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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영남후보 뜨면 재집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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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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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체제로 대선 치르면 또다시 ‘싹쓸이’… 개헌과 함께 당이 인물들을 키워줘야

인터뷰/ 김중권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김중권 최고위원은 8월30일의 전당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경우로 꼽힌다. 총선 낙선의 좌절을 딛고 2위 이인제 후보에 불과 93표 적은 3769표로 당당히 3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전국정당화와 영남대표론의 깃발을 들고 영·호남 등을 돌며 활발하게 특강 정치를 펼치고 있다. 최근 ‘싹쓸이 정치’ 극복을 위해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한 그를 10월19일 만났다.


-영·호남간 지역감정이 현 정부 들어 더 악화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할 때는 인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영남 사람이 배제된다는 인상을 안 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요직에 영남인이 많이 기용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받던 호남 지역 사람들이 조금 상승하고 영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니까 (영남인들이) 체감상으로는 확 느꼈다.

-현 정권의 책임은 없나.

=동서대립을 해소하자는 원론에는 모두가 찬성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우리는 경상도에 원군이 없었다.

-영남인사를 중용했다지만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영남인들은 감동한 것같지 않다.

=영남권의 65석 모두를 잃었지만 괄목할 변화가 있었다. 나만 해도 16표 차이로 떨어졌는데 과거 같으면 민주당 간판으로 그렇게 근접할 수 없었다. 그 밖에 2천, 3천표 차이로 근소하게 떨어진 민주당 후보가 많았다. 15대 총선 때 국민회의 지지도와 비교해보면 득표율이 상승했다.

-비서실장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국고지원을 추진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나.

=박 전 대통령이 민주와 인권에서 실책을 저질렀지만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전 국민의 존경은 못 받아도 상당수 사람들에게 전직 대통령 중 1위로 꼽히지 않나. 우리 대통령은 동서화합이 신념인데, 이를 위해서는 영남 사람들의 자존심과 특장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박 전 대통령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상당한 결단이라는 설명도 원론적으로 (대통령에게) 드렸다.

-기념사업을 추진해온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대통령 면담을 주선했다고 하는데.

=맞다. 신현확씨가 대통령을 독대한 것이 처음이었다. 신씨가 면담한 뒤 “늦게 만났지만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는 처음 봤다”고 말하더라.

-기념하고픈 사람들의 돈으로 하든지, 아니면 김 대통령이 자기 사재를 털지, 왜 국고를 지원하느냐는 비판이 있다.

=그런 비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국고의 일부 지원을 받고 상당 부분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민간 모금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전직 대통령을 기념하는 것은 좋지만 특정인만이 아니라 역대 대통령을 함께 기념하는 사업을 하자는 대안도 나오고 있다.

=필요에 따라 그런 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결자해지 차원에서 직접 나서 논란을 해소하면 어떤가.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다.

-일각에선 박정희 기념사업을 지원했지만 영남에서 표가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라고도 말한다.

=민심은 화석처럼 굳어진 것은 아니며 변화하는 것이다. 한 가지 일만 갖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 최고위원은 정권 초기 여권의 ‘동진정책’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동진정책으로 요약되던 범영남권 화해정책의 공과를 스스로 평가해달라.

=동진정책이란 말은 신문에서 만든 용어이며 잘못된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동서화해이다. 공이라면 국민화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동서화합을 하겠다는 데 과오가 있을 수 있겠나.

-동서화해를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쪽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었다.

=나도 생각은 다르지 않다. 민주화운동세력의 결집이건, 국민화합이건 다를 게 뭐 있나. 생각이 같은 사람은 다 모여야 한다. 인색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최근 YS는 ‘반김정일, 반김대중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다고 배제할 이유는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한 가지 입장에서 만날 수 있다.

-YS는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한참 웃은 뒤)참 이해할 수 없더라.

-얼마 전까지 국정 난맥상의 원인으로 김 대통령이 모든 것을 혼자 챙기려는 게 문제라는 비판이 있었다.

=예컨대 경제정책의 경우 경제부총리가 조정해야 하는데 경제부총리가 폐지됐다. 그래서 재경부 장관이 통할하려 하는데 같은 장관급이다보니 어려움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사실과 달리 대통령이 혼자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정부조직법을 고쳐 경제부총리를 부활하려 하고 있다.

