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파문에 바람 잘 날 없어 속앓이… 자율 시스템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청와대 직원들의 잇단 기강해이 파문을 바라보는 청와대 내부 정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단 “쏟아지는 비판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며 “반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고개를 숙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청와대 당직자 2명이 잠에 빠져 심야에 걸려온 노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못한 일(5월13일)부터 청와대 정책실 간부들의 가족동반 새만금 간척지 헬기시찰(6월 6일), 청와대 전속 사진사의 국정원 핵심간부 얼굴사진 유출(6월20일) 등 큼직큼직한 사고에 대해 변명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숨돌릴 틈 없이 계속되는 청와대발 사건·사고에 춘추관 출입 기자들마저 “종로경찰서 형사계를 출입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를 내뱉는 상황에 대한 나름의 모범답안인 셈이다.
“여기가 청와대인가 종로경찰서인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조재희(정책관리비서관), 정명채(농어촌대책태스크포스 팀장), 박태주(노동개혁태스크포스팀장) 등 3명의 비서관급이 한꺼번에 경질되는 계기가 된 새만금 가족동반 헬기시찰 사건의 발생과 처리 과정은 현재의 청와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 정책실 직원들의 자발적인 가족모임으로 기획됐다는 새만금 시찰은 전라북도와 농어촌기반공사 등의 전폭적인 편의제공 속에 추진됐다. 그러나 문희상 실장은 물론, 직속 상관인 이정우 정책실장조차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 하루 전인 6월5일에야 다음날 노 대통령을 수행해 일본을 방문할 이정우 정책실장에게 보고됐다. 이 실장은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답했고 청와대 정책실 공식행사로 격상됐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그에 걸맞은 상황판단이나 처신을 못한 채, 여전히 가족여행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사태가 잇따른 데는 청와대 내부의 온정주의적 태도와 책임 떠넘기기도 한몫했다. 지난 5월 노 대통령 미국 방문기간에 ‘취침 중’이었던 당직근무자에 대해 일벌백계로 다스려 내부 기강을 바로잡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자들에게는 비서실장의 가벼운 경고만 내려왔다. 밤샘 당직근무를 해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하는 청와대의 근무환경이 빚어낸 사고라는 이유였다. 청와대는 대신 2개였던 당직실 침대를 1개로 줄이고, 당직 책임자를 비서관급으로 격상시키는 등 후속대책 마련에 힘을 쏟았다. 새만금 헬기시찰 파문에 대한 뒤처리는 훨씬 심각했다. 6월6일 새만금 시찰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지역의 비판 여론과 제보가 접수됐고, 즉각 사실 조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출발 하루 전날 이정우 정책실장 지시에 따라 공식행사로 전환돼 동반이 예정됐던 가족을 배제하지 못했다는 논리에 근거해 주의 조처로 봉합됐다. 결국 6월24일 한 공중파 방송사가 부부동반 헬기시찰 장면을 상세히 보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정책실 직원들이 물의를 빚어 주의조처했다”는 간단한 내용만을 보고받았던 노 대통령은 뒤늦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부인들과 함께 헬기에 올라타는 청와대 직원과 새만금 사업 설명회장을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목격하고 격분했다. 노 대통령은 한밤중에 문희상 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등을 관저로 긴급소집해 “어떻게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이런 행태가 일어날 수 있느냐”며 분개했고, 청와대는 결국 “한번 징계한 사안을 다시 징계할 수 없다”던 태도를 하루 만에 바꿨다. 온정주의 만연… 언제까지 실험인가
국정원 간부 사진 유출사건 처리 과정도 온정주의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는 전속 사진사인 서아무개(7급)씨를 직권 면직시키고, 홍보수석과 직속 행정관에 대한 경고로 모든 조처를 끝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서씨의 개인적 실수 성격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들이댔다. 그러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이 국가기밀인 국정원 사진 유출 사실을 기자들이 의문을 제기할 때까지 무려 39시간 동안 몰랐던 현실에 비춰볼 때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깊은 속내는 반성과 함께 억울한 심경이 교차한다.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인사들은 최근 상황을 “강력한 규율과 내부 통제로 운영되던 과거의 청와대 시스템을 자율적인 체계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이라고 규정한다. 한 핵심 관계자는 “분명 우리가 잘못했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큰 틀과 기조는 외면한 채, 어느 조직에서나 운영 초기에 발생하는 개별 구성원의 실수를 확대해 적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환경도 문제”라고 꼬집으며 “시스템이 정착될 때까지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최근 파문을 획일적 기준과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과거정권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나, 조직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노 대통령과 참모들의 ‘문화적 실험’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최근 모습에서는 과거 정권과 다른 새로운 문화적 코드와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데 따른 과도기적 상황이 자주 엿보인다.
