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로 종착역에 다가서는 신당 논란… 캐스팅보트 쥔 중도파의 향배는?
“법대로 하자.”
8월 하순께로 잡힌 민주당 전당대회의 의미를 간명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전대는 신·구주류간 타협의 결과물이 아니라 결렬의 부산물이다. 조정과 타협 등 정치적 해결이 한계에 부닥쳤으니 ‘법(당헌)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대의원들의 뜻을 물어보자는 것이다. 양쪽이 더 이상 절충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어느 쪽이 더 힘이 센지를 겨루는 최후의 수단에 호소하는 셈이다.
어쨌든 지난해 12월 대선 이후 7개월째 지루하게 이어진 신당 논란이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는 느낌이다. 최후의 해결책이 모색된 만큼, 어느 쪽으로든 결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도 8월 하순 전대는 마지노선이다. 9월 들어 16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신당 논의의 진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전대 열리지 못하면 폭발할 것
하지만 넘어야 할 봉우리가 겹겹이다. 전대의 의제와 절차, 중립적 관리기구 구성 등 쟁점에 대한 가르마를 타지 못하면 전대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전대가 열리지 못하면 신당 논란이 극단적이고 폭발적인 방법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예상된다. 물이 비등점을 넘기면 끓어넘치는 이치와 같다.
신당 논란이 끝내기 수순에 접어든 것일까. 민주당 내 여러 분파의 움직임이 긴박하고 분주해졌다. 신주류와 구주류, 중도파가 각각 하루에도 두어 차례씩 모임을 연다. 세규합을 위한 모임도 잦다.
#장면1
8월1일 오후 여의도의 한 음식점. 한화갑 전 대표와 추미애·조순형 의원 등 중도파 중진 3인이 마주 앉았다. 한 전 대표가 마련한 자리다. 추 의원은 “아전인수식 해석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당의 진로를 걱정하는 자리였다”고 모임의 성격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신주류가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신주류에 대한 경계심을 보였다.
#장면2
7월 중순 국회 의원회관 328호 김근태 의원실. 김 고문이 신주류의 핵심인 천정배 의원과 마주 앉았다. 천 의원이 논의할 게 있다며 찾아와 마련된 자리였다. “저희들이 김 선배하고 따로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천 의원이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즉, 신주류의 핵심인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선도탈당’을 감행해 김 고문과 따로 행동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한 것이다.
두 장면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민주당 내 신당 논란의 흐름을 읽는 키워드를 제공한다. 그것은 ‘중도파의 선택’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중도파가 주도하고 있다. 신당론의 해법이 전당대회로 모아진 것도 중도파의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신주류와 구주류가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의 과반을 점한 중도파의 지론인 전당대회 해법이 관철된 것이다. 현재 당내 세력 분포는 중도파 54명, 신주류 모임 참석 의원 30여명, 구주류 모임 20여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중도파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신당론의 향배가 결정된다.
중도파도 두 가지 흐름으로
중도파가 신당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것은 지난 7월16일 54명이 ‘분열 없는 통합신당론’에 서명한 이후다. 중도파는 신주류와 구주류 양쪽을 소수의견으로 규정하고 전당대회를 중도파의 힘으로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전대를 둘러싼 의견절충 과정에서 신주류와 구주류의 의견이 충돌할 경우 중도파가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힘으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중도파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은 김근태 고문. 중도파 서명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인물도 김 고문과 가까운 심재권 의원이었다. 김 고문은 ‘개혁적 통합신당론’을 견지한다. 민주당 외부에도 신당추진기구를 만들어 민주당과 외부세력이 함께 통합신당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바깥에 신당추진기구를 만들지 않으면 외부세력이 통합신당에 들어올 명분이 없으니 그들이 당당하게 합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이 수동적인 리모델링 노선을 고집해서(국민 눈에는 기득권 안주, 새 정치 외면으로 비칠 수밖에 없음) 민주당 바깥의 신당과 따로 가게 되면 범여권 지지층 분열로 이어져 총선 참패로 이어질 것임.” 김 고문이 7월31일 중도파 기획위원 모임에서 배포한 문건에 나오는 내용이다. 요컨대 민주당이 외부 신당기구 구성 등 공세적인 통합신당론을 들고 나가야 명분을 획득해 신당세력의 분열을 막고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중도파가 전부 김 고문의 이런 견해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도파 내부엔 두 가지 결이 있다. 중도파의 핵심 구호인 ‘분열 없는 통합신당’ 중에서 ‘분열 없는’에 방점을 찍는 쪽이 있고, ‘통합신당’을 강조하는 쪽이 있다. 전자는 구주류의 ‘리모델링 노선’과 궤를 같이하고, 후자는 신주류의 ‘신당노선’과 같은 맥락이다. 김 고문은 ‘통합신당’을 강조하는 쪽에 가깝다.