당정간 문제는 사무관 등 초동단계부터 심도있게 실질적으로 당과 협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 수도권 신도시 문제처럼 정부가 안을 다 만들어놓고 장관과 정책위의장간에 하려면 되겠느냐. 앞으로 이것을 매끄럽게 조정해야 한다.

-비서실장 할 때의 보좌원칙은.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역할이 부각된 것은 세계 대공황 이후의 일이다. 장관들의 힘만 갖고 안 되는 위기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참모조직에도 많은 기능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통령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참모들의 자문을 받아 중요한 흐름을 결단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참모들이 사명감과 우수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권 초기에 청와대 인력 충원 등을 놓고 여권 내 구주류 대 신주류간 갈등이 있었고, 당시 김 최고위원은 신주류의 정점처럼 비쳤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청와대는 일을 배우러 오는 게 아니라 첫날부터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구성되는 청와대이기 때문에 나도 충원의 원천은 당에 있다고 봤다. 다만 당에서 사람을 보내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라고 한 것인데 일부 감당하지 못하니까 거기서 당 또는 동교동과 괴리가 생겼다. 신주류니 구주류니 하는 이야기도 거기서 나왔다. 그러나 당시 김중권이 자기 사람 심으려 한다고 했는데 나는 한 사람도 심어본 일이 없다.

-김 최고위원의 비서실장 퇴임 이후 청와대와 민주당이 좀더 동교동 일색으로 채워졌다.

=유능한 사람이라면 동교동이면 어떻고 서교동이면 어떤가.

-지금 현직에 있는 분들이 동교동 중에선 유능한 분들이라고 보나.

=글쎄…. 그렇게 평가됐으니 그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최근 주장했다. 언제 어떻게 하자는 건가.

=개헌은 동서화합을 위해 필요하다. 이런 체제로 대선을 치르면 또다시 싹쓸이가 이뤄지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해야 한다. 이 마당에 소모적인 논쟁을 펴선 안 된다.

-기왕이면 2002년 대선 이전에 개헌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 점은 있다. 그러나 개헌을 하려면 국회 3분의 2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은 어느 당도 과반수를 못 갖고 있다. 내 이야기는 원론적 차원에서 앞으로 그렇게 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만나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개헌 문제를 대통령과 의논한 적은.

=한번도 없다. 순전히 동서화합을 위한 내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첫째로 2002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민주당은 주자가 떠오르지 않은 반면에 야당은 이회창 총재로 생각되는 상황이다. 주자가 누가 나와야 국민이 선호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둘째, 영남에서 의석을 못 얻어 전국적인 기반이 없다고 여기는데 앞으로 동서 협력을 통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경상도 사람들이 ‘아 우리 지역의 대표가 나왔구나’라는 상황이 된다면 물밀듯이 지지할 것이다.

-영남후보론 이야기인가.

=김윤환 민국당 대표가 최근 YS를 만난 이야기를 내게 전해줬다. 김씨가 “다음 정권 주자는 영남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YS가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지금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김 최고위원은 재집권의 핵심조건으로 동서화합을 말하는데 이를 위해 민주당이 해나가야 할 일은.

=당이 인물들을 키워야 한다. 피날레인 2002년 1월 대선후보 선출 전까지 서로 의지하며 키워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과 당원들이 관심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영남 대표성을 두고 노무현 장관과 경쟁관계 아닌가.

=잘 모르겠다. 영남 대표가 한명일 필요는 없다.

-김 대통령이 2002년 1월에 대선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말하자, 이인제 최고위원은 경선레이스할 시간이 적고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며 너무 빠르다고 했다.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이스는 반드시 몇달씩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최고위원들이 실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레이스 아니냐. 그때가서는 투표만 한면 된다. 그해 6월에 월드컵이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를 4월쯤으로 앞당기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최고위원도 그때 경쟁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웃으며)잘 모르겠다.

-자신의 강점과 취약점을 꼽아본다면.

=당내에 야당 총재로서의 DJ를 모셔본 사람은 많지만 여당 총재이며 대통령으로서의 DJ를 모셔본 사람은 나뿐이다. 당의 문제점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나는 그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취약점은.

=전당대회에서 꽤 득표를 했지만 당내에 아직 뿌리가 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국민적 지지는.

=(웃으면서)여러분들이 판단해달라.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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