문민정부 시절 상도동 직계, 국민의 정부 시절 박지원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핵심참모 등 청와대 안에 뚜렷한 실세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청와대 내부의 조직과 업무 전반을 관장하며 규율도 다잡았다.
현재 청와대 안에는 과거 정권에서처럼 막강한 힘을 행사하며 내부 규율을 다질 수 있는 이른바 ‘완장부대’가 없다. 물론 노 대통령과 10여년 이상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온 386 참모들은 존재한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윤태영 대변인 등 적지 않은 386 참모들이 요직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젊고, 조직 전체를 꿰뚫고 통괄할 만한 정치적·행적적 경험이나 연륜을 갖추지 못했다. 더욱이 이들은 과거 노 대통령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하고,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에 ‘경선캠프’를 가동하면서도 분권과 자율을 중시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갖춘 다양한 인사들이 한데 어우러진 거대조직 청와대에서는 이런 분권과 자율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자율적인 일처리”를 외치지만, 한켠에서는 “할 일이 없다”거나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손을 놓고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율·분권도 나름의 구심점이 있어야
노 대통령의 한 386 참모는 잇따른 기강해이 사태에 대해 “경선캠프 시절에는 서로 지시하거나 강제하지 않아도 모두 무슨 일을 하는지, 또 무엇이 정말 시급한지 알고 스스로 움직였다”며 “지금 청와대는 그런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 노 대통령이 내건 자율적 운영시스템은 오히려 기강해이와 방종으로 흐르는 기미마저 보인다.
청와대 전체를 총괄하는 명실상부한 2인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명목상 청와대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은 문희상 비서실장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문 실장은 “나 스스로 권한을 독점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말할 정도로 분권과 자율을 강조한다. 청와대 조직 운영의 기본 그림도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보좌관 ‘3두마차’ 체제로 구상됐다. 그러나 이들이 원활하게 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고, 자율과 분권의 조직 원리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 정치부 skshin@hani.co.kr

사진/ 청와대의 기강해이 파문은 단순한 해프닝일 뿐인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잇단 사고에 격분하고 있다.(강재훈 기자)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조재희(정책관리비서관), 정명채(농어촌대책태스크포스 팀장), 박태주(노동개혁태스크포스팀장) 등 3명의 비서관급이 한꺼번에 경질되는 계기가 된 새만금 가족동반 헬기시찰 사건의 발생과 처리 과정은 현재의 청와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 정책실 직원들의 자발적인 가족모임으로 기획됐다는 새만금 시찰은 전라북도와 농어촌기반공사 등의 전폭적인 편의제공 속에 추진됐다. 그러나 문희상 실장은 물론, 직속 상관인 이정우 정책실장조차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 하루 전인 6월5일에야 다음날 노 대통령을 수행해 일본을 방문할 이정우 정책실장에게 보고됐다. 이 실장은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답했고 청와대 정책실 공식행사로 격상됐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그에 걸맞은 상황판단이나 처신을 못한 채, 여전히 가족여행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사태가 잇따른 데는 청와대 내부의 온정주의적 태도와 책임 떠넘기기도 한몫했다. 지난 5월 노 대통령 미국 방문기간에 ‘취침 중’이었던 당직근무자에 대해 일벌백계로 다스려 내부 기강을 바로잡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자들에게는 비서실장의 가벼운 경고만 내려왔다. 밤샘 당직근무를 해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하는 청와대의 근무환경이 빚어낸 사고라는 이유였다. 청와대는 대신 2개였던 당직실 침대를 1개로 줄이고, 당직 책임자를 비서관급으로 격상시키는 등 후속대책 마련에 힘을 쏟았다. 새만금 헬기시찰 파문에 대한 뒤처리는 훨씬 심각했다. 6월6일 새만금 시찰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지역의 비판 여론과 제보가 접수됐고, 즉각 사실 조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출발 하루 전날 이정우 정책실장 지시에 따라 공식행사로 전환돼 동반이 예정됐던 가족을 배제하지 못했다는 논리에 근거해 주의 조처로 봉합됐다. 결국 6월24일 한 공중파 방송사가 부부동반 헬기시찰 장면을 상세히 보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정책실 직원들이 물의를 빚어 주의조처했다”는 간단한 내용만을 보고받았던 노 대통령은 뒤늦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부인들과 함께 헬기에 올라타는 청와대 직원과 새만금 사업 설명회장을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목격하고 격분했다. 노 대통령은 한밤중에 문희상 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등을 관저로 긴급소집해 “어떻게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이런 행태가 일어날 수 있느냐”며 분개했고, 청와대는 결국 “한번 징계한 사안을 다시 징계할 수 없다”던 태도를 하루 만에 바꿨다. 온정주의 만연… 언제까지 실험인가

사진/ 청와대에 조직원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2월23일 청와대 비서관 내정자들이 워크숍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