‘분열 없는’을 중시하는 쪽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당 내부의 개혁안을 확정짓고 당 바깥 신당세력과의 통합논의는 정기국회 이후인 12월쯤으로 미루자고 주장한다. 이른바 ‘2단계 통합신당론’이다. 전당대회를 둘러싼 기세싸움의 와중에 중도파가 두 가지 흐름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도파에서 우군을 찾아라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화갑 전 대표의 움직임이다. 그는 전당대회 해법이 결정된 직후 통합신당론을 ‘보이지 않는 세력의 신탁통치’ ‘개혁신당론과 다를 바 없는 노무현 코드의 당을 하자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당내에선 통합신당론에 동조하는 듯하던 한 대표의 태도 변화가 김근태 고문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김 고문이 외부세력과의 통합을 중시하는 신주류와 같은 길을 걷는다고 판단한 한 전 대표가 김 고문을 겨냥해 펀치를 날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전 대표가 8월1일 추미애·조순형 의원을 만난 이유도 분명해진다. 한 전 대표가 중도파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두 중진 의원을 우군 확보 차원에서 설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는 당 개혁안만 추인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당 문제를 위임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외부세력과의 통합 문제를 차후의 과제로 미룬다는 점에서 한 전 대표의 주장은 구주류의 리모델링 주장과 가까운 편이다.
신주류쪽도 내심 전당대회를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내 다수인 중도파가 전대를 희망하는 이상 이를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신기남 의원은 이를 ‘인내와 관용’이라고 표현했다. 중도파가 ‘분열 없는 통합신당’을 수용한 이상, 리모델링이 아닌 신당론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전당대회든 무엇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신주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때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양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당을 한다면 모든 것을 다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이 김근태 고문을 찾아가 ‘선도탈당’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도 중도파와 코드 맞추기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신주류가 8월1일 ‘민주당 해체 불가, 이념정당 지향 불가, 인적청산 불가’ 등 이른바 ‘신당추진 3원칙’을 밝힌 것도 구주류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중도파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신호탄이다. 정동채 의원은 3원칙에 대해 “비주류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중도파로부터 구주류를 떼어내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신주류 핵심들은 구주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전당대회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구당위원장의 70%가 통합신당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구주류의 패배가 확실한 싸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신주류는 전당대회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하다. 신 의원은 “전당대회에만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나름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천·신·정’ 등 신주류의 핵심 의원들은 말을 아끼며 행동을 자제해왔다. 자신들의 선도탈당론이 당내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 탓도 있지만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는 측면도 있었다.
구주류가 시간끌기 전술을 편다?
구주류는 전대의 안건을 ‘당 해체냐, 사수냐’를 묻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하면서 전대 준비의 공정성 문제를 들어 신주류쪽인 이상수 사무총장의 사퇴를 제기하는 등 쟁점을 다각화하고 있다. 신주류쪽이 “구주류가 속내로는 전당대회를 할 의지도 없으면서 ‘시간끌기 전술’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제 어느 쪽이든 전당대회를 거부하는 쪽이 수세에 몰리게 됐다. 무산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평화적인’ 신당론의 해법이 나올지, 아니면 전당대회 자체가 무산되면서 분당이나 탈당 등 폭발적인 방법으로 치달을지는 당무회의 등 복잡한 논의 이후에야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신당 논의 방향은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파 내부의 이견이 어떤 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얽히고 설킨 신당 논란을 매듭지을 최후의 해법으로 떠오른 전당대회조차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이 7월16일 기자회견을 열어 ‘분열 없는 통합신당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전당대회는 신당논의의 마지노선이다.(한겨레 김봉규 기자)

사진/ 4월29일 민주당 내 신주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신당 창당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사진/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이 7월6일 신당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중도파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신당론의 향배가 결정된다.(한겨레 김봉규 기자)

사진/ 5월21일 민주당 구주류의 정균환 의원(맨 오른쪽)이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구주류 의원 모임에 뒤늦게 참석해, 먼저 와 있던 장재식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한겨레 임종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