제가 없어졌다는 것을 피부로 못 느낀다. 그래서 앞으론 질적인 규제개혁에 역점을 둬 추진할 것이다. 이게 2단계 규제개혁이다. 기본목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위원회’가 되도록 하겠다. 싱가포르나 홍콩 등 경쟁국 수준까지는 가도록 벤치마킹하겠다.

또 하나는 공개·투명 행정시스템을 확고히 구축하는 것이다. 세계투명성기구가 매년 내는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청렴도가 40위다. 현 대통령 임기 중에 20위권이 되도록 하고, 2010년까지는 10위권에 진입하도록 투명한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시간강사제도나 식품안전시스템 등 민생과 직결된 제도들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스스로를 책임총리라고 생각하나.

=현행 헌법하에서 이 용어 자체가 모호하다. 흔히 내각책임제나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책임총리를 생각하며 그 역할을 요구하는데, 현행 헌법하에선 불가능하다. 다만, 현행 헌법하에서 총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헌법상의 규정을 실질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헌법상에 정해진 국무총리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려고 하고, 또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권한은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이다. 이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공식적인 제청권 행사 이전에 실질적인 인선 협의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난번 허상만 농림부 장관 임명 때도 인선과정에 직접 뛰어들어 협의를 했다. 예전엔 제청권이 형식화돼 있었다. 농림장관 제청 때는 ‘국무위원제청서’라는 문서에 사인을 해서 제청권을 행사했다. 앞으로는 문서에 의해서 분명하게 제청권을 행사하겠다. 역대 총리 가운데 문서로 제청권을 행사한 것은 처음이다.

-혹시 함께 일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장관이 있으면 각료에 대한 해임건의 권한을 행사할 생각이 있나.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려면 장관들에 대한 평가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나. 공과를 평가해야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중앙인사위원회와 협의해 장관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곧 제도화할 것이다. 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평가위원회를 만들었다.

-장관의 업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인가.

=그렇다. 부처평가도 관련 있지만 그것과 함께 장관의 평가도 겸하는 것이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장관성과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성과를 심의하는 제도다. 9월 중에 이 시스템을 확정할 것이다.

-장관들 가운데 함께 일하기엔 부적절한 장관도 있나.

=이제 손발을 다 맞춰놨다(웃음). 혼낼 장관들도 벌써 다 혼냈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여론조사에 부정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국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과 토론 통해 의견 조율

-책임총리제 얘기는 청와대쪽과의 정책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불거지는데, 그동안 정책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통령과 견해차는 없었나.

=대미관계나 북핵문제, 노사정책 등 큰 정책 방향에선 대부분 시간을 가지고 조율이 돼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수단에선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워낙 토론을 좋아해서 토론 과정을 통해 모두 조율이 된다.

시민단체가 갈등 흡수하고 소화해야 하는데…

-총리가 양보하는 편 아닌가.

=어, 뭐…. 양보할 때도 있고, 주장할 때도 있고 그렇다. 그걸 양보라고 해야 하나. 배합이 잘 되는 거지(웃음).

-대통령과의 정책조율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

=네이스(NEIS)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국정을 조율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문제가 한참 얽혀 있을 때 내가 문제의 심각성을 대통령께 직접 얘기했더니 대통령께서 ‘앞으론 총리가 그 문제를 수습해달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그 문제를 떠맡아 교총회장단도 만나고 교육감협의회 회장도 만나고 그랬다. 또 주 2회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여는데, 여기엔 관계부처 장관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장과 관계 수석비서관들이 모두 참여한다. 1주일에 두번씩 조정을 하니까 의사소통이 계속된다. 대개의 경우 의사소통이 문제인데, 이젠 소통에 문제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궁합’은 잘 맞는 편인가.

=노 대통령은 아주 표현을 잘하신다. 당선자 시절에 ‘몽돌과 받침대’라고 표현했다. 몽돌은 광물성이고, 받침대는 식물성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과거에도 총리를 지냈는데 그 시절과 견줘 총리의 위상과 권한, 역할이 크게 변한 게 있나.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국정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이에 총리실의 역할도 너무 많아졌다. 그게 제일 큰 차이다. 예전엔 청와대와 총리실의 관계가 수직적이었다. 이젠 역할분담과 협력적 관계다. 역할을 나눠서 협력하는 협업관계다. 나와 청와대는 코드가 아니라 사이클을 맞추는 관계다.

