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향응 파문, 인사 개편과 총선 출마자 사퇴 등으로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이 1주일 일정으로 여름 휴가를 떠난 8월4일, 청와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문희상 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 청와대 고위 인사들도 잇따라 휴가 일정을 잡아놓았지만, 누구 하나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는 눈치다. 청와대 안팎에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일상과 관련된 업무를 챙겨온 양길승(47) 제1부속실장 향응 파문이 청와대를 괴롭히고 있다. 6월28일 밤, 문제의 술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오원배(46)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은 시종일관 “2002년 대선 때 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발벗고 함께 뛰었던 지역 동지들을 격려하는 친목 모임이었다”고 해명한다.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7월31일 언론 보도를 접한 뒤, “양 실장이 선거 때 고생한 사람들과 술 몇잔 함께 마신 게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될 일이냐”며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언론’을 겨냥했다. 몇몇 언론이 양 실장 파문을 김영삼 정부 시절 거액의 뇌물을 받고 구속된 장학로 부속실장 수뢰 사건에 빗대고, 청와대 내부의 특정 대학 인사들이 8월 인사 및 조직개편을 앞두고 양 실장을 제거하기 위해 이번 음모를 꾸몄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불만은 더욱 고조됐다.
언론에 대한 불만 고조
그러나 최근까지 조세포탈 및 미성년자 윤락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온 청주 ㄹ호텔 소유주 이아무개(50)씨가 술자리에 동석한 배경과 이씨가 양 실장에게 실제 수사무마를 청탁했는지 등 핵심 쟁점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자, 청와대는 고민에 빠졌다. 특히 8월3일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56)씨와 청주지역 건설업자 한아무개씨 등이 당시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자 몹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자칫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도덕성 시비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오씨가 그동안 “노 대통령 동창인 정씨와 건설업자 한씨는 당시 술자리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계속한 배경에 대한 의혹도 커지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일단 노 대통령과 정씨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소문에 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3일 “현재 민정수석실 특별감찰팀이 강도 높은 재조사를 벌이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라는 원론만 내놓았다. 청와대는 그동안 4일께 감찰팀 조사 결과를 마무리해 노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하고, 곧바로 문희상 비서실장 주재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양 실장 사표수리 여부를 최종 결론 내겠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이번 파문에 접근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감찰팀의 조사 결과 당시 술자리 참석자들의 진술이 상당부분 엇갈리는 등 미심쩍은 부분이 돌출하면서 진상 규명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4일 “술자리 참석자들 사이에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조사가 예정보다 길어질 것 같다”며 “하루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3일 밤 노 대통령에게 일단 중간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총선 출마 희망자는 사실상 ‘말년’
상황이 예상보다 복잡하게 전개되자 청와대가 검찰수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양 실장의 움직임을 몰래 찍은 비디오 방영을 계기로 불거진 ‘음모론’에 대해 검찰이 확실하게 파헤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조사권도 없는 청와대가 자체 감찰을 통해 이번 논란을 종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에서 관련자들을 집중 조사하고 있으니, 일주일쯤 뒤에 뭔가 나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번 파문이 어떤 식으로 정리되든 청와대 인사들의 정치적·도덕적 판단력에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청와대 정책실 직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새만금 간척지를 헬기로 시찰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져 3명의 비서관이 전격 경질된 지 겨우 3일 뒤에, 그것도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제1부속실장이 문제의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헬기 시찰 파문 때 노 대통령이 ‘엄격한 공사구분과 분별력 있는 행동’을 그렇게 당부했는데,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사람이 곧바로 이런 말썽에 연루되다니 할 말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하소연했다.
그러지 않아도 청와대 분위기가 여러 가지 이유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8월 말로 예고된 인사 및 조직개편도 있고, 2004년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8월4일 현재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8월 말 인사 때 ‘자진사퇴’를 희망한 사람은 5명 정도로 파악됐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낮은 지지율, 민주당에서 추진 중인 신당창당 작업의 불확실성 등으로 한때 20명선에 이르렀던 출마 희망자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청와대는 이들의 처신과 후속 인사 문제 등으로 적지 않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총선 출마 희망자는 “나는 사실상 말년”이라며 “청와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희망자는 “8월 초 인사 방침에 따라 준비를 해왔는데, 8월 말로 인사가 늦어져 좀 번거롭게 됐다”며 “선거 준비와 청와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남아 있는 인사들도 마음이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애초 조직 및 인사개편 방향에 대해 “총선 출마자에 따른 결원과 보직 이동 희망자에 대한 내부 조정에 국한되는 소규모 인사”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윤태영 대변인은 “총선 출마자 외에 5~6명 정도 추가 이동이 있을 것”이라며 “고령화 사회 대비책 마련 등 미래 비전을 전담할 비서관 직책도 신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사폭이 넓어지는 만큼 일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논쟁적 발언도 불거져
<동아일보>의 굿모닝시티 뇌물수수 정치인 실명보도와 관련된 청와대 386 음모론의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기자에게 그런 내용을 말해준 청와대 인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안에서는 “우리 내부에서 누군가 입을 잘못 놀린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8월 인사 때 반영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 떠돈다.
한편, 한동안 말수를 줄이는 듯했던 노 대통령도 최근 또다시 논쟁을 촉발하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23일 민원담당 공무원들과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신속한 민원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개00”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법인세 인하 방침을 시사하는 듯한 말도 비판을 자초했다. 김진표 재경부 장관은 곧바로 “법인세 인하는 없다”고 못박았다. 어쨌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발언으로 정부의 주요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8·15 경축사를 계기로 노 대통령이 새로운 국정 비전을 제시하고, 국정운영의 시스템도 본궤도를 찾게 될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는 경축사에서도 뭔가 똑 부러지는 해법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 분위기가 점차 커지고 있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 정치부 skshin@hani.co.kr

사진/ 뒤숭숭한 청와대.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일상과 관련된 업무를 챙겨온 양길승 실장 향응 파문이 청와대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조세포탈 및 미성년자 윤락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온 청주 ㄹ호텔 소유주 이아무개(50)씨가 술자리에 동석한 배경과 이씨가 양 실장에게 실제 수사무마를 청탁했는지 등 핵심 쟁점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자, 청와대는 고민에 빠졌다. 특히 8월3일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56)씨와 청주지역 건설업자 한아무개씨 등이 당시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자 몹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자칫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도덕성 시비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오씨가 그동안 “노 대통령 동창인 정씨와 건설업자 한씨는 당시 술자리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계속한 배경에 대한 의혹도 커지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일단 노 대통령과 정씨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소문에 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3일 “현재 민정수석실 특별감찰팀이 강도 높은 재조사를 벌이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라는 원론만 내놓았다. 청와대는 그동안 4일께 감찰팀 조사 결과를 마무리해 노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하고, 곧바로 문희상 비서실장 주재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양 실장 사표수리 여부를 최종 결론 내겠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이번 파문에 접근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감찰팀의 조사 결과 당시 술자리 참석자들의 진술이 상당부분 엇갈리는 등 미심쩍은 부분이 돌출하면서 진상 규명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4일 “술자리 참석자들 사이에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조사가 예정보다 길어질 것 같다”며 “하루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3일 밤 노 대통령에게 일단 중간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총선 출마 희망자는 사실상 ‘말년’

사진/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6월28일 충북 청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연합)

사진/ 음모론에 휘말린 청와대 보좌진. 왼쪽부터 양길승 실장, 이광재 실장, 박범계 비서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