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7월엔 뛰쳐나가리라”

465
등록 : 2003-06-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집단탈당 현실화되나… 6월26일 전당대회 결과가 변수

“이르면 7월 초, 늦어도 7월 중에는 모든 일이 정리될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나가면 나머지 6명은 도덕적 양심상 함께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가면 함께 간다.” 조만간 한나라당을 탈당할 것으로 거론된 한 의원은 개혁파 내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머지않아 진보성향 의원들의 집단탈당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불발된 김홍신 의원의 ‘신호탄’

사진/ 지난 3월에 열린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국민속으로’ 발기인 모임.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 대다수가 탈당 움직임에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이용호 기자)
함께 움직일 것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홍신·김영춘·서상섭·안영근 의원 등 7명. 대선 이후 당내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던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 10명 가운데 원희룡·이성헌·조정무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이다. 대부분 재야·운동권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김부겸 의원이 지구당 당직자들에게 탈당 의사를 밝힌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 이들이 6월26일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을 집단 이탈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예견된다.


원래 탈당 1호는 전국구인 김홍신 의원으로 거론됐다. 지난 6월10일 여의도 63빌딩에서는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준비모임’(신당추본)과 ‘국민의 힘’, ‘희망네트워크’ 등 그동안 각개약진해온 범개혁진영이 단일신당 추진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이 행사를 전후로 김홍신 의원이 탈당을 결행해 ‘정치권 빅뱅’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국민의 힘’은 김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을 환영하기 위해 행사장 근처에 호프집까지 예약해놨다. 실제로 민주당 신기남 의원과 개혁당 김원웅 의원이 막후에서 김홍신 의원과 탈당 문제를 놓고 접촉했던 흔적은 확인된다. 그러나 김 의원의 탈당은 불발됐고, 환영행사를 준비했던 ‘국민의 힘’은 호프집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전국구인 김 의원의 탈당은 곧바로 의원직 상실을 의미한다. 고민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대신 김부겸 의원이 이날 행사에서 “신당에 동참할 의지가 있다. 저도 말석에서 따라가겠다. 일단 시작만 하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발언의 수위를 한껏 올렸다.

이후에도 탈당을 예고하는 듯한 기류가 속속 포착됐다. 6월12일 김원웅 의원 후원회에서 이부영·서상섭 의원이 의미심장한 축사를 했다. 이 의원은 “김원웅 의원의 판단이 옳았다. 양김 분열에 덩달아 분열했던 민주세력이 이제 하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탈당한 김원웅 의원의 판단이 옳았다는 얘기의 뜻은 분명했다. 이 의원은 김 의원의 탈당을 누구보다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서 의원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깨져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 정치 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김부겸 의원은 고민을 나눠온 외곽 인사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털어놨고, 18일 지구당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탈당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숱하게 만나며 고민해온 진보성향 의원들

사진/ ‘6·10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함께한 여야 의원들. 민주당 내 신당논의가 주춤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내 개혁파 의원들의 주도적인 신당 추진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나라당 진보성향 의원들은 대선 패배 이후 숱한 만남을 통해 고민을 공유해왔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지구당 사정도 달랐지만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별 이의가 없었다. 정태근·고진화·김성식·박종운씨 등 생각이 비슷한 원외 지구당위원장들과도 고민을 나눴다. 당 밖 신당추진 세력들과의 교감도 활발했다. 옛 꼬마민주당과 통추 출신 인사 50여명이 모여 신당추진을 논의한 5월31일 경기도 남양주 MT엔 이부영·김부겸·안영근·서상섭·김홍신 의원 등 5명이 참석했다. 남양주 행사는 3번째 행사였고, 이에 앞서 충남 서천과 부산에서도 같은 성격의 모임이 있었다. 서천 모임은 통추에서 활동했던 나소열 서천군수(민주당)가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나라당 진보성향 의원들 사이에 “때가 되면 함께 움직인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결행 시기와 이후의 프로그램이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탈당하는 것은 정치 도의상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을 떠나는 마당에 잔칫상에 재뿌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당대회가 탈당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를테면 아무개가 대표가 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한나라당의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탈당의 시기는 전당대회 이후로 의견이 모아졌다.

남은 고민은 당을 떠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지난 4~5월엔 민주당의 신당이 곧 성사될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곧바로 합류하기는 어려웠다. ‘철새’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당분간 무소속을 유지하자는 안이 나왔다. 탈당 의원들이 무소속 구락부(클럽)를 형성해 상황 돌아가는 것을 봐가면서 다음 행보를 모색하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결국 민주당 합류를 위한 탈당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다.

더욱이 민주당 신당 논의가 지지부진, 지리멸렬해지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신·구주류간의 볼썽사나운 힘대결 양상으로 비치면서 신당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상당부분 희석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우리가 한번 신당을 주도해보자”는 ‘제4신당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핵심은 한나라당 개혁파가 먼저 치고 나가 신당의 기치를 들자는 것이다. 말만 무성한 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신당 논의의 물꼬를 터서 여러 곳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신당의 물줄기를 담아내자는 계획이다.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신당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신당추진의 주체로 나서는 모양새를 만들자는 것이다. 실제로 김부겸 의원의 탈당 시사 발언이 보도된 이후 민주당과 신당추본, 정개추 등 각종 신당추진 움직임이 연료를 충전받은 것처럼 더욱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탈당이 거론된 의원들은 자신들의 거취가 개혁당이나 민주당 신당추진 움직임과 연계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한 의원은 “민주당 신주류나 개혁정당과의 연대는 장기적인 과제다. 오히려 민노당이나 민사당과의 연대를 더 시급한 과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들의 탈당이 결국 여당에 합류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결과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과 가까운 김덕룡 의원이 당선되면 탈당 움직임은 일단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도 6월20일 수도권 유세에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들과 색깔은 다르지만 인간적 유대를 형성해온 최병렬 후보가 대표로 당선될 경우 고민은 하겠지만 큰 흐름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서청원 의원이 대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도적 성향의 수도권 의원들까지 탈당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 의원의 대표 출마에 강하게 반발해온 수도권의 o, ㄴ 의원 등이 가세하면서 탈당 의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의원들이 유독 서 의원에게 반발하는 까닭은 내년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판단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혁파의 한 의원은 “민주계 출신인 서 의원보다는 민정계 출신인 최 의원이 대표가 되면 탈당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다른 전망을 내놨다.

한나라당 개혁파들의 ‘거사’와 관련해 6월26일로 잡힌 ‘6월항쟁 평화대행진’ 행사가 주목을 끈다. 함세웅 신부와 박형규 목사를 비롯한 재야 원로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시국과 관련한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다. 범민주세력이 결집해 87년 양김 분열 이전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움직임은 여기에 대한 화답의 성격도 띨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