-최근 총리실 1급 조정관 2자리가 차관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총리실의 기능을 강화한 것인가.

=총리실의 인원을 늘려야 하지만 안 늘렸다. 각 부처에서 인원을 늘려달라고 하는데 총리실 인원을 늘리면 각 부처의 요구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고통스럽더라도 참기로 했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장 혼자서 수많은 차관급 회의를 주재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조정관이 대신 해야 하는데 1급인 조정관이 차관급 회의를 소집할 수 없어서 직급만 차관급으로 조정하자고 했다. 그래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6·29 때도 요즘처럼 사회문제가 얽혀 있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이념과 계층간 갈등이 분출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갈등이 잠재해 있어 표출이 안 됐다. 탈권위주의 시대를 맞아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 6년 전 총리시절에 비하면 우리 사회의 볼륨이 2~3배 커졌는데, 사회는 10배 이상 복잡해졌다. 우리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과 단계에서의 성장통(痛)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진사회는 이런 문제를 사회 내부에서 흡수해 해결하는 사회적 해결시스템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걸 만들 겨를이 없었다. 압축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갈등을 중재해서 해결하는 정부시스템도 부재했다. 그래서 정부부터라도 만든 게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다. 이는 우선 당면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이고,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은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는 시민단체들이 이런 갈등을 흡수하고 소화해줘야 한다. 그런데 현 시점에선 오히려 시민단체 자체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민선 서울시장 재직시절엔 시민단체쪽과 교류가 많았는데, 지금은 총리실 차원에서 시민단체와 교류가 있나.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지난 8월27일 취임 6개월에 맞춰 판공비를 공개했다. 총리부임 초기에 시민단체 대표들을 공관으로 초청해 협력을 부탁했다. 그때 건의받은 게 총리산하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총리 훈령으로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만들었고 9월2일 발족했다. 시민단체 인사 등 각계 전문가 17명이 참여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개혁의 주체가 돼야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과거엔 공직사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참여정부는 공무원 스스로가 개혁의 주체가 되라고 호소하고, 공무원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프로세스로 추진하고 있다.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정부혁신위원회에서 정부혁신의 대체적인 방향은 정했고,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 중이다. 이제 공직자들에게 달려 있다. 공직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개혁의 주체가 돼 정부를 혁신하는 개혁작업을 추진하도록 할 것이다.

캠프라는 개념, 나한텐 없다

-공무원들과 직급별로 만나겠다고 했는데.

=이제 막 시작했다. 얼마 전 국무조정실의 기획수석실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 계속할 생각이다. 97년 총리시절엔 어디 갔다오다 불이 켜진 방이 있으면 내려오라고 해서 맥주 한잔 하고 그랬다. 앞으론 더러 이렇게 하겠다.

-‘고 총리 주변엔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배석한 김덕봉 공보수석과 박종구 경제조정관을 가리키며) 여기 있지 않나.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이 갖는 캠프라는 개념이 나한텐 없다. 측근이 없다. 측근을 안 둔다. 공직에 있는 한, 공식조직을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 공직에 있을 땐 절대로 밀실에서 귓속얘기 안 한다. 모든 얘기를 공개적으로 한다.

-때론 외롭지 않나.

=주말에 테니스모임에 가면 회원들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한다. 매일 가는 동네 목욕탕에서도 여러 얘기를 듣는다.

-국민들 눈엔 대통령과 검찰이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엄격히 보면 검찰청도 총리가 통활하는 법무부의 외청이라 할 수 있는데, 대통령과 검찰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검찰을 청와대에서 독립시켰다. 정치에서 검찰을 독립시키는 것을 솔선수범했다. 검찰은 앞으로 독자적인 권력을 갖게 됐다. 모든 권력은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얘기는 그런 얘기일 것이다. 행정부가 국회에 의해 견제받듯이, 검찰도 정치로부터 독립해서 권력이 막강해질수록 견제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견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관한 얘기일 것이다.

-감찰권을 말하는 것인가.

=꼭 그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도 포함할 수 있다.

-대검에 있는 감찰 기능을 법무부로 이관하는 데 대한 견해는.

=법무부 장관한테 물어봤더니 검토를 좀더 해봐야겠다고 하더라.

대담= 배경록 편집장 peace@hani.co.kr
정리